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현 서강대 교수(트랜스내셔널 역사학전공) 국경이 사라져버린 지구의 新역사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학문이 있다. 바로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이다. 학자들은 세계화와 기계화가 낳은 병폐를 인문학 파워로 극복하자고 한목소리로 주창한다. 서강대 국제인문학부에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전공이 있다. 임지현 교수는 사학과 교수 중 유일하게 다소 생소하고 독특한 이 전공을 가르친다.

 
“오늘날 지구는 아프리카에 모여 있던 전 인류가 흩어져서 살고 있다. 그 자체로도 인류의 역사는 이동하고 이주해 온 역사다. 특수한 지역의 개념으로 역사를 고정할 수 없다. 한반도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먼 옛날부터 이주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9세기에는 하나의 국가(nation) 단위로 역사를 잘라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따져보면 내셔널 히스토리는 짧고 작위적인 역사다.”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역사를 단절시키고 잘라내지 않는다. 19세기 민족주의 역사학에 의해 굴절된 역사를 펴는 작업을 한다. 세계화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범위는 작았을지 모르나 인류가 서로 교류했던 먼 옛날부터 세계화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임 교수는 1999년《민족주의는 반역이다》로 권력 이데올로기 일색이던 역사의식에 반향을 일으켰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대안 제시가 무엇이냐는 질문도 수없이 받았다. 2000년대 초 ‘대안이 없다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해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고민은 계속됐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의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수없이 고민하고 부딪혔던 스스로의 질문 속에서도 “역사에 나름의 답은 있다”가 결론이 된 것.
 
임 교수는 스스로를 ‘기억 활동가’로 소개한다. 기억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역사공부는 과거에 대한 해석이자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각국은 과거를 자국 중심적으로 서술하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 공간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생각하다보면 자국 중심적 기억의 코드에서 벗어나 공존의 코드를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도 위안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일본 내의 역사가 여전히 민족주의적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얼마나 남성 국수주의적 시선으로 기억됐는지 알 수 있다. 한국 남성주의자들도 완전히 위안부의 책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위안부 할머니의 고백이 있기 전 위안부를 민족적 수치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우리 자신도 먼저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해야 상대방을 향한 비판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민족만 잘했다고 주장하는 민족주의 내러티브 역사교육은 지양해야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의 역사는 사실과 왜곡, 거짓이라는 프레임 속에 살아 있다. 사유의 방식을 찾기보다는 옳고 그름만을 갈구한다. 임 교수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역사가 아니라 왜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다른 해석이 나오는지 의문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는 서구, 주류, 남성, 권위 중심의 문화였다. 전 지구적으로 고수해왔던 단단한 경계와 층위가 무너지고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시기가 21세기다. 고리타분하고 강압적인 기준이 사라진 대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인류를 엄습한다. 임지현 교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이 모호함의 시대 속에서 공생의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석탄발전소를 돌리면 미세먼지로 인해 서울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약 2년 정도 줄어든다. 한국이 중국 정부에 발전소를 돌리지 말라고 요청한다면 주권 침해인가.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위해 발전소를 계속 돌리는 것은 민족 이기주의가 아닌가. 이처럼 우리 세계는 주권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는 세계가 됐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필요 없이 우리는 서로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민족주의적 주권은 허구적인 개념이다. 국경을 넘어 서로 합의하고 공생을 위해 협력하는 방안을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이 제시할 수 있다”
 
그는 대학사회도 트랜스내셔널처럼 경계를 넘을 것을 제안했다. “융합학문도 구식이다. 기존 학제 간 학문을 단순히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연구가 아니라 학제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산업체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대학의 한 역할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의 토양을 제공하는 일이다. 기존의 틀을 바꾸는 기제로 트랜스 내셔널 인문학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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