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칼럼】- 문화융성과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2014년 필자가 속해 있는 문인단체의 홈페이지에 문인들의 공분을 일으켰던 협회 공지의 내용이 떠오른다. 그 핵심요지는 경제가 어려워서 문학관련 정부 예산지원이 대폭 삭감이 되어 원고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문인들이 설 땅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가난한 문인들이 2-3년에 한 번씩 겨우 발표하여 받는 소정의 원고료마저 정부 지원이 삭감되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문인협회의 자문위원이기도 하였다. 문인들은 <대통령이 되니까 이제 이용가치가 떨어졌나. 대선 때는 만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된 문인들의 표심을 얻으려하더니.....>

울분으로 서로 위로하며 토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것이 최순실의 문화계 농단이었다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몇 해 전 끼니마저 해결이 안 되어 유서를 쓰고 자결하였던 예술가의 죽음도 아무런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문인들의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고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져야만 작가활동을 할 수 있다. 전업  작가로서는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에 일부분의 문인들은 작가들을 홀대하는 정부를 향하여 문학단체도 농성을 벌이며 생계를 보장하는 정책을 요구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문인은 선비다, 선비가 구차하다고 도움을 구하는 모습은 비굴하다>하면서 유독 다른 단체와는 다르게 비교적 온순하게 견디며 각자 생계를 위한 모험을 하고 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기조로 <문화융성>을 열 번이나 넘게 언급하였다. 일각에서는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웬 문화융성이냐 하며 그것은 배가 부르고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나 어울리는 것이다 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한류문화의 세계화 시대에 문화사업을 권장하려는 정부의 의도가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면도 있었다. 필자는 문화융성이라는 언급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대통령께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적 감각과 소견을 가지시신 분으로 여겨졌다.

아마 문인들의 정책과 문예진흥에도 열의를 보여 줄 것을 기대하였다. 정치인이 문화 예술적 감수성을 지녔다면 온정의 정치감각을 보완해 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계산적인 사리와 당리당략과 권력투쟁의 냉혹한 정치수완으로 일관된 정치인들에게 예술적 감수성은 필요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감성과 타인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는 감성지수를 소유할 때 국민들과 소통하고 체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무슨 사고를 하셨을까 지도자적인 폭 넓은 사고로 상식과 통하는 사고의 확장을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박대통령은 문화가 융성해야 백성이 흥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문화융성이 최순실의 금고를 채우는 속임수 정책이 되었고 그 일당들의 장악으로 오히려 문화말살정책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민족의식과 애민의식이 있는지 의아하게 여겨지며 분통이 터지게 한다. 국민스타 박태환과 김연아는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희망을 준 인물이었나.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고 힘들지만 이들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때, 고단한 삶을 잠시 잊으며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며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이들을 장려하고 배려해야 함에 불구하고 그들의 진출을 도외시하는 정황은 도무지 국가관이 있다고 해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고은 시인과 맨부커상을 수상하여 국민들의 자부심을 심어준 소설가 한강도 블랙리스트의 명단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국가의 인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장려하고 양성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기본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역시 박대통령의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려는 정부체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이는 문화융성으로 시작되어 <문화계의 황태자>라 불리는 차은택의 농단으로 본격화 된다. 국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은 준비된 전문적인 행정관료를 <나쁜사람>이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최순실의 금고를 채워주기 위하여 텅빈 중앙행정 관료로 채웠다. 이런 관료시스템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데이비드 스로스비(호주 매쿼리대 석좌교수)는 소위 ‘창조 산업’이 제대로 가동되려면 “산업 동심원의 가장 안쪽에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영화·음악·문학 등 문화예술이 자리를 잡아야 하며, 창조 산업이 다른 분야에 파급 효과를 미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핵들이 잘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문화 예술인들은 사회와 정부의 오염된 행태를 예술활동으로 풍자하며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때로는 문학작품을 쓰며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며 좀 더 이상적인 사회와 문화를 갈망하며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한다. 그런데 핵심인 창조적 사고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다는 것은 이러한 문화 예술인들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제약하는 것이 된다.
 
한마디로 평온한 집안에 강도가 들어와 집주인의 손과 발을 묶어놓고 입을 헝겊으로 틀어막고 집안의 보물을 강탈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입을 막는다는 것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손과 발을 묶는다는 것은  활발하고 자유로운 문화 활동을 압박하는 것과 같다. 민주공화국에서 어찌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인지 무섭고도 심각하다. 미래는 아이디어시대다.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이제 형체가 있는 자원이 아니다. 창조산업은 독창적 아이디어로 문화사업을 일으켜 외화벌이를 하여 경쟁력을 높여 경제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한 글로벌시대의 창조산업이기 때문에 소중하며 원활하게 진행이 되어야 한다. 그 핵심이 <독창적 사고>이다. 블랙리스트는 문화 예술인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하는 독창적인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였다. 결국 미래글로벌시대의 소중한 자산을 말살시켜 경제발전마저 차단하여 악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과 그 실행여부에 관련된 자들을 철저하게 수사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고 밝혀야 한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 받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haj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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