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의 보배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 말은 도연명(陶淵明 : 365~427)의 <잡시(雜詩)>에 나오는 이 말로 세월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 쓰라는 뜻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뚜렷하게 한 일도 없이 바쁘기만 바빴습니다. 허둥대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산수(傘壽)의 세월이 내일 모래입니다. 십대는 저도 모르게 후다닥 지나갔고, 이십대에는 사랑에 취해 허겁지겁 보냈습니다. 그리고 삼십대는 일에 젖어 숨 가쁘게 보냈고, 사십대는 세상 것에 미혹되어 시간을 다 빼앗겼지요. 또한 40대 이후에는《일원대도(一圓大道)》에 심취하여 일직 심으로 달려왔으나 저 높은 곳에 이르려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 주어진 일생입니다. 그 흐르는 세월 속에 나는 무엇을 남겼으며,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저 긴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시간을 아무 의미도 없이 낭비했던 일이 많아 아쉬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은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중요한 시간은 지금 여기밖에 없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어제는 갔다. 내일은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오늘만 있다. 자, 이제 오늘을 시작하자.”고 하셨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말씀처럼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현재를 사랑하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현재만이 살아있는 시간이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빨리 흘러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아껴 쓰라는 ‘세월부대인’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람차게 사용할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존재와 비존재 즉, 색(色)과 공(空), 흑과 백, 내 편 네 편, 선과 악, 이런 식으로 사물과 개념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흑백논리로 가르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각자 생애를 걸고 살아가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가려고 합니다. 그럼 과연 정유년(丁酉年) 한 해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달려갈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경륜통우주(經綸通宇宙) 신의관고금(信義貫古今)』입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위해서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존경과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존경하고 대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예양(豫讓)이라는 의로운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죽인 조나라 왕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칼을 품고 조나라 왕을 암살하려다 살기를 느낀 왕에게 붙잡히고 말지요. 조왕은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이토록 나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냐?” 예양의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내가 모시던 주군은 나를 평소에 국사로 대우하였기에 나도 목숨을 걸고 죽은 그를 위해 보답하려 하는 것이다.” 평소에 자신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주던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조왕은 진정 의로운 선비라고 하면서 그를 풀어주라고 명령합니다. 그 후 다시 복수를 결심하고 때를 기다리던 예양에게 그의 친구는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자네의 재주와 능력으로 마음을 바꾸어 새로운 임금을 섬기면 얼마든지 높이 쓰일 수 있을 것인데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려 하는가?”
 

예양은 친구의 권유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인정해 준 군주를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하려하는 이 일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은 나도 안다. 다만 내가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는 것은 후세에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준 군주를 배신하는 신하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다.”

자신을 알아주고 발탁하여 높이 등용하였던 군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그 은혜에 보답하려 했던 이 지독한 신하의 복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매우 큽니다. 지도자는 부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부하는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해 지극히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간 대통령을 따르고 대통령으로 인해 부귀영화를 누리던 수많은 부하들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들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 역겹기가 한이 없습니다.

참으로 신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그 모든 과오를 자신이 뒤집어쓰고라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사람 하나 없을까요? 물론 그간 대통령이 부하들을 인간대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부귀영화를 누릴 대로 누린 그들이 할복(割腹)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신의를 저버리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요?

아마 이 시대가 신의라는 덕목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의는 인간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덕목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 한해 더욱 고금을 일관하는 신의를 지키고 실행하는 한해를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은 신의(信義)로써 보배를 삼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명리(名利)를 보배로 여기지요. 그리고 범부(凡夫)는 재물을 보배로 삼습니다. 그러나 물화(物貨)의 보배는 허망하기 뜬 구름 같고, 위태하기가 누석(累石)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명리의 보배는 밖으로는 영광스러운 듯하나 안으로 진실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의 보배는 도(道)로 더불어 합일(合一)이 된지라, 그 수명이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과 밖이 환히 밝아 명리와 물화가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경륜은 우주에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일관하라. 경륜이란 발원이요 계획이니, 발원과 계획이 커야만 성공도 클 것이요, 신의란 신념과 의리이니, 그 발원을 이루기까지 정성과 노력을 쉬지 아니하여야 큰일을 성취하나니라.」하신 정산(鼎山) 종사님의 가르침이 가슴에 사무치네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2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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