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기자] 지난번 충무로체육관에 알만한 사람의 콘서트가 있었다. 본 기자는 평소 안다는 이유로 PD의 소개로 관람을 했었다. 뒷풀이까지 초대가 되어서 식사고 나누는데, 한 모퉁이에서 연실 누구의 지시를 받으며 있는 작가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본 기자는 작가의 생활이 궁금하여 물어 보았는데 관심이상의 이야기를 ㅂ를 통해서 들었다. ㅂ(29)씨는 중학생 때부터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주변을 관찰하고 적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각색해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자연스레 문예창작과에 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방송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송작가 3년 차. 그러나 이제 그녀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 작가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주최: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실, 방송작가유니온(준), 전국언론노동조합)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모두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고, 가장 열악한 처우를 받는 막내작가(보조작가)에 대한 보호가 시급함에 동의하며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제안했다. 

논의 된 내용중 먼저 방송작가유니온의 작가들은 자신과 동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현재 방송작가들이 처한 시스템은 불합리하며 반드시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번 한 작가는 “2008년 5월 1일 노동절에 첫 출근을 했다. 새벽에 퇴근을 했다. 그 이후로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만 쉬고 일을 했다. 그때 받은 월급이 100만 원이다. 세금 떼면 70만 원이 안 됐다. 선배들은 자신들의 막내작가 시절 때보다도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9년이 지난 지금과 비교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외에 좋은 선배들도 많지만 단순히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서 일을 하기에는, 불합리한 일을 겪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선의가 아니라, 개인이 없는 용기를 짜내서 뭔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불합리함이나 부당함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방송작가 9년차, 서명숙 작가)

TV(티브이) 드라마 “방송작가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체불이 된 6개월 작가를 상담했다. 그 작가가 외주제작사 사장에게 임금을 계속 주지 않으면 언론노조나 유니온에 도움을 받겠다 말하니, 임금이 1시간 안에 입금됐다. 그들도 아는 거다. 해줘야 하는 건데도 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 시스템에 대해서 정말 개선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방송 작가 토론회가 열리는 건 국내 최초라고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방송작가의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건, 20년 동안 작가들이 침묵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이같은 관행이 계속 유지됐다는 점이다. 방송작가 스스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다 보니, 새장의 문을 열어놓았는데도 더는 날갯짓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이 상황이 소름이 끼친다고 생각했다.

마치 새장 밖에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망각하는 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우리가 참고 일을 하더라도, 과연 좋은 방송을, 떳떳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 방송 작가들에게도, ‘당신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방송작가 4년차, 이향림 작가)

지난 해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송작가의 노동인권 실태를 조사한 것도, 객관적 지표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 후 변한것은 없고 당시 실태조사를 통해, 방송작가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막내작가 시급은 3천880원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68.8%가 구두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6.6%만이 서면계약을 했다.

작가로서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중 81.1%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방송작가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부당한 사례를 말하기 시작했고 지난 1년간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해왔다.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기자회견 이후, 정부에서는 방송 작가를 위한 어떠한 대책이 나오진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방송영상광고과)가 방송작가를 위한 ‘표준집필계약서’를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방송작가는 특수형태근로자로 부른다. 막내 작가가 저임금 등 문제에 시달리는 건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노동법에 적힌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을 위반하는데도, 노동부나 관계당국에서도 근로감독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특수형태근로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대법원의 판례들을 들며 “방송작가의 경우 최소한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통해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개별 노동조건 보호는 특별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 방송작가가 참여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 녹화 현장. ⓒ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

계속해서 궁금함에 말을 이어갔다. “방송작가? 돈 잘 버는 직업 아닌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송작가는 드라마작가다. 이름있는 드라마작가의 경우 회당 수천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ㅂ씨는 드라마가 아닌 예능·시사교양·보도 프로그램과 같은 비드라마 방송작가다. 업계에선 이들을 ‘구성작가’라고 부른다. 이름부터 다르듯, 하는 일도 드라마작가와 다르다.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구성부터 취재, 섭외, 자료정리, 촬영일정 계획, 프리뷰, 자막달기 등 업무 전반을 도맡는다.

글을 쓰고 다듬고 업무의 양이 많은 만큼 업무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밤샘 야근은 기본이고 집에도 일거리를 싸 들고 간다. 일이 너무 힘들어 구성작가의 절반이 1년 안에 그만둔다고 한다. ㄱ씨는 그래도 참고 버텼다. 힘들게 만든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될 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어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일을 시작한 지 보통 1년이 지나면 막내(신입)작가를 벗어나 서브작가로 올라선다. 이때 비로소 프로그램 안에서 5분 내외의 짧은 코너를 맡아 진짜 대본을 쓴다.

거기에 잔심부름에 “저희는 경력에 따라 막내작가, 서브작가, 메인작가로 분류를 해요. 죽을 듯이 힘든 5~6년의 막내, 서브시절을 거치면 메인이 되는 거죠. 메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힘든 일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기자가 듣는 이야기는 모독에 가까웠다. 정작 ㅂ씨가 들려준 막내작가의 업무조건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 방송작가 3년째인 현재, 그녀의 월급은 약 130만원. 첫해에는 90만원을 받았다. 실제 지난해 언론노조가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644명의 응답자 중 1년간 총 수입이 ‘1000만원 이상 ~ 200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이 53.1%(342명)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평균 수입은 1558만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직장인 평균 연봉 325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 고향인 여수에서 올라와 서울생활을 하는 ㄱ씨는 월세 50만원이 가장 아깝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데 월급의 거의 절반이 집값으로 빠지니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나 적은 월급보다 더 힘든 건 인격모독이다.

