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박훈규 기자] 홍콩정부와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거리로 나온 10대는 지난 2014년 우산혁명 때 노랑이 상징 색이었다면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의 상징 색은 검정이다. 시위대 최일선에서는 검정 보호장구를 착용한 청년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해 왔다. 6월 11일 입법원 앞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방패를 등지고 앉아 명상에 잠겼던 ‘방패 소녀’처럼 시위대는 체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홍콩 현지 대학교수 3명이 조사해 지난 1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의 60%가량이 20대였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6월 9일부터 8월 4일까지 12차례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가한 6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시위 참가자는 ‘젊은 고학력의 중산층’이다. 시위 참가자의 57.7%가 10·20대였다. 20~24세가 26%로 가장 많았다. 45세 이상 장년층은 18%에 그쳤다. 시위 참가자의 상당수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당시와 그 이전 상황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라는 뜻이다. 이번에 처음 시위에 참가했다는 응답자는 16%였고, 2014년 시위에 참가했었다는 응답자는 60.5%나 됐다. 시위 참가자의 73.8%가 일정 수준의 대학 교육을 받았고, 50.6%가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20대의 참여가 높은 것은 정치적 자유 외에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안정 등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사진: 현재 홍콩은 취재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 뉴스프리존 영상 갈무리
사진: 현재 홍콩은 취재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 뉴스프리존 영상 갈무리

한편 서울에서 지난 4일, “홍콩 정부는 실탄 발사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총상을 입은 17살 남학생과 기타 시위자들을 폭동죄로 기소했습니다. 홍콩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이 남학생이 왼쪽 어깨에 총을 맞았다고 했지만, 실제 총알은 심장 왼쪽에서 불과 3㎝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됐습니다. 어깨와 심장도 구분할 수 없는 홍콩 경찰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한국 기독학생회 국제부 간사 파니(33·Fanny)는 서툰 한국어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홍콩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홍콩에 한국의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알린 홍콩 기독학생회 출신이기도 한 그는 4일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날 홍콩의 내각 격인 행정회의에서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을 결의, 공포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파니는 “오늘 하루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한 홍콩인들의 퍼포먼스에 참여한 것”이라며 “홍콩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홍콩 경찰이 지난 1일 ‘애도의 날’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생에게 실탄을 발사한 사건에 대해 국내 시민사회 단체들과 재한 홍콩인들이 연대의 마음을 모아 홍콩 정부의 무차별적인 시위 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지금의 홍콩 반환 22년: 홍콩 시민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지 2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국 국민보다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홍콩대가 지난 6월 실시한 정체성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자신을 홍콩 사람이라고 답했다. 중국인이라는 응답자는 23%에 그쳤다. 홍콩의 반환으로 중국인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응답은 27%로 1년 전 조사 때보다 11% 포인트 떨어졌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세대별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 18~29세 응답자의 9%만 ‘중국 국민이 돼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반면 50대 이상은 38%가 중국 국민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고 응답했다. 재야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은 지난 주말까지 100만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를 3차례나 주도했다. 하지만 2014년 때와 달리 두드러지는 지도자가 없다. 홍콩의 전문가들과 언론은 2019년 시위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첫째,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딱히 없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던 2014년 우산혁명은 17세의 조슈아 웡 등이 주도했다. 중심가를 점거하고 79일간 시위를 지속하면서 지도부 상당수가 체포됐고 일부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시위에서 얻은 교훈이다. 둘째, 치밀한 전략이 없다. 로이터통신은 시위대가 ‘유수전략’을 차용했다고 분석했다. 흐르는 물처럼 상황에 따라 시위 장소와 방법이 수시로 바뀐다. 유연성과 창의성이 강점이다. 조직력과 통제력은 떨어지지만 경찰의 진압도 어렵게 한다. 셋째,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이다. 온라인상에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행계획을 투표로 결정한다. 리더가 없다 보니 메시지가 통일되지 않아 혼란을 줄 때도 있다. 용감한 20대는 홍콩의 행정장관이 아니라 베이징의 중국 지도부를 상대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의 주권을 넘겨받으면서 일국양제를 50년 동안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2047년 이후 홍콩의 미래에 대해 중국 정부와 홍콩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베이징의 중국 정부는 시위대가 요구하는 행정장관 직접선거를 받아 줄 생각도, 일국양제를 유지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비폭력 시위로 중국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홍콩이 일상으로 돌아갈지는 불투명하다. 시위대가 뜻을 굽히지 않고 있고, 중국 정부도 10월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사태 해결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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