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

2. 배우 이순재의 연기철학 – 배우는 예술가

3년전인가, 각 공중파 방송사에서 연말에 실시하는 연기대상 시상식에 축사 혹은 시상자로서 가장 먼저 초대하고 싶은 명사가 ‘배우 이순재’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 해에 연기로서 상을 받는 모든 배우들이 영예로운 그 상을 배우 이순재 선생님에게서 받고 싶다는의미인 것이다. 그만큼 이순재 선생님은 배우로서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분이다.

그해 어느 방송사 시상식에서 선생님은 수상을 축하하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저는 배우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대중스타배우입니다. 인기와 명예만을 는 단순 스타입니다. 또 하나는 연기를 예술로서 접근하는 진지한 예술가 배우입니다. 이는 외국에 경우에는 많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경우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요새 젊은 친구들이 배우를 단순이 돈과 인기만을 위한 직업으로서 선택하지 말고 정말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있는 예술가로서 배우 생활을 하기바랍니다. 인기는 순간이지만 예술은 오랫동안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배우로서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인 선생님은 연극을 시작하고 배우로서의 삶을 살며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1950년대 국내에서 서울대 졸업생이라 하면 웬만한 기업의 취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당시 동기생 중 많은 분들이 은행과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연봉 몇억대가 넘는 대기업임원과 행장으로 퇴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대 출신이 사회적 인식 또한 천시받는 소위 ‘딴따라’를 시작했으니 집안의 반대와 주위의 눈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방에 불을꺼주오'의 한 장면/사진제공/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그렇다고 선생님이 연극을 시작하고 배우를 하면서 바로 큰 각광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인물이 훤칠한 동료 배우들에게 주인공을 뺏기기 일쑤였고 연기측면에서도 많은 지적을 받곤 했다. 물론 당시에는 배우의 연기력보다 그냥 외모의 우월함으로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받던 시대였다. 생활고 해결과 연기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선생님은 TBC 개국과 함께 방송을 시작한다.

이것이 선생님의 연기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고 이것을 계기로 선생님은 방송은 물론 영화에 까지 연기의 영역을 넓히게 된다. 영상매체 진출 이후 선생님은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의 방송드라마 대표작은 MBC의 <사랑이 뭐길래>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선생님은 ‘대발이 아버지’로 열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선생님의 대표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후 선생님은 연기를 떠나 정치적인 외도도 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매진하지만 역시 선생님의 본직은 배우였다. 정치계의 많은 러브콜에도 선생님은 임기가 끝나자 국회의원직을 미련 없이 버리고 방송에 복귀하여 ‘야동 순재, 직진 순재’라는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캐릭터를 만들었으며 2000년 서울 시극단의 <세일즈맨의 죽음> 출연 이후에는 지금까지 매년 두세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MBC  <사랑이 뭐길래>의 한 장면/사진제공/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이러한 남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선생님의 직업으로서의 배우, 예술가로서의 배우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돈과 인기를 가지기 위해 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좋아서 연기를 하다보니 돈과 인기가 따라오게 됐다’ 선생님이 각종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선생님의 연기창조 작업은 늘 신성하게 이루어진다. 선생님은 연극연습장이나 방송촬영 현장에 늘 일찍 나오신다. 최소 시작 30분전에는 미리 도착하여 연습준비를 하고 계시고 공연을 위한 극장에는 적어도 두세시간 전에 도착하여 몸풀기를 하고 계신다.

방송은 물론 연극을 위한 연습때에도 제일 먼저 대본을 손에서 띠고 상대배우와의 교류 연습을 중시한다. 선생님의 연기창조작업은 예술가의 창작작업처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생님의 연극철학은 배우가 돋보이는 무대이며 그 어떠한 심오한 무대미학과 화려한 매커니즘보다 배우의 연기를 통해 관객이 감동받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위한 배우의 훈련과 연습은 운동선수의 그것처럼 반복이고 체계적이어야 하고 예술가의 그것처럼 신성시 되고 고급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1978년 영화 <하늘아래슬픔이>의 한 장면/사진제공=배우 이순재 연기인생 6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

‘배우가 예술가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젊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다 그냥 딴다라였지. 하지만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 같은 배우를 보세요. 국가에서 그의 배우활동의 위대함과 예술성을 인정하여 작위를 주잖아요? 이제 우리도 배우가 단순이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해요. 동시대의 대중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어떤 고민과 아픔이 있는지를 파악하여 그걸 자신의 연기에 녹여내야 해요. 그래야 배우가 동시대의 대중과 함께 존재하는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우 스스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고 훈련해지요. 그래야 배우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거지요. 안 그러면 여전히 천박한 딴따라 아닌가.

필자는 이를 연기학적 측면에서 ‘배우는 동시대의 몸짓을 투영하는 거울이다’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1960~70년대의 국내 영화를 보면 연출기법을 떠나 배우의 연기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몸짓과 표현을 보게 된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과장된 연기’라거나 또는 ‘설명적, 어색한 연기’라고 평가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인물이 어떤 직업을 표현하던지 그 인물을 맡은 배우의 연기표현은 동시대의 그 해당 직업을 관찰, 연구하고 표현 한 것이기에 동시대에 통용 될 수 있었던 몸짓임을 알게 된다. 즉 지금의 관점으로는 어색하지만 당시에는 익숙한 그래서 당시 관객들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인 배우의 몸짓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배우의 연기는 동시대의 대중들의 삶의 투영하는 상징기호’ 이며 이를 토대로 하여 배우가 왜 예술가여야 하는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배우 이순재의 연기 철학은 ‘예술가로서 배우’인 것이며 이를 허영과 편협된 영웅심으로 가득찬 작금의 대중스타배우들에게 큰 가르침으로 전하는 것이다./다음호에 계속

김태훈/배우, 세종대교수/주요작품=에쿠우스, 고곤의선물, 비극의 일인자, 내면의악마, 갈매기, 나생문, 죄와벌 등/수상=2004년 제25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2009년 2인극 페스티벌 작품상, 2012년 33회 서울연극제 연기상, 2014년 러시아모스크바예술극장, 연기부분 공로상, 2014년 제15회 김동훈연극상, 2015 대한민국 신한국인상.문화예술부분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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