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76과 극단 노을이 함께 하는 '작은 베케트전'

'엔드 게임' 출연진_햄(하성광), 클로브(김규도), 나그(정재진), 넬(이재희) /ⓒ권애진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는 고전작품, 사무엘 베케트의 <엔드 게임>이 극단76이 2년 만에 보이는 신작으로 지난 6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알과핵 무대에서 하루하루 모순된 사회문제를 겪으며 부조리한 현상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고 있다.

쓰레기통에 유폐된 늙은 부부, 하반신마비의 주인공, 그리고 절뚝거리는 하인이 벙커와 같은 장소에서 비스킷 몇 조각으로 삶을 영위한다. 오도 가도 못하는 그들은 시간의 권태를 이기기 위해 계속해서 관념적인, 가학적인 유희를 만들어낸다.

주인공은 얼핏 작가인 듯 한 느낌을 주지만 자신의 고통 속에 침잠하여 하인을 괴롭히고, 하인은 언젠가는 이 상황에서 탈출하기를 꿈꾸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두 노인부부는 끝없이 추억 속으로 숨지만 서로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러나 그 모두의 미래는 계속 절망적이다.

유희가 지속될수록 점점 더 암울한 세계관만 남게 되고 마는데......

그러다 문득 황폐한 세계 가운데서 <살아있는 소년>을 발견하게 되는데 하인은 거기에서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자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기대마저 무너뜨린다. 마침내 하인은 그곳을 떠나려는 차림새로 나타난다.

'엔드 게임' 무대 사진_관객이 객석에 입장하면 이미 무대 위에는 의자 위 담요를 덮고 있는 이와 그의 곁에 누군가 서 있다. /ⓒ권애진
'엔드 게임' 공연사진_햄(하성광), 클로브(김규도) /ⓒ김솔(제공=티위스컴퍼니)
'엔드 게임' 공연사진_넬(이재희), 나그(정재진) /ⓒ김솔(제공=티위스컴퍼니)
'엔드 게임' 공연사진_클로브(김규도), 햄(하성광) /ⓒ김솔(제공=티위스컴퍼니)
'엔드 게임' 공연사진_클로브(김규도) /ⓒ김솔(제공=티위스컴퍼니)
'엔드 게임' 공연사진 /ⓒ김솔(제공=티위스컴퍼니)

 

'엔드 게임' 커튼콜 사진_햄(하성광) /ⓒ권애진

베케트 작 ‘Fin de Partie!’ 프랑스어 단어 ‘partie’는 ‘부분, 일부’의 뜻부터 ‘시합, 승부, 경기’와 ‘놀이, 오락’ 등까지 의미의 폭이 상당히 넓다. 그런데 베케트 스스로 번역한 영어본의 제목은 ‘(체스경기의)최종회, 막판’의 뜻부터 일반적으로 ‘최종단계’와 군사적으로 ‘적의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기만하는 수단의 일종’을 가리키는 ‘Endgame’으로 되어 있다. 물론 요즘에야 미국 영화 ‘Avengers : Endgame’이 귀에 익겠지만 사용의 원조는 베케트인 셈이다. 작품을 번역한 오세곤 교수는 이렇게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작품의 우리 말 제목을 결정하는데 참으로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베케트의 작품은 어렵고 난해하지만 번역자에게 어렵고 연출과 배우에게 어려울 뿐 관객들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작가 베케트와 연출 기국서의 대결을 기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베케트 작가와 기국서 연출의 한 판 ‘엔드게임’을 기다린다는 기대만큼 관객들도 그 짜릿함을 느끼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이 작품은 다소 추상적인 관념은 다루고 있다. 우리 삶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고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과격하게 상징화시키면서, 그런 풍경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난해한 언어, 관념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바로 ‘부조리 연극’이란 장르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되는 베케트의 세계이다. 베케트의 작품들은 대체로 ‘연극성’이 강하기에 연극무대의 미학만으로 가능하다고 기국서 연출을 전한다. 그래서 어떤 세계를 정해놓고 나면 암울한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배우들의 연기만 남기에, 이번 작품의 화두는 ‘휴머니즘’으로 정했다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엔드 게임'을 연출한 기국서 연출가 /ⓒ박태양(제공=티위스컴퍼니)

난해한 작품을 유쾌한 연출로 승화시킨 작품 <엔드게임>은 작품은 어렵지만 여태껏 극단 76을 비롯한 여러 극단들의 작품들에 비교하면 그리 무겁다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76년에 창단해 올해로 43주년을 맞은 극단 76은 연극계에서 40년 이상 극단을 유지해 오며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그간 대표이가 상임연출가로서 극단을 꾸려온 기국서 연출은 지난 40여 년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우리시대에 연극이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극단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연극의 연극성을 중시하는 기국서 연출은 사변적이고 해석적이기 보다는 배우의 에너지와 유쾌한 해석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관객들은 기국서 연출의 숨은 ‘장난기’를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엔드 게임' 단체사진_햄(하성광), 클로브(김규도), 나그(정재진), 넬(이재희) /ⓒ권애진
'엔드 게임'에서 쓰레기통에 유페된 늙은 부부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나그 역 정재진 배우와 넬 역 이재희 배우 /ⓒ권애진
'엔드 게임' 햄 역 하성광 배우 /ⓒ권애진
'엔드 게임' 클로브 역 김규도 배우 /ⓒ권애진
'엔드 게임' 나그 역 정재진 배우 /ⓒ권애진
'엔드 게임' 넬 역 이재희 배우 /ⓒ권애진

극단이 가진 농익은 에너지와 세대 간의 조화로 관객들과 유쾌한 소통을 꾀하고 있는 연극 <엔드게임>은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연극계에 정평이 난 정재진 배우, 이재희 배우, 하성광 배우 뿐 아니라 기국서 연출이 특별히 주목한 배우 중 하나인 김규도 배우가 탄탄한 팀워크를 이뤄 작품의 강력한 메시지를 무대 위 유희로 만들며 관객들과 함께 하고 있다.

오는 21일 1시 30분에는 세미나 형식의 ‘베케트 VS 베케트’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작은 베케트전’이라는 이름으로 극단 76의 <엔드게임>과 극단 노을의 <오! 행복한 나날들>의 두 작품이 무대에 오르며 마련된 행사이다. 연극평론가 백승무의 사회로 기국서 연출, 오세곤 교수, 양기찬 교수,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의 금보현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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