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은 '2019년 대구 문화예술 인물' 김영보 선정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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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은 '2019년 대구 문화예술 인물' 김영보 선정 철회하라
대구광역시 산하 대구문화재단 선정 2019년 ‘대구 근현대 문화예술인물’ 김영보는 일제 부일 반민족 매국행위 농후한 인물
  • 문해청 기자
  • 승인 2019.09.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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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 김영보 전집 / ⓒ 다음 인용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대구지부(지부장 오홍석)는 소암 김영보(1900~1962)의 일제 강점기 반민족 매국행위를 이유로 친일파 선정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관련,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재단은 해마다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물을 선정하여 문화예술 도시로 위상을 높이고 대구시민으로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취지로 선정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 선양에 시민의 혈세 지자체예산을 쏟고 있지만 제대로 검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2019년 대구 대표 문화예술인물로 선정 된 김영보는 일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입사하여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 전쟁 홍보잡지인 ‘매신 사진순보’에 근무(1928~1945)했다.

이 당시 김영보는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선전도구 앞잡이가 되어 우리 민족을 황민화하며 징용과 징병으로 소위 대동아전쟁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었다.

한때 김영보가 희곡작품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일제 조선총독부 기관지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정책에 적극 부역하며 검은 손으로 우리 민족을 도탄에 빠뜨리게 했던 전쟁범죄과오를 그냥 덮고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 김영보의 반민족 매국행위를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재단이 알고 있었다라고 보면 관계기관이 김영보를 ‘대구를 빛낸 근현대 문화예술인물’로 선정하여 김영보의 일제 매국행위에 면죄부를 주려는 공공기관 친일매국의식이 깊은 뿌리로 뻗어 어떤 의도를 추구하는지? 지극히 의구심이 갈 수밖에 없다.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재단의 행태는 군국주의로 돌아가려는 일본 아베 정권의 행동을 돕는 것이다. 극일克日하려는 시대정신을 역행하고 면죄부를 주며 시민과 청소년에게 거짓과 가짜를 교육하고 공론화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되레 앞장서서 건강한 사회공동체와 나라사랑의 가치관에 혼돈을 조장하며 나아가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사회를 조장하고 장려하는 행태로 보일 수 있어 심히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일제시기 국채보상운동을 시민정신으로 표명했던 대구광역시가 어찌 친일 매국행위 인물 김영보를 현창하는 반역사적 행정을 할 까? 이러고서야 애국애족순국선열묘비에 권영진 시장이 무슨 염치로 낯짝을 들 수 있을까? 어찌 대구시민과 후세에게 진실한 애국愛國 애족愛族 철학哲學 정기正氣를 말하겠는가?

<우리의 요구> 하나. 김영보의 대구 근현대문화예술인물 선정을 즉각 취소하라. 둘. 대구광역시와 대구문화재단은 본말 전도된 사건을 시민에게 사과하라.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대구지부가 밝히는 소암 김영보의 친일매국행적이다.

김영보는 ‘뛰어난 처세술과 친일 매국행위로 군수를 지냈다. 일제 총독부를 업고 조선인 일제 신민화에 앞장 선 한말 친일 언론인 민족 반역자 민원식’ 칭송하는 글 ‘민원식씨 죽음을 울며 추도했다.(泣悼閔元植氏之死’을 3‧1운동 직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每日申報 4761-2호, 1면 1921년 2월 27~28일자’ 기고)

민원식을 처단한 양근환 애국 지사 의거를 모독하고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 정신을 혼돈에 빠뜨렸다. 1932년 11월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할 정도로 일본 총독부의 신임을 받으며 총독의 언론방침을 기획, 수행한 복심腹心이다.

그는 총독 수행기를 7회 걸쳐 작성하여 우가키 총독과 시정을 미화한 인물이다. 총독의 시정은 일제가 야기한 중일전쟁에 조선의 미곡과 물자를 군량미와 군수물자로 뒷받침하는 약탈적 시정과 일본 전쟁에 우리 동포를 희생물로 동원하려했다.

