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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여·익산'의 찬란한 백제 문화, 천육백년 만에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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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여·익산'의 찬란한 백제 문화, 천육백년 만에 살아나
  • 정수동 기자
  • 승인 2019.11.12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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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부여 익산’ 찬란한 백제 문화 천육백년 만에 살아나다

[뉴스프리존=정수동 기자] 가을 여행이 막바지다. 설악권 등 강원 경기 지역의 단풍이 절정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제 공주 부여 익산의 단풍은 한창 무르익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역사 숨결까지 느낄 수 있다면 가을 나들이는 한층 풍성해 질 것이다. 바로 공주 부여 익산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 방문을 통해서다.

공주 부여 익산에는 1995년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등에 이어 12번째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정림사지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왕궁리유적 능산리고분 미륵사지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나성 등이 자리잡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떠나는 가을여행의 매력으로 풍덩 빠져보자!

#공주시에는 공산성이 있다

공산성(사적 제12호)은 백제 옹진시기의 왕성이다. 백제는 고구려에 의하여 한성이 함락된 475년부터 사비(현재의 부여)로 천도하는 538년까지 웅진(현재의 공주)에 수도를 두었다. 이때의 왕성을 웅진성이라 불렀고 지금은 공산성이라 이름한다.

공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공주는 동서남쪽 삼면에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북쪽으로는 금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공산성은 공주 시가지 북쪽에 걸쳐 있는 약 20만㎡ 규모의 거대한 산성으로 산성 내에 왕궁을 둔 매우 독특한 사례이다.

산봉우리를 연결하고 계곡을 가로질러 성벽을 쌓아 방어력을 극대화한 전형적인 방어용 산성으로 성 안에 왕궁을 비롯한 주요시설들이 배치되었다. 웅진시기의 왕성이 공산성으로 결정된 것은 북쪽으로부터의 침입이 있더라도 금강이 자연적인 방어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산성이 지나는 방어상의 이점은 웅진시기 내내 왕성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웅진시기 이후에도 국가 방어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왕궁지 및 부속시설지 성벽의 축조기법 등이 밝혀졌다.

한편 공산성은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빼어난 경관과 단풍을 자랑한다. 공산성 성곽을 따라 걷노라면 천수백년전 당나라 병사의 침입에 대비하며 북녘 하늘을 지켜봤을 백제병사의 핏발선 눈빛과 거친 숨결이 들리는 듯 하다.

추천1: 금서루를 출발해 쌍수정> 쌍수정 사적비> 왕궁지> 쌍수교> 진남루> 영동루> 임류각> 연지 및 만하루> 공북루> 각종 체험지> 금서루 (약 2시간 소요)

#익산에는 미륵사지 석탑이 있다

익산시 금마면에 소재하는 미륵사지는 국내 최대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대 규모 중 하나이다. 이 터에는 해체 보수 중인 석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최대 규모의 석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가 있다.

미륵사지는 익산시 금마면 표고 430m의 미륵산 아래의 넓은 평지에 펼쳐져 있으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역(절이 차지하는 구역 안)을 자랑한다. 백제 사찰로는 이례적으로 삼국유사  무왕 조에 자세한 창건 설화가 전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는 미륵사의 석탑이 동방에서 가장 큰 석탑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미륵사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폐사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17세기경 강후진이 편찬한 ‘와유록’에는 폐허가 된 후의 미륵사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미시지 석탑은 고고학 조사 때 동탑지에서 노반석과 지붕돌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서탑과의 비례를 바탕으로 컴퓨터로 계산하여 복원한 결과 9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992년 미륵사지 동원에 석탑을 복원하였는데 그 높이는 24m로 아파트 8층 높이다. 오늘날 까지남아 있는 신라의 석탑 중 가장 높은 경주 감은사지 석탑이 13m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미륵사지 석탑은 그 두 배에 가까운 큰 규모다.

한편 미륵사지는 연못에 비친 동탑과 석탑의 그림자가 길게 가을의 여운을 남긴다. 이 또한 역사의 숨결과 함께 갈대의 움직임에 흔들리고 있는 연못속 석탑은 이 가을 깊게 뇌리에 새겨질 것 같다.

추천2: 미륵산 둘레길 제 3코스

미륵사지를 출발해 장암마을에 이르는 3.5km 코스로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부여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이 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기의 왕궁 관련 유적을 말한다. 관북리유적에서는 왕궁의 정전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와 왕궁 관련 시설들이 발견되었으며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과 바상시 방어성의 역할을 하였는데 오늘날까지 백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부여군 부여읍에 소재하는 부소산성은 부여 백마경을 굽어보는 표고 106m 부소산의 능선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자리 잡고 있고 그 남쪽 기슭에는 관북리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시가 이루어져 왕궁의 주요 시설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토성 등이 확인되어 백제의 왕성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관북리 유적은 조사 결과 다양한 특징적인 시설과 유물들이 발견되어 사비시기의 왕궁으로 추정된다. 관북리유적의 대표적인 유적은 대형지이다. 이곳은 규모와 구조를 볼 때 왕궁 내에서가장 중요한 전각 건물인 정전으로 보인다. 거의 같은 규모와 구조의 건물이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부소산성은 왕궁의 배후산성으로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위급할 때는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되었다. 실제로 백제 멸망기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이라는 위급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였음은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 산성 내부에서는 백제와 관련된 많은 장소가 확인되는데,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낙화암도 이 중 하나이다.

한편 부소산성은 그 어느 명산 못지 않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백제 역사의 아픔이 새겨져 있는 의자왕의 발걸음을 떠올리면서 그 족적을 따라 걷는 경험은 또 다른 여행의 맛을 선사한다.

추천3: 관북리유적을 출발해 부소산성 매표소> 삼충사> 영일루> 군창터> 반월루> 궁녀사> 사자루> 낙화암> 고란사> 구드래공원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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