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의 소설-<딱새의 성> 제16회

수요일 오후 인영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걸었다. 어느덧 플라타너스는 윤기가 가득 찬 신록으로 단장하고 있다. 오늘은 건너편 건물의 복지관에서 인형극이 열리는 날이다. 장애아 보조원의 일도 이번 주로 그만 둔다. 영자의 별장지기, 또한 정의식과 연극 연습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연극 연습의 날에 의식을 만나게 되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되는 것이 설렌다. 그가 감독하는 작품은 분명히 근사하리라.

출입구 근처에서 맹현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 아이들이 너무나 귀엽고 예뻐요.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언제나 밝고 정겨웠다. 의사인데도 수더분하고 언제나 편하게 대하여 주었다. 장애를 가진 부모들의 어려움도 한 단계 건너 뛴 듯 초연함과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정말 우리 맹현이에게 잘해주셨는데 그만 두신다니까 섭섭하군요!”

맹현을 부를 때 자식에 대한 측은함과 불안함이 스쳤다. 그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염려와 같은 어미의 심정이었다. 아이의 장애로 부부의 갈등과 풍파를 거친 그들이 참 대단하고 위대하게 보였다. 자신의 존재의 위기마저 느꼈던 그들. 거부할 수 없는 숙명에 순종하며 사는 지금의 그 부부는 매우 안정돼 보였다.

“엄마, 아빠, 남자, 여자, 부부……! 엄마, 아빠, 남자, 여자, 부부……!”

맹현은 늘 이 단어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였다.

어느덧 복지관 입구에 도착하였다. 계단을 딛고 2층으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순간 주차장 쪽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말쑥한 정장차림의 정의식이었다. 그는 차를 주차시키고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와 동행하고 있었다. 연극 장치에 필요한 장비를 함께 챙기며 그들은 동영상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원장실의 내빈 객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인영은 그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 일까?’

잠시 2층의 입구에서 기다렸다. 원장실에서 정의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웬일이세요?”

“네, 인형극 관람하려고요!”

당황하듯 짧게 대답하였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오래된 연인사이에서 오가는 친밀한 눈길이다.

“자, 그럼 끝나고 로비에서 봅시다.”

정의식이 미소를 지으며 공연장소로 향하자 인영도 곧장 공연장으로 향하였다.

“엄마, 저번에 유치원에서 저 삼촌이 나를 꼭 안아주고 맛있는 과자도 주셨어요!”

바다가 정의식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자, 어서 올라가자.”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 장소의 소강당에 들어섰다.


일행은 강당의 무대 쪽에서 인형극의 장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의식은 인형과 줄이 연결된 부품을 조정하면서 공연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인형극은 장애아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능이 낮아서 분별력이 없는 장애인들이 나쁜 사람의 유혹에 넘어가 성폭력의 희생자가 날로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인형극의 네모난 틀 속에 이십대의 청년이 나타났다. 그가 여자아이의 차림을 한 십대 소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자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며 몸을 만지며 옷을 벗기려 한다. 여자아이는 달아나며 비명을 질렀다.

“인화학교와 같은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해요!”

“장애아로 태어난 것만도 서러운데 정말 무서운 세상이에요!”

“영화 <도가니>를 봤는데 정말 끔찍하고……. 한참이나 울었어요.”

“그래도 저렇게 고마운 사람들도 있으니 위로가 되는 군요.”

인영의 옆에 앉은 장애아 부모들의 대화가 애달프다. 이어서 복지관 원장은 정의식과 일행을 소개하고 나서 장애아도 존엄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와 같은 일에 협조하여 주신 정의식 일행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말을 올렸다. 그러자 학부모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간혹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니들도 보였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더 할 수 없이 고맙게 여겨졌다.

사람들은 모두 감격스럽고 기쁜 표정으로 복지관 입구를 나서고 있었다.

인영은 복지관 로비로 아이들을 데리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의식은 동행한 사람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인영에게 다가왔다.

“댁에는 어떻게 가시죠?”

“이 근처라 걸어서 갑니다.”

“그것 좋군요. 걷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다더군요. 어디 모처럼 한번 걸어 볼까요?”

그는 바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인영은 그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려고 좀 빨리 걸었다.

“복지센터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젠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런데 인형극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장애우를 위해서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 연극을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잠시 말없이 걸었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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