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디서든 종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종교는 정치로부터 분리된 이후 중세 사회에서 정치보다 우위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종교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 19세기 과학주의자들은 앞으로 종교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중세 사회질서로서의 종교와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종교가 근대적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500년 전 ‘종교개혁’을 거치면서였다. 중세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 사상이 바탕이 된 단결과 통합을 중시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전개되면서 수많은 교파가 분리돼 나왔고, 집단보다는 개인이 종교생활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행해지던 종교적 의례는 간소화되거나 사라졌고 개인의 믿음이 중요해졌다. 이처럼 종교가 내면화하던 시대에 미국의 유명 종교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1902)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던 종교연구를 강하게 비판하며 본질적이고 개인적인 경험 차원의 종교를 강조했다.
 
그러나 경험을 표현할 때 쓰이는 언어나 어휘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의미가 수반된다. 개개인의 경험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유되며 사회적으로 강화되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인 찰스 테일러는 이러한 부분에서 의문을 품었다. 윌리엄 제임스가 사회 공동체적 맥락과 집단적 경험을 논의 과정에서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종교의 다양성』(2002)에서 윌리엄 제임스의 저작이 가진 이러한 한계를 지적한다. 100년의 시간을 두고 출판된 이 두 책은 현대 종교가 세속화됐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 하나 그 실현양상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는 개인적인가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를 형식적인 의례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경험으로 인식하고 이 개념을 양심의 갈등, 죄의식, 공허감이나 자비와 같은 내적 성향을 토대로 이해했다. 그는 모든 것을 논리적인 틀에 끼워 맞춰 설명하는 철학적 본질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종교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보다는 종교가 지닌 의미를 설명하려 했다. 윌리엄 제임스에게 ‘종교적 의미’란 “인간 개개인들이 고독 가운데 표현한 감정들, 행위들, 그리고 경험들”이었다. 그는 개개인이 제각기 다른 경험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에는 몇 가지 일관된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사람들은 궁극적인 대상과 관계된 경험을 겪으며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궁극적 대상에는 신은 물론이고 종교와 무관한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 포함된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궁극적 실재 앞에서 인간이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나 감사함 같은 ‘영혼의 안정감’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경험에 대한 윌리엄 제임스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감성주의를 기반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종교적 삶은 이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종교적 주지주의*에 저항했다. 강력한 감성과 표현으로 종교적 헌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주장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서구 세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는데, 윌리엄 제임스는 이를 계승한 셈이다. 종교개혁 이후 서양 근대 사회에서 종교의 경건함이 계속 강조되면서 종교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개인적, 헌신적인 형태로 변했다.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신앙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선언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각종 종교 행사들의 가치를 낮췄기 때문이다. 종교에 헌신하는 것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됐다. 독실하지 않은 자는 독실한 자만큼 구원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개인적 종교의 이해는 서구 근대성의 핵심이었다.
 
찰스 테일러는 윌리엄 제임스가 종교의 개인적 차원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근대성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본다. 그는 한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내면적이고 헌신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윌리엄 제임스의 관점에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 때문에 종교의 공동체적 가치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교회의 필요성은 수긍했으나 종교를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에 대해 찰스 테일러는 집단적인 종교적 삶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집단적 종교적 삶은 개개인과 절대자가 종교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상태뿐만 아니라 이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연결을 구성하는지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 사회에는 '움마'라는 신앙 공동체가 있다. 국적, 인종, 신분과 무관하게 오로지 알라의 계시를 받들고 실천하기만 하면 누구나 움마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움마 같은 공동체는 종교 없이는 구성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 찰스 테일러는 윌리엄 제임스가 이러한 종교적 연결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는 ‘종교적 연결’을 “신자와 신성한 것의 연결이 본질적으로 집단적이고 교회적인 삶에 따라 매개가 되는 방법”으로 정의한다. 교인들은 특정한 방식과 규칙에 따라 신적 존재를 추종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회적인 개념이므로 공동체가 매개가 돼 주지 않는다면 개인과 신성한 것 사이는 연결될 수 없다.
 
