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생사(生死)

생사(生死)   

생사란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요. 그러나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탄핵을 당한 박근혜 대통령은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이나 마찬 가지 아닌가요? 이제 저도 얼마 안 있으면 서산을 넘어가야할 몸입니다. 과연 후세 사람들이 저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해 줄까요?
 

그 생사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생(生)’은 새싹이 돋아나는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다’라는 뜻이 나왔습니다. 반대로 ‘사(死)’는 앙상한 뼈() 앞에 사람(人)이 꿇어앉아 애도를 표하는 모습입니다. 글자에 앙상한 뼈, 부서진 뼈란 뜻의 ‘알()’이 들어가면 죽음과 관련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 죽을 순(殉), 재앙 앙(殃), 쇠잔할 잔(殘)’ 등이 다 그렇습니다.
 

옛날엔 신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불렀습니다.

           1. 임금이 죽으면 붕(崩)이요,

           2. 제후(諸侯)가 죽으면 훙(薨),

           3. 대부(大夫)는 졸(卒),

           4. 선비는 녹(祿)을 타지 않고 죽는다는 뜻에서 불록(不祿),

           5. 서민은 사(死)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死)와 망(亡)은 구별을 했습니다. 죽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사(死)라고 하며, 이때는 죽은 이를 사자(死者)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 장례까지 다 마친 뒤에는 망(亡)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는 죽은 이를 망자(亡者)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장(葬)’은 죽은 이의 위아래를 풀로 덮은 형상입니다.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들이나 숲에 갖다 놓던 장례 습속이 반영돼 있는 것이지요. 이 경우 시신(屍身)이 야생 동물에 의해 훼손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망자와 가까운 이들이 화살을 갖고 며칠씩 시신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문(弔問)한다는 뜻의 글자인 ‘조(弔)’가 활(弓)과 사람(人)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이런 풍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최근엔 조문할 ‘조(吊)’자가 널리 쓰입니다. 이는 ‘조(弔)’의 속자입니다. 조(吊)는 곡(哭)을 하는 입(口)에 조문의 등(燈)을 매다는 헝겊(巾)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시신을 들이나 야산에 버린 뒤 활을 들고 지켜주던 습속이 사라지고, 대신 곡을 하며 등을 달아 장례를 치르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조(弔)보다는 조(吊)가 많이 쓰이게 됐다고 하네요.
 

이 생사라는 말은 범어(梵語) ‘samsara’의 번역이라고 합니다. 윤회(輪廻)라고도 번역하지요. 업인(業因)에 의해서 육도(六道)의 미계(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여 윤회하는 것으로 열반(涅槃)의 반대를 말합니다. 생사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생사의 바다(生死海)라고도 합니다. 생사의 고해(苦海)를 넘어 열반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너기 어려운 바다(難度海)라고도 부릅니다.
 

생사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어려운 말 중에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두 가지 생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첫째, 분단생사(分段生死)입니다.

유루(有漏)의 선악 업을 인(因)으로 삼고, 번뇌장을 연(緣)으로 삼아 삼계(三界)안의 추한 과보를 받을 때의 생사입니다. 그 과보는 수명의 장단이나 육체의 대소 등 일정한 제한을 지니기 때문에 분단신이라 합니다. 그 분단신을 받아서 윤회하는 것을 분단생사라 하지요.
 

둘째, 변이생사(變易生死)입니다.

아라한(阿羅漢). 벽지불(僻地佛). 대력보살(大力菩薩)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루(無漏)의 유분별(有分別) 업(業)을 인으로 삼고, 소지장을 연으로 삼아 삼계 밖의 수승한 과보의 몸 즉, 뜻대로 몸을 받습니다. 이런 몸을 지닌 채 삼계안에 와서 보살의 행을 닦아 불과(佛果)에 이릅니다. 그 몸은 비원(悲願)의 힘에 의해 수명이나 육체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변이신이라 하고, 변이 신을 받는 것을 변이생사라 합니다.
 

어떻습니까? 생사도 깊이 들어가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쨌든 우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은 생사를 초월하여 대 자유를 얻자는 것입니다. 견성(見性)하여 불지를 얻어 열반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생사의 경계(境界)는 무엇인가요? 찰라 생(刹那生) 찰라 멸(刹那滅)인가요?
 

영원히 존재하는 불성(佛性)이 있어『불생불멸(不生不滅)』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사를 초월하는 공부를 하려면 생사의 경계를 모르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생사라는 의미가 의사의 사망진단만으로 끝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공부를 하여 생사를 초월할 때,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지 모르겠지만 그냥 죽음이라는 말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범상(凡常)한 사람들은 현세(現世) 사는 것만을 큰 일로 압니다. 그러나 지각(知覺)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잘 나서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40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해야 우리가 죽어 갈 때 종종걸음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 숨을 들이 쉬었다 내 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지요. 이 생사는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습니다.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치지 못한 사람은 나고 죽음을 생사라 하고,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라 하는 것입니다.
 

「人間苦樂元無實 自性觀照本蕩平」‘인간의 모든 고락, 원래 실상이 없는 것, 자성을 관조하니 본래 탕평하도다.’ 실상이 없는 것에 매달려 고통을 받지 말고 우리 이제는 생사를 관조며 변화에 대비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요!
 

단기 4349년, 불기 2560년, 서기 2016년, 원기 101년 12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