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51회

방문

애춘이 지선에게 끌리기 시작한 것은 지선의 집을 방문한 이후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애춘의 우울증 증세를 지선은 유심히 관찰해 왔었다. 지금은 정세원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아카데미〉모임에 심정수도 드나들고 있다는 것이 지선의 마음에 걸렸다. 나약한 애춘이 그의 술수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되었다. 한 명의 여선생과 여러 남선생들이 드나들고 있는 그 모임에 대해 사람들은 애춘을〈여왕개미〉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그러나 애춘은 그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소문에는 요즘 그 모임에 애춘이 보이지 않아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말도 돌았다. 얼마 전 프로방스에서 대화를 깊이 나눈 후 애춘은 지선과 더 깊은 유대를 원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요즘 송박사가 사회복지 취재로 독일에 순방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 지선은 집으로 애춘을 점심식사에 초대해 함께하고 싶었다. 오붓하게 두 사람만의 대화의 꽃을 피우고 싶었다.〈프로방스〉에서 털어놓은 애춘의 사연은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선은 깊은 대화 속에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선의 집은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연남동이었다. 오래된 한옥의 단독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주택은 과히 넓지는 않았지만 정원이 비교적 잘 손질되어 있었다. 담장의 활짝 핀 장미꽃이 한결 집의 분위기를 아름답고 여유롭게 했다. 현관문에 들어서자 양쪽의 화단과 잔디가 보였고 그 건물의 뒤뜰에 하얀색 건물이 보였다. 단독주택의 운치가 있어 보였다. 애춘은 아늑한 고향의 집에 온 듯 정감이 치솟았다.

“어머! 단독주택은 이래서 좋구나! 정원도 즐기고 마당의 풍치를 살릴 수도 있어서요. 아파트는 좀 메마른 것 같아요!”

“맞아요. 전 전원적인 풍경이 좋아서 좀 불편하더라도 이 집을 고집하고 있어요!”

아파트는 따뜻하고 재산가치가 있고 편리하다. 그러나 단독주택은 사방에 단열이 안 되고 좀 여러 가지로 위험요소가 있기도 하다며 그 차이점을 서로가 얘기 하다가 어느덧 거실로 통하는 현관 입구에 도착했다. 집안은 응접실의 정면에 바라다 보이는 커다란 액자가 있었다. 많이 알려진〈고호의 해바라기〉정물화였다. 크기가 크고 정사각형의 액자로 되어 있어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아, 저 그림 전시회 때 함께 구매한 것이죠?”

“네, 저번에〈반 고호〉전시 때 장 선생님과 같이 구입한 것이죠. 어렸을 때 고호에 흠뻑 빠진 남편이 좋아해서 눈에 잘 띄는 이곳에 공간을 내 걸어 두었지요!”
애춘은 커다란 빈방에 펴보지도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둔 액자가 문득 생각났다. 그 동안 무엇에 미쳐 살았는지 그림을 좋아했던 정열조차 숨을 쉴 수 없었더란 말인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 이렇게 실내에 걸어두니, 정말 근사한데요!”

애춘은 자신이 미술을 전공했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남자에게 쫓겨 예술을 사랑하고 감상했던 취미조차 잃어버리고 말라버렸던 것이다. 애춘은 반 고호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선의 예술적 감수성과 안목이 깊어 보여 더욱 사람이 고상하게 여겨졌다. 실내는 화려하지도 않고 운치가 있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고풍스러우며 예술적 분위기가 풍겼다. 응접실의 중앙 벽 쪽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남편과 민지선이 나란히 뒷줄에 섰고 자녀들 셋이 오붓하게 앞줄에 앉았다. 정말 다복해 보였다. 그런데 남편은 TV에서 자주 보았던 송문학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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