시국선언 관련 논의, 전례를 살펴보면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교 학내에서도 관련 논쟁이 일어났다. 대부분 대학 학내에서 ▲게시글에 본인의 소속을 밝힌 점 ▲본인의 게시물에서 ‘비대위는 대의성이 없다’고 명시한 점 ▲확정되지 않은 의혹에 대해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어투를 사용한 점 ▲정치적 신념과 관련 없이 글을 올렸다고 밝힌 점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했다.

또한, 학 내에서는 ‘시국선언 연서명 참여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글이 분분하다. ‘법무부장관에 내정된 조국 후보자에게 많은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연구윤리 위반에도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일관하는 후보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앞으로 일어날 입시 비리와 고장 난 연구윤리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의 딸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논문 제1 저자로 등재된 것을 둘러싼 의혹 등을 ‘연구윤리 위반’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 장관은 딸의 논문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정책국장의 글은 ‘조 후보자가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어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는 지적이 댓글로 제시됐다.

또한, ‘비대위 논의로 시국선언을 하거나, 시위에 참여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정책국장은 학부 총학생회 학생회칙(이하 학생회칙) 제55조를 언급했다. 해당 항목에 따르면 선거권을 가진 학부 총학생회 회원 1/80 이상의 연서로 소집 요구가 제기되면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임시회의가 소집된다. 연서명을 받아 시국선언 혹은 시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한 중운위를 개최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최 정책국장은 글 말미에 ‘법무부장관 내정자의 모순된 행위와 입시비리, 연구윤리 위반에 같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분들은 연서명에 참여해달라’며 연서명 모집을 위한 링크를 게시했다. 링크를 통해 구글 설문지 형태로 작성된 연서명 모집 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었다. 해당 페이지에는 게시글 본문이 작성되어 있었으며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의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KAIST 학부 총학생회 시국선언 여부 투표안에 동의하며, 연서명에 참여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안건명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최 정책국장은 글에서 본인이 비대위 정책국장임을 밝혔다가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비대위 정책국장의 신분으로 정치적 견해가 담긴 글을 올린 것에 대한 비판 때문으로 보인다. 최 정책국장이 비대위 국장 신분으로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제안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최 정책국장은 해당 게시글에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연서명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작성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첨예한 조 장관 관련 사안에 대해 논하며 ‘정치적 신념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 정책국장의 게시물에는 ‘지지한다’는 댓글도 달렸지만, 앞서 언급한 지적들 역시 제시되었다. 또한, 시국선언을 진행하기에 사안의 중요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하는 댓글도 있었다.

이에 최 정책국장은 지난달 31일 사과문을 올리고 연서명 모집을 철회했다. 최 정책국장은 ‘게시글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했을 학우분들께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일련의 지적 사항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면서 ‘연서명을 수집한 안건은 철회하고, 비대위의 이름으로 중운위 회의 안건을 올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연서명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밝혔으며 ‘미숙함으로 소중한 이름들이 모인 안건의 형태로 올리지 못하게 된 점 죄송하다’고 전했다.

학생회칙 제82조에 따르면 비대위는 중앙집행위원회를 대체하는 학부 총학생회의 최고집행기구이다. 또한, 제84조의2에 따르면 비대위는 총학생회장단의 궐위 기간 동안 중앙집행위원회의 상시적 업무를 담당한다. 비대위는 부득이하게 총학생회장단이 선출되지 못했을 때, 총학생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단체라는 의미이다. 이를 고려할 때 해당 논란에 대한 대응을 비대위 국서 내부에서 논의하고, 중운위에 안건을 상정하는 것이 비대위의 업무 성격에 맞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 이전에도 학생 사회에서 시국선언 관련 논의가 진행된 사례가 있었으나 논의 전개 과정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지난 2012년 1월에는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이 진행됐다. 해당 시국선언은 학우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2011년 12월 한 학우가 아라에 ‘선관위 DDoS 공격에 관한 시국선언을 제안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고, 이 글에 많은 학우가 지지 의사를 표했다. 학우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2012년 1월 서명을 받기 위한 홈페이지가 구축됐다. 당시 1월에 출범해 발 빠른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제26대 학부 총학생회 은 홍보물 제작, 공론화 진행 등의 방법으로 시국선언을 도왔다.

2013년에도 시국선언 관련 논의가 있었다. 당시 논의는 국정원 정치개입 논란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시국선언 논의는 한 학우가 아라에 글을 올리며 시작되었다. 해당 학우는 서울대학교 시국선언 소식을 접한 후 제27대 학부 총학생회 <한걸음>(이하 한걸음)의 참여를 요구했다. 이에 한걸음 측은 ‘국정원 정치개입 KAIST 학부 총학생회 거취 논의’를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어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어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여론을 살폈다. 설문조사 문항은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학부 총학생회는 국정원 정치 개입 사태를 해결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첫 번째 문항의 경우 약 87%가 ‘국정원 정치개입 사태는 문제가 있다’고 답했으나 두 번째 문항에서는 56%만이 학부 총학생회의 참여에 찬성했다.

이 같은 논의 결과를 토대로 중운위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당시 중운위 논의에서는 총학생회의 대표성이 쟁점이 되었다. ‘총학생회가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대표성을 가지는가’, ‘총학생회가 학우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도 되는가’ 등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결국, 중운위는 시국선언을 성명 발표로 완화하는 것에 합의했다. 합의안 역시 재석 인원 13명 중 찬성 7명, 반대 6명으로 통과된 사실은 당시의 치열한 논의 과정을 드러낸다.

2016년 10월에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이 발표되었다. 당시 JTBC가 최순실(본명 최서원)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한 정황을 보도하자 중앙운영위원 연서로 중운위에 이와 관련된 정책투표안이 상정되었다. 해당 정책투표안은 시국선언 여부를 정책투표로 결정한다는 안이었다. 정책투표안은 중운위에서 통과되었고, 시국선언에 대한 정책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 결과 찬성 97%, 반대 3%로 안건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제30대 학부 총학생회 는 10월 27일 ‘최순실 국정개입에 대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박항 전 부총학생회장은 학내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려 중앙운영위원의 연서 과정부터 절차를 공개했으며, 학내 담론 형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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