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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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승리
  • 김덕권
  • 승인 2019.10.0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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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연세대의 류석춘 교수가 강의 도중 막말을 쏟아 냈다고 합니다. “위안부는 일종의 매춘”이라며 “매춘은 오래된 산업이고 많은 국가가 용인하고 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는 또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갔다는 거냐?’는 학생의 질문에 “지금 매춘하는 사람은 부모가 판 것인가. 다 살기 어려워 간 것”이라며 “궁금하면 (학생이) 한번 해볼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요즘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중도(中道)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막말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피를 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왜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그들과 맞서 싸워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막무가내이기 때문이지요. 그들과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지혜는 없을까요?

 

참다운 지혜는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참다운 지혜는 거짓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참다운 지혜는 사랑함 속에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병법가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참 승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젊은 사냥꾼이 오리 사냥을 나갔습니다. 날아가는 청둥오리를 총으로 쏘아 맞혔는데 그만 오리가 마을의 어떤 집안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냥꾼은 그 집 대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았습니다. 문을 열고 주인이 나왔는데 보니 영감님이었습니다.“저 실례합니다만, 이 집안으로 제가 사냥한 오리가 떨어졌는데 좀 주셨으면 합니다.” “예. 오리가 떨어진 것은 맞습니다만 오리를 줄 수는 없습니다.” “왜요? 제가 이 총으로 쏘아서 잡은 건데요.” “그건 모르겠으나, 분명한건 내 집 집안으로 떨어졌으니 내 것이지요.”두 사람은 오리 때문에 시비가 붙었으나 서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영감님은 젊은 사냥꾼의 무례함에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한 끝에 영감님이 하나의 재미있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니, 내가 제안을 하겠소. 우리 주먹대결로 결판을 냅시다.”‘보아하니 다 늙은 영감이 무슨 힘이 있다고 주먹대결을 벌이자고 하나?’ 사냥꾼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그럼 그럽시다. 어디 룰을 한번 말해보세요.”

“좋습니다. 젊은이!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요.” “영감님이나 후회하지 마시고 어서 게임 룰을 말씀해 보시지요.”“좋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서로 세대씩 때려서 항복하면 지는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나이가 많으니 먼저 시작하겠소.” 사냥꾼은 서서 떡 버티고 얼굴을 치라고 대주었습니다. ‘퍽’ 하고 영감님의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젊은이의 눈앞에 불이 번쩍 튀었습니다. 영감이라고 우습게 봤더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또 ‘퍽!’ 두 번째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정신이 아찔하였지요. 코피가 터져 옷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또 ‘퍽!’ 드디어 마지막 주먹이 꽂혔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일어난 젊은 사냥꾼은 정신을 차리며 말합니다.

“자, 이번엔.. 내 차례요. 영감..” 사냥꾼은 덩치가 어마어마하였습니다. 한방만 때려도 영감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영감은 태연하였지요. 드디어 사냥꾼이 무시무시한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잠깐! 됐소이다. 내가 졌소. 오리를 줄 테니 가져가시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사냥꾼은 오리를 찾았으나 승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싸움에는 이긴 것 같으나 지는 싸움이 있고, 진 것 같으나 이긴 싸움이 있습니다.류석춘 교수 같은 막무가내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져주는 게 이기는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보다는 지혜가 승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있는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공자(孔子)는 세 가지 방법으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명상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모방을 하는 것이며, 세 번째 방법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의 승리는 ‘삼학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삼학공부는 정신수양(精神修養) · 사리연구(事理硏究) · 작업취사(作業取捨)를 하는 것이고, 삼학을 촉진시키는 방법은 <신(信) · 분(忿) · 의(疑) · 성(誠)>으로 하면 지혜의 승리를 얻지 않을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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