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대장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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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대장부의 길
  • 김덕권
  • 승인 2016.11.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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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김덕권선생님의 칼럼 글

▲ 덕산 김덕권 선생,  원불교 문인협회 회장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옛날 한 승려가 마조도일선사(馬祖道一禪師 : 709~788)에게 어떤 것이 도인가를 물었을 때 ‘평상심이도’라고 한 데서 유래합니다. 세상 사람은 도라고 하면 특별한 것 또는 보통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기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도란 바로 범부(凡夫)가 일상 생활하는 그 마음을 여의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번뇌가 없고, 일상생활의 하나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도라는 말씀이지요. 결국 ‘평상심시도’는 도의 궁극적인 경지와 수행의 과정을 이 평상심에 두고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있음(有)과 없음(無), 생함(生)과 멸함(滅) 등 상대적인 어떤 두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상대적인 견해를 말하는 두 변(兩邊)은 선악(善惡), 유무(有無)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고(苦)와 낙(樂)도 있지요. 
 

많은 수행자들이 세간의 향락을 버릴 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행하는 괴로움도 병입니다. 그걸 버리지 못하면 해탈(解脫)을 얻지 못합니다. 참으로 해탈을 하려면 고(苦)와 낙(樂)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 그것이 중도인 것입니다.  
 

중생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바로 깨쳐서 해탈을 얻기 전에는 무엇을 대하든지 그것은 고가 아니면 낙이고, 낙이 아니면 고(苦)라서 항상 양변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양 극단에 집착하지도 않고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중도인 것입니다.  
 

이렇게 두 극단에도 집착하지 않고,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격식을 벗어난 대장부(大丈夫)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대장부는 비록 궁한 집에서 살며 형편없는 음식이나마 끼니를 잇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궁핍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대장부는 이렇게 세상을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오늘은 슬퍼도 내일은 기쁨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화가 치솟더라도 내일은 기쁜 일이 생겨 크게 웃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허무해도 내일은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머니가 비록 빈털터리라 하더라도 내일은 가득 찰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나를 찾아주는 이가 없어도 덕을 베풀면 내일은 날 찾아주는 사람들로 넘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에 비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는 일이 옳고 바른 일이라면 언젠가는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혹 믿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면 우리는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야박하게 거절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 도움을 청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평상심으로 살아가면 바로 그것이 대장부의 마음인 것이지요.  
 

맹자가 주장한 대장부의 다섯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부동심(不動心)입니다.

대장부는 유혹 앞에서 타협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나이 40에 ‘부동심’이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어떠한 풍파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 부동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 선의후리(先義後利)입니다.

이익에 앞서서 옳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리가 우선인가, 인간으로서의 의리가 우선인가에 대해 맹자는 단연코 “의를 행하면 이(利)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셋째, 호연지기(浩然之氣)입니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강한 기운을 말합니다. 그래서 맹자는 “잘못 기르면 해악을 미칠 수 있으니 굽은 마음이 아닌 곧음으로만 길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넷째, 여민동락(與民同樂)입니다.

대장부는 좋은 것을 더불어 즐깁니다. 대장부는 ‘좋은 것이 있으면 나 혼자 즐기지 아니하고, 나를 따르는 조직원들과 함께 즐기라’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불인지심(不忍之心)입니다.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에는 ‘인 · 의 · 예 · 지’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닦으면 대장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맹자는 대장부의 자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하의 넓은 곳에 거하고, 바른 자리에 서며, 큰 도를 행한다. 뜻을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하고,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리라. 부귀를 가졌어도 부패하지 않고, 가난하고 힘들어도 포부를 버리지 않고, 권위와 무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라야 대장부라 부를 만하다.” 
 

대장부에 관해 맹자가 추구했던 것은 ‘인의예지(仁義禮智)’입니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위해 자신을 가다듬는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천하의 넓은 곳, 바른 자리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처신(處身)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익이나 욕심만을 위해 옳지 못한 곳에 있거나 바르지 못한 행실을 하지 않고 큰 도에 따라 행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장부는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비록 성공을 얻지 못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대장부 아닌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혹이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 대장부로서 취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 덕목이 대장부의 길입니다.  
 

마음을 깨치면 모든 욕망과 생사를 초월하는 대장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자유인이 되며, 대자대비와 큰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어 뭇 중생을 제도하는 사람, 그가 곧 진정한 대장부가 아닐 까요! 

프로필 :  

법명 김덕권 1940년생

원불교 여의도교당 고문

원불교 청운회장

원불교 문인협회장

원불교 모려회장

덕화만발 카페지기 역임

덕화만발 <덕인회 상임고문>

저서 : 진흙 속에 피는 꽃외 다수
 

단기 4349년, 불기 2560년, 서기 2016년, 원기 101년 11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다음카페 덕화만발(德華萬發)고문 클릭http://cafe.daum.net/duksan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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