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산 김덕권선생사랑보다 깊은 정 

 

정(情)이란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그리고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을 정이라고 합니다. 지난 밤 갑자기 집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 거실로 튀어나갔습니다. 오른 쪽 다리에 쥐가 올라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엄습했던 모양입니다. 다리를 주무르고 두드리며 한 바탕 소란을 피운 끝에 겨우 안정을 찾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억지로 참을 청했습니다.
 

누구나 어려울 때, 외로울 때, 무슨 일 때문에 외롭고 괴로울 때, 진심으로 다가가 한사람을 편안하게 그리고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살맛나게 하는 게 정이고 사랑이고 진심이 아닐 런지요? 여기 어느 노부부의 가슴 찡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해주며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부부를 보고 있으면 어느 사람이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런 행복을 깨는 불행한 일이 터진 것입니다. 바로 건강하던 할아버지께서 아프기 시작하셨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아버지가 병원에 치료를 다니면서부터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약 가져와!” “네 여기요” “물은?” “네 여기요” “아니.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물 컵을 엎어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엔 뜨거운 물이 아닌 찬 물로 할머니가 물을 다시 떠왔더니 “아니 그렇다고 찬물을 가져오면 어떡해!!” 하며 또 할머니가 가져온 물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님들 오셨는데 왜 이렇게 늦게 상을 차리느냐며 소리를 쳤습니다.
 

“당신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정신이 벙벙해서 그만...” “이게 어디서 말대답이고?!” “손님들 계신데 너무 하시네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할머니께서는 마음이 너무 아프셨습니다. 꼭 작금의 우리부부 모습 같네요.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셨지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당황한 손님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르신! 왜 그렇게 사모님을 못 살게 구세요...” 그러자 한참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 할망구가 마음이 여려. 나 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되서 말이야..... 날 미워하게 해서라도 나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될 거 같아 그래서 일부러 고약을 떠는 것이지.” 할아버지의 눈가엔 어느 새 울며 나간 할머니보다도 더 슬퍼 보이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떠나셨지요. 그리고 그 무덤가 한 편엔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일부러 할머니와 정 떼려고 했던 할아버지의 원치 않던 독한 모습이 왜 이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할머니도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정 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할머니에게 모질게 구셨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마 바로 요즈음의 제 마음이 그런 게 아닌지 부쩍 잔소리를 많이 하는 제 모습이 밉기만 합니다. 아픔이 있어도 참아 주었고 슬픔이 있어도 저 보이는 곳에서 눈물하나 흘리지 않았던 아내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와서 고달프고 힘든 삶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도 제가 더 힘들어 할까 봐 내색 한번하지 않고 모질게 살아 준 아내, 돌아보니 집사람의 세월이 눈물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집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살아 왔겠습니까?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 날 이 행복한 삶이 있을 리가 없지요!
 

지금 제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이 겨운 복도 모두가 집사람의 공덕인 것을 이제야 깨닫는 멍청한 제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모두가 아내 덕분입니다. 우리가정 화목하고 애들 둘 다 훌륭하게 키워 준 사람은 제가가 아닌 아내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화낸 일 밖에 없었고 언제나 제가 제일인 것처럼 집사람을 무시해도 묵묵히 바라보고 따라와 준 아내, 그런 집사람에게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도 아내가 아니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저보다 더 아파도 원망 한번 하지 않고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은 재가 되었겠지요! 이제야 못난 남편 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니 누가 먼저 갈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어느 할아버지처럼 모질게 고약을 떨어 정을 뗄 때가 온 것 아닌지요?
 

참으로 정이란 무섭습니다. 요즘 제가 먹는 것이 신통치 못합니다. 도무지 맛있는 것이 없어요. 그것도 한 술만 떠도 배가 부르고 속이 편치를 않습니다. 오늘도 제가 입맛이 없다고 점심으로 사온 삼계탕을 한 술 뜨는 제게 아내가 묻습니다. 떠날 때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아프면 가는 것이지 가는 사람이 뭘 그렇게 아픈 걸 걱정해?” 퉁명스러운 제 말 한 마디에 울컥 서러움이 복 바쳐 오는지 엉엉 웁니다.
 

순간, 달래줘야 하나? 아니면 더 퉁명을 부려 아예 정떨어지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래도 쓰다듬어 주고 주무르고 하여 서러움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평생을 함께한 사랑보다 깊은 정이 아닐까요?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납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집니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정이란 무엇일까요? 남남으로 만나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서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반기고 보내는 것인가요? 아니면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믿고 의지하며 살다가 미련이 남더라도 때가 되면 보내는 것이 아마도 정일 것입니다.
 

「인간고락원무실(人間苦樂元無實) 자성관조본탕평(自性觀照本蕩平)! ‘인간의 모든 고락, 실상이 없는 것, 자성을 관조하니 본래 탕평하도다.’」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3월 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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