세속화 이후, 희미해진 종교권력
 
찰스 테일러는 윌리엄 제임스가 개인주의의 한계에 갇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개인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는 ‘표현적 개인주의’가 활발히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현대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때로는 거리응원이나 콘서트 관람 등의 공동행위에도 참여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이를 사회와 성스러움이 구축되는 계기로 지목했는데, 찰스 테일러는 그의 이론을 임의로 세 갈래로 나눠 설명했다. ‘구 뒤르켐주의’(Paleo-Durkheimianism)는 개인의 종교적 삶과 공동체적 삶이 통합되는 전통적 신앙 양식으로 국가나 사회 건설은 전적으로 신에게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 뒤르켐주의’(Neo-Durkheimianism)는 개인 신앙인들이 다양한 교파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적 신앙 선택의 자유가 확산되고 이를 사회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신앙 유형이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 생활의 양식이 변화하면서 구 뒤르켐적 사회에서 신 뒤르켐적 사회로의 이행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후기 뒤르켐주의’(Post-Durkheimianism)는 표현적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 종교적 성향을 가리킨다. 신 뒤르켐적 사회에서는 신앙 및 선택의 자유가 생겨나고, 후기 뒤르켐적 사회에서는 이전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조된다. 따라서 후기 뒤르켐적 사회에서는 종교와 국가 정체성 사이의 연관성이 없다. 찰스 테일러는 현대 사회가 후기 뒤르켐적 사회면서도 신 뒤르켐적 정체성이 계속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국가(ISIS)나 인도인민당처럼 종교적 표식을 통해 대규모의 사람들을 동원하고 집단적인 종교적 충성을 받아낸다. 단, 후기 뒤르켐주의에서 신 뒤르켐주의로의 회귀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후기 뒤르켐적 현대 사회에서는 공적 영역의 세속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 제도와 종교적 가치가 동일시되고 모든 것이 신의 섭리로 이해되던 중세와 비교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 제도가 비종교적 가치를 따르고 있다. 통치 면에서는 종교가 권위를 잃어가고 있고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종교학자들은 ‘현대 세속 사회’라 일컫는다. 세속화가 진행되는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유럽의 지성인들은 종교를 시대착오적인 미신으로 치부하곤 했다. “불충분한 증거에 기대어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항상 잘못된 것이다”라는 클리퍼드의 말처럼 당시 소위 지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불가지론*적 입장을 들어 신앙을 거부하곤 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는 이들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어떤 진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를 인식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불가지론과 같은 규칙이 있다면 그 규칙은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논리에 따르면 불가지론적 거부는 오히려 비합리적인 입장이 된다.
 
계속된 세속화로 종교가 강제적인 힘을 잃어가는 문화에서는 자발적 결사체로서의 교회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교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찰스 테일러는 교파들이 일종의 작은 국가들과 같으며 종교가 국가와 분리되는 데 교파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교파에는 기존의 종파와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각 교파의 교회에서는 이곳을 선택한 교인들만이 종교 활동을 한다. 각 교파는 전체 교인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하지만 선택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특수성은 오히려 각자가 더 넓은 범위의 느슨한 전체에 소속된 듯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장로회, 감리회와 예수회 등 여러 교파의 교회가 존재한다. 이들의 세부 교리는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각 교회의 교인들이 모두 동일한 개신교 신자로 통칭된다. 또 찰스 테일러는 서양 정교분리 국가에서 교파적 정체성이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도 설명한다. 교파가 여럿 공존하는 국가에서는 특정한 한 교파가 국가 단위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의 영향력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먼 미래에는 종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와 찰스 테일러가 주장했던 것처럼 세속화된 사회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무신앙 세계에 이유 모를 불안을 느낀다.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때로는 신앙이 힘이 없다고 느끼고 좌절하고, 무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때로는 신앙에 이끌리기도 한다.
 
종교는 여전히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믿음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불가지론자가 돼야 한다는 말에 반기를 든 윌리엄 제임스의 주장은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찰스 테일러는 현대 사회를 후기 뒤르켐적 사회라고 진단했지만 아직 집단적인 모습 또한 관찰된다는 점에서 신 뒤르켐적 정체성 또한 세계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세속 사회의 종교적 삶은 점점 더 개인화하는 한편 집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앞으로 종교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의미를 띠게 될지, 찰스 테일러가 그랬듯 100년이 흘러 그의 논의를 날카롭게 해석해낸 명저가 또 다시 나타날지 기대해본다.
 
▲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종교적 주지주의: 비주관적 사실로부터 엄격한 추론을 끌어내는 논리적 이성에 근거해서만 종교적 대상을 만들어내려는 사상. 절대적 존재의 철학, 교의적 신학이라고도 불린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윌리엄 제임스
김재영 옮김
한길사
638쪽
30,000원
 
▲ 현대 종교의 다양성*불가지론: 신의 존재에 대한 명제 등 몇몇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
 
현대 종교의 다양성
찰스 테일러
송재룡 옮김
문예출판사
159쪽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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