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saccharin)을 아십니까?
 
미국 메릴랜드 주(州)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연구중심의 명문 사립대학 존스홉킨스대가 있습니다. 1878년 이 대학의 유기화학자(인 아이라 렘센 : 콘스탄틴 팔베르크) 두 사람은 콜타르 추출물 산화를 연구하던 중 설탕보다 500배나 단맛을 내는 물질을 우연하게 발견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물질은 칼로리가 전혀 없는데다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배설되므로 다이어트, 비만, 당뇨병 환자들이 설탕을 대신하는 감미료로 널리 사용하고 있습니다. 1885년 합성법(合成法)을 개발한 두 과학자는 특허를 취득하며 라틴어 사카룸(saccharum)을 합성시킨 사카린(saccharin)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10만 배로 희석해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인공감미료 사카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는 저칼로리 감미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많은 양의 사카린을 먹은 쥐가 방광암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일부 과학자들이 반대 주장을 제기했지만 발암성 물질이라는 근거 없는 낭설까지 떠돌아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사카린 100g은 설탕 30kg과 맞먹을 만큼 단맛이 강해 주로 콜라나 사이다 제조에 많이 사용되지만 매일 사용하는 치약에도 들어있고 제약회사 알약 코팅제에 이용되어 왔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연간 2천500톤 정도 생산되고 있지만 약 90%가 수출되고 국내 소비는 10%정도입니다. 중국과 인도에서도 많은 양이 생산되는데 우리나라 제품이 순도가 높고 질적으로 우수해 코카콜라, 화이자 등 제약사에 주로 납품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미국 국립 환경보건학연구소가 사카린은 암을 유발시키는 유해물질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리자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사카린 제품에 부착된 경고 문구를 삭제하는 법안에 서명하였습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결과로 외국에서는 이미 유해물질 리스트에서 제외되었으나 우리나라는 근간에야 사카린 사용범위를 제과 등 식품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67년 박정희 정권은 대선준비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분포도가 농촌인구가 절대적으로 우세, 비료공장 건설이라는 정책발표는 선거전에 대단한 효과를 가져다 줄 만 했습니다.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대표 이병철)는 일본 미쯔이물산 상업차관으로 울산에 비료공장을 건립하려는 계획아래 정부와 밀약을 맺었습니다. 상업차관도입 전 과정은 삼성 창업자 故이병철씨가 직접 교섭했으며 정부는 지불보증을 서주는 쪽으로 지원했습니다. 연간 33만 톤 생산하는 비료공장을 건립하는데 4천2백만 달러를 2년 거치 8년 상환, 연리 5.5%에 차관했으니 시중 6∼6.5% 이자율에 비교해 삼성특혜설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당시 비료공장 건립에 깊이 관여한 삼성가의 적자 이맹희씨는 1993년 펴낸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 “한국비료 밀수사건 공범”은 박정희이며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것은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쪽이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정부는 10억원 은행 융자금 알선, 공장건립 인허가 신속처리, 비료공장 건설에 정치자금을 한푼도 내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답니다. 그러나 삼성은 비료공장 자재를 수입한다는 명분으로 사카린 원료 ‘OTSA’뿐만 아니라 수입금지 품목이던 에어컨, 냉장고, 양변기, 전화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과 사치품을 건설자재라고 속이고 대량으로 밀수입 한 뒤 암시장에 되팔아 실로 엄청난 액수의 이익금을 챙겼습니다. 
 
밀수사건이 알려지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당시 미쯔이 한국담당자로 근무했던 ‘니시지마’ 상무는 “삼성이 수입송장에 건설자재로 기재해줄 것을 요구해 왔으므로 미쯔이 측에서는 거부할 수 없었으며 한국 국내사정상 자재부족 등 공장 가동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미쯔이물산에서 빌리기로 한 비료공장 건설사업 상업차관 액수가 처음에는 3천500만 달러라고 밝혔으나 총액이 4천390만 달러로 대폭 증액되었으며 그 가운데 약 30억엔 정도가 한일 양국의 썩어빠진 정치인들 골프 가방이나 자동차 트렁크에 실려 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밀수를 사회 5대악으로 규정 엄중히 처벌하였으나 삼성에는 고작 벌금 2천만원의 솜방망이 처벌로 그쳤습니다. 1966년 9월 21일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의 여론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이병철은 국민대사과문을 발표하고 그룹총수에서 사임하지만 9월 22일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 질의시간에 야당이 상업차관 자금이 밀수품 결재에 사용된 내력을 공개하고 각 부처 관련자는 전원구속, 내각 총사퇴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급기야 무소속의원 김두한은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가 앉아있는 국무위원석에 미리준비 한 똥물을 뿌리는 ‘국회오물투척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답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삼성 측은 비료공장을 무조건 국가에 헌납한다는 조건으로 밀수사건은 슬그머니 마무리 되고 말았습니다. 발암물질이라는 누명까지 쓰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카린은 지금까지도 삼성가의 금고를 채우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온갖 비리로 재벌이 되었지만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넘들을 볼 때 서민들이 재벌이라면 무조건 증오하는 이유가 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승   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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