또 다른 작가 ㅇ씨(24)는 지난해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었다. 방송계에 만연한 성희롱을 견딜 수 없어서다. 외주제작사 소속이었던 ㄴ씨는 같이 일하던 PD에게서 수차례 성적인 농담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회식자리에서 술 따르기를 강요하는 일이 계속되자 모멸감과 동시에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회의를 가졌다. 이는 비단 ㄴ씨만의 일이 아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58.9%(362명)의 작가가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나름에 꿈을 가지고 시작한 꿈은 생각 이상으로 심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방송국 조직문화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게다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방송작가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성폭력뿐만이 아니다. 방송작가는 욕설, 폭행, 사적 심부름 등 온갖 인격모독에 시달린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생길 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일을 그만두기 전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한 ㄴ씨는 “원래 여기가 그래, 어쩔 수 없어”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

   
▲ 언론노조가 지난해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방송작가가 이토록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일, 방송작가유니온(준) 활동을 하는 이향림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계약서 조차 없는 노동의 실태 “방송작가는 처음 방송국과 계약할 때 계약서조차 쓰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그냥 구두계약으로 하는 거죠. 실태조사 보고서 보시면 근로표준계약서를 쓴다고 응답한 사람이 6%라고 나와 있는데, 제 주위에 실제로 계약서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엄연히 개인이든 단체든, 방송작가가 근로표준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송작가가 근로자가 아니어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방송작가는 이에 속하지 않는다. 방송작가를 독립성을 전제로 하는 창작활동에 종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작가의 경우 방송국과 별개의 주체로 창작활동을 수행하고 저작권을 인정받는다.

어디부터 문제일까? 문제는 구성작가다. 구성작가는 방송국이라는 사업장에 철저히 종속되어 프로그램 제작의 전 과정에 깊이 참여하고 있으며, PD의 직접적인 업무수행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있으므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이같은 점은 방송국이 더 잘 안다. 그럼에도 제작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방송작가 노동실태에 관심 두지 않는다. 방송작가들의 인권은 나날이 나빠진다. PD의 말 한마디에 잘리고, 몇 달 치 임금체불을 당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이향림 작가는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생소한 단어를 소개했다.

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알듯도 했다. “이렇게 저희같이 형식상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을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해요. 근로계약 대신 프로그램 한 건당 급여를 받는 방식으로 일을 하죠. 저희는 그 어떤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고용 관계의 특수고용 노동자로 일하는 직업은 방송작가 말고도 많다. 학습지 교사, 생명보험 설계사, 택배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이다. 그 수만 해도 전체 취업자 중 10%에 달하는 2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계약서도 쓰지 않고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고, 퇴직금, 연차휴가, 4대 보험 등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번에 만난 앞선 인터뷰한 ㅂ씨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것도, ㄴ씨가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한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이다. 상황 개선을 위해선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문제는 인권의 정덩성이다. 방송작가들이 뭉쳐야 하는 이유, 또 다른 방송작가 ㄷ씨(31)는 방송국의 위선적인 행태에 분노를 터트렸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의 임금체불·무급 인턴제도 등을 꾸준히 비판하는 방송국이 정작 내부의 상황은 모른 체하고 있어서다. 그래도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방송작가의 입장을 대변해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작가들이 뭉치고 있다. 5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이향림 작가는 작가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들려준다.

이런 개인 개인이 “이제껏 임금을 체불당하면 작가들은 참고 기다리거나 혼자 따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언론노조를 통해 임금을 체불한 사업자에게 전화로 따진 일이 한번 있었는데, 바로 임금을 지급하는 거에요. 놀라운 경험이었죠.”

이런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 작가는 아직은 노조에 가입을 문의하는 방송작가가 적다고 전했다. 혹여 노조에 가입해서 방송국으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다. 취재를 위해 먼저 인터뷰를 한 세 명의 방송작가가 모두 익명을 요구하고, 사진촬영도 허락하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드라마 제작에 가장 중요한 방송작가는 방송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이들은 수 십 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인기프로그램 인기스타, 인기 PD의 화려한 그늘 아래 가렸다.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켜주지 못하면서 문화콘텐츠 강국을 자처하는 일은 너무나 부끄럽다. 뭉쳐야 달라진다. 방송작가들의 많은 참여가 출발이다.

   
▲ 오는 28일 국회에서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다. 방송작가의 많은 참여가 절실하다. ⓒ 언론노조


지난 3월 28일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도 열린다. 언론노조, 노동부, 한국PD연합회 관계자가 모여 방송작가들로부터 수집한 노동인권침해 사례를 공유하고 개선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방송작가들이 많이 참여할수록 물론 효과가 크다. 언론노조(02-739-7285),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mediawriter)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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