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 원불교 문인협회전회장타면자건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신당서(新唐書)》<누사덕전(婁師德傳)>에 나옵니다. ‘얼굴에 묻은 침을 저절로 마르게 두라’는 누사덕의 말에서 ‘타면자건’이 유래했다고 하네요.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것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지요. 처세를 잘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참기 힘든 수모도 인내로 견뎌야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당(唐)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의 신하 누사덕(婁師德)은 팔척장신에 큰 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됨이 신중하고 도량이 컸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일을 당해도 겸손한 태도로 오히려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얼굴에 불쾌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우가 대주(代州)자사로 임명되어 부임할 때 누사덕이 아우에게 참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자 아우가 말했습니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그냥 닦아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누사덕이 말합니다. “아니다. 그 자리에서 침을 닦으면 상대의 화를 거스르게 된다. 그냥 저절로 마르게 두는 것이 좋다.”(其弟守代州, 辭之官, 敎之耐事. 弟曰, 有人唾面, 潔之乃已. 師德曰, 未也. 潔之, 是違其怒, 正使自乾耳.)

어떻습니까? 가히 성인(聖人)이 아니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요? 이런 누사덕의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지도자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0일이면 임기가 끝납니다. 그런데 퇴임을 며칠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CNN 조사결과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이 55%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임기 내 평균 지지율이 51%일 정도로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임기를 마감한다고 하네요.
 
얼마나 부러운 대통령입니까? 왜 이런 놀라운 지지율이 임기 내내 고공행진을 했을까요? 최근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선 오바마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모욕적인 악플이 범람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있었지요.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여태껏 지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이버 침’이 SNS에서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 정치가 다시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지난 12월 26일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놀라운 은총, 얼마나 감미로운가…”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반주도 없었지요.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000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어떤 흑인 여성은 오바마를 손짓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졌습니다.
 

포용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인내의 ‘忍’ 자는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본뜬 글자라고 합니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내라는 것이지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칼날 하나쯤은 박혀있게 마련입니다. 그 고통을 참느냐 못 참느냐, 거기서 삶이 결판나는 것입니다.

누사덕이나 오바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사가 다 그렇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이 며칠 전 1월 10일 저녁, 자신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했습니다. CNN이 <오바마 8년의 정치 드라마를 완성한 명연설>이라고 평한 그의 50분간의 격정이면서도 진솔한 퇴임의 변은 의례적인 정치적 수사가 아닌 그야말로 가슴 찡한 명연설이었습니다.

지난 8년을 회고하며 감사와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하얗게 세 버린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나의 머리카락은 하얘졌지만 나는 여전히 나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런 대통령을 가져볼 수 있을까요? <나는 재임하는 동안 여러분들에게서 참으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역대 그 어떤 우리 대통령의 퇴임사에서도 이런 소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끝까지 국민들을 높이고 자신은 낮추었습니다.

그의 연설은 <4년 더! 4년 더!>를 외치는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해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Yes we did, Yes we can!>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날 여론조사 기관인 라스무센이 발표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60%였으며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대치였다고 합니다.

오바마를 지난 8년간이나 대통령으로 뒀던 미 국민들이 몹시 부럽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참 지지리도 지도자 복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대통령이라고 우리 앞에 나섰던 인물치고 진정으로 국민들을 평안하게 해 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진저리가 난 남성 대통령들보다는 뭐가 달라도 조금은 다르겠지 하고 뽑았던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국민들의 그런 기대를 처참하게 뭉개버렸으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유독 오바마와의 인연이 깊어 임기 중 무려 여섯 번이나 정상회담을 가졌던 박근혜는 지금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지율은 4%로 추락했고, 탄핵소추를 당해 모든 권한이 정지된 채 피의자 신분으로 헌재의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임에도 오바마가 너무 부럽습니다.
 

오바마는 지난 8년간 미 대통령직에 있으면서도 단 한 차례의 스캔들도, 비리 의혹에 연루된 적도 없이 퇴임연설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은 겨우 그 절반인 4년을 지내면서도 <국정농단>을 연출하다 이제 강제 퇴임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장에는 이겼다 할지라도 교만하고 방심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집니다. 그러나 당장에는 졌다 할지라도 겸손하며 분발하면 다음에는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에는 우리나라에도 ‘타면자건’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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