1932년 32살 김영보가 조선 총독을 수행한 그 해는 어떤 시기인가? 그 해 1월에는 31살 이봉창 의사(1901~1932)가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 투척했고 4월에는 24살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의거가 있었다.

김영보가 총독 수행한 1달 전 10월 10일 이봉창 의사, 12월 19일에는 윤봉길 의사(1908~1932)가 강보에 싸인 두 아이를 두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김영보는 1942년 전쟁 홍보 사진 잡지 ‘매신 사진순보’ 편집 책임자로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나가도록 사진을 충동하고 학생과 여성 및 청년을 죽음의 현장으로 내모는 데 전력했다.

조선총독부가 직제를 개편하여 잡지 ‘매신 사진순보’를 발행한 것은 선정성 있는 사진으로 전쟁을 선전하고 반일사상을 제압하려는 목적이다. ‘매신순보’는 소위 국가총동원법 하에서 경무국 정보과, 조선군사령부 보도부, 국민총력연맹 정보위원회와 협력하여 제작했다.

김영보가 책임자였던 ‘매신 사진순보’의 제작방침은 건병健兵, 건민健民, 국위國威, 팔굉八紘 이다. 즉, 우리민족을 일본이 일으킨 소위 대동아전쟁에 총력 동원했던 것이다.

‘누대순례기’에서 김영보는 임진왜란 진주성 함락과 논개를 회고하며 본심으로 ‘이국 조선’에 와서 ‘전사’한 일본군을 애도했다. 이것은 우리 역사를 한낱 얘깃거리로 만들고, 일본과 일본군을 추숭하여 역사의식을 뒤바꾸는 반민족 행위이다.

‘모범농촌순례’에서 김영보는 ‘흰옷을 입지 말고 색복色服을 입으라’ 며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군국 체육, 집단노동 등을 장려하여 우리 민족에게 일본을 섬기는 일꾼으로 두려는 조선총독부 지침을 문필로 수행했다. 한마디로 일제의 동화정책을 수행하고 우리 민족문화말살과 노동력을 일제에 바치게 했다.

‘승원생활보고’를 4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게재했던 김영보는 우리민족정신문화의 기둥 가운데 하나인 불교 수도생활을 비하했다. 호국불교로서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서 싸운 의승군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일제에 혼신을 다한 인물 김영보는 1928년부터 1945년 일제 패망하는 날까지 제국일본의 문필보국 최첨병으로 일편단심 일제를 향한 제국의 언론인이다.

‘매신每申 사진순보’ 전임 책임자 반민족행위자로 오명을 남긴 조용만은 해방 후 “…생각하면 과거 다년에 걸쳐 그것이 비록 제국주의 일본의 억압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나 우리가 총독정치의 익찬(翼贊) 선전기관의 졸병으로서 범하여온 죄과에 대하여서도 동포 앞에 충심으로 사하여 마지않는 바다.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엄정한 비판과 준열한 힐책일지라도 이를 감수할 각오이거니와…”(1945. 9. 24. 매일신보에 종업원 일동으로 발표)라고 반성했다. 그러나 김영보는 반성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여은경 연구위원은 “김영보는 한 마디로 일제를 위해 활동한 조선총독부 일제 언론인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시정방침을 우리 동포에게 얽어 씌워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민족을 전쟁판에 내모는 핵심적 선전역할을 한 자” 라며 “20대 초반 희곡을 썼다하나 그것으로 그가 저지른 부일 반민족 행위를 가리거나 덮을 수는 없다.” 했다.

이어 여 연구위원은 “대구는 지난날 일본에 진 빚을 갚아 국권 회복하려고 민족적으로 힘을 모아 전개한 국채보상운동 본고장이다.” 그럼에도 일제를 위해 문필보국하며 생애를 바친 김영보를 오늘날 대구광역시에서 현창하고 선정하는 것은 대구시민과 청소년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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