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칼럼들에서 진작부터 수없이 강조했다. “검찰이 적폐세력의 몸통이다.” “검찰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검찰이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집권 3년차에 마침내 마각을 드러낸 것이다.” “정권에 대한 공개적인 항명이다. 항명을 넘어 검찰의 쿠데타다.” “법비(法匪, 법을 악용하는 도적)들의 난동에 다름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마코사키 우케루 저)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외무성에서 36년간 재직했던 전직 외교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45년 패전 후의 현대 일본사를 미국에 대한 자주파와 친미파 간의 대립, 갈등, 대결 구도로 해석한다. 저자는 역대 일본 수상과 정치인들을 친미파와 자주파로 구분하고 자주파 내각이 단명한 것을 미국의 공작으로 설명한다.

오늘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대목은 일본 정치에 대미 자주파를 대미 추종파로 바꾸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자주파를 친미파로 바꾸는 시스템에서 그 핵심 역할을 검찰과 언론이 담당한다는 대목이 유독 눈에 띈다. 검찰의 수사와 피의사실 유포, 이것을 특종인양 대서특필하는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대대적인 여론몰이를 진행하여 정치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작금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피의자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수많은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단독’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는 대부분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또는 ‘익명을 요구한 검찰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정보의 출처를 댄다. 검찰 쪽에서 누군가가 흘려줬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쓴다는 의미다. 검찰이 ‘유포’하고, 언론이 ‘추정’한 혐의들은 독자들에게 유죄의 ‘심증’을 갖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피의자는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마녀사냥을 당하는 셈이다.

기소 후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규정은 검찰과 언론이 합작하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 폐단을 막고자 만들어진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먼 나라 얘기다. 제정된 지 66년이 지나도록 이 죄명으로 단 한 번도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 피고인이 이후 재판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검찰의 수사속보를 좇아 홍수처럼 ‘단독’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은 무죄판결에는 일제히 침묵한다.

검찰이 언론과 유착하여 벌이는 마녀사냥의 해악은 그것이 단지 개인의 인권 침해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순한 정치공작의 목적으로 자행될 경우 국민주권을 침탈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가장 적나라한 최근의 사례는 브라질에서 벌어진 ‘세차작전(Operation Car Wash)’이다. 세차작전은 브라질의 고위급 정‧재계 인사 수백 명이 연루된 브라질 최대의 부패 스캔들인 페트로브라스 사건을 말한다.

세차작전은 2014년 3월 세르지우 모로 판사의 주도로 시작됐다. 문제는 부패 척결이라는 대의명분의 이면에 감춰진 그 정치적 저의(숨은 목적)였다. 우파 사법부와 보수 언론이 합작하여 집권 좌파 노동자당의 부패를 집중 부각시켜서 현직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시킨다. 나아가 2018년 대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그의 피선거권을 박탈해 버린다. 그리고 대선에서 극우파 보우소나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세차작전의 영웅 모로는 보우소나르 정부의 ‘슈퍼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한다.

브라질의 온라인 저널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가 폭탄 같은 사실을 폭로하였다. 모로 판사가 세차작전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긴밀하게 내통하였음이 드러났다. 기소를 하는 자(검사)와 판단을 내리는 자(판사)가 한통속이 되어 공모를 한 것이다. 추악한 협잡 공모의 증거들이 텔레그램 그룹 채팅과 녹취물, 영상들, 그리고 수많은 문서들에서 속속 확인되었다. 모로는 검찰에게 언론을 통해 룰라를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검찰은 증거가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했고, 모로는 서슴없이 유죄판결을 남발했다. 폭로된 사실들에 따르면 정치법비들의 사법 난동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세차작전은 정치법비들이 주도한 한편의 ‘정치 쿠데타’였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이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과거에 중남미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미국이 배후조종한 쿠데타를 통해 독재자들이 권력을 찬탈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었다. 이런 흑역사가 있기 때문에 중남미 사람들은 ‘사법 전쟁(lawfare)’(정적을 제압하기 위해 사법부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신형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한다. 군사 쿠데타 대신에 사법 전쟁이라는 신종 수법을 동원하여 기존 특권층이나 외국 정부 혹은 국제 자본이 정치에 개입하고 주권을 훼손한다고 보는 것이다. 룰라 역시 감옥에서 진행한 ‘디 인터셉트’ 인터뷰를 통해 세차작전의 배후에 미국 법무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리나라는 군부의 정권 찬탈과 장기독재를 시민항쟁으로 끝장내고 정치적 민주화를 실현했다.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검찰은 군부의 총칼 아래서 하수인으로 부역하는 일개 법비 신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민주항쟁으로 정치군부를 물리치고 나자 권력의 노른자위를 꿰차고 앉은 집단이 정치검찰이다. 과거 정치군부의 위치를 현재 정치검찰이 차지했다.

현재 검찰은 주권자에 의하여 민주적으로 통제받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자치단체의 장, 그리고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의원에 대해서는 선거 제도를 통하여 시민이 직접 개입‧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그런데 검찰은 시민이 직접 개입‧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재벌총수도, 국회의원도, 군 장성도 죄가 있으면 감옥에 간다. 전 대통령도, 전 대법원장도 구속을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검찰만 법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특권을 누리고 있다. 검찰을 적폐세력의 몸통이라고 하는 이유다.

정치군부의 쿠데타가 불가능해지자 대신 정치검찰이 청와대에 항명을 하고 국민주권을 찬탈하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의 언명에 대해서도 자기의 입장을 내어 꼬박꼬박 대꾸하고, 청와대와 여당의 발표에 대해 성명을 내서 일일이 맞대응하고 있다. 흡사 검찰청이 계엄사령부이고 윤석열이 계엄사령관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청의 ‘이중권력’ 같은 착각이 들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윤석열은 역대 가장 강력한 검찰총장이다. 윤 총장은 대검 반부패부장(과거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장에 차장, 특수부장까지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그가 결심만 하면 언제 어떤 수사든 가능한 구조다. 검찰청은 법무부의 외청으로, 이제껏 법무장관 수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종의 ‘하극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상초유의 법무장관 수사 강행은 윤 총장 파워의 실증이다. 특수부를 총동원한 전방위 압수수색 소동은 윤석열 검찰의 위력 과시다.

지난 24일,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나고 갔다고 한다. FBI 국장의 대검찰청 방문은 20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하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기간에 때마침 다녀갔다. 윤석열은 매번 문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일 때마다 보란 듯이 예민한 대상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실행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자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조국 장관의 자택을 11시간 동안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미국 FBI 국장을 만났다. 이것을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할까?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28일 저녁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일대에 운집한 수백만 촛불은 이제 투쟁의 과녁이 정확히 정치검찰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군부를 물리쳤듯이 정치검찰을 물리쳐야 한다. 주권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 진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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