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의 새 작품 '언노운 걸'이 최근 한국에서 개봉했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1999)', '자전거를 탄 소년(2011)', '내일을 위한 시간(2014)' 등의 작품에서 실업문제나 빈곤문제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바 있다. '언노운 걸'은 공동체 의식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죄의식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주인공 제니는 교외 빈곤지역의 작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이며, 환자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쌓고 있다. 어느 날 한 어린 손님이 발작을 일으키고, 인턴 줄리앙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제니는 줄리앙에게 “의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누를 수 있어
야 한다”라며 다그친다. 그날 밤, 진료 시간이 지나 한 손님이 진료실 초인종을 눌러오고, 줄리앙은 문을 열어주자고 말한다. 평소의 제니였다면 진료시간과 상관없이 문을 열어줬겠지만, 그는 줄리앙에게 의사로서의 냉철함을 다시 강조한다. 게다가 그날 밤 제니는 다음 달부터 새로 일하게 될 병원의 미팅 자리에 가야했다. 더 좋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결국 제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줄리앙은 갑자기 의사를 그만두겠다며 고향으로 떠나고, 곧바로 경찰이 제니를 찾아온다. 경찰은 신원미상의 흑인 소녀가 강가에서 사체로 발견됐으며, 소녀가 전날 밤 제니의 병원 문을 두드렸었다고 전한다. 제니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사건 발생 장소 부근을 맴도는데, 경찰과 이웃 중 어느 누구도 소녀의 신원과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을 목격한다. 결국 제니는 소녀의 죽음에 대해파헤치기 위해 이름 찾기를 시작한다. 소녀의 이름과 사인을 찾아 소녀가 ‘신원미상·사인불명’으로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 제니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제니가 사건 발생 현장 근처 강가에 서 있다. ⓒ IMDB
 
‘이름찾기’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고됐다. 소녀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지만, 고군분투 끝에 소녀의 죽음과 연루됐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은 제니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제니는 그녀의 어린 환자 브라이언과 그의 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해달라고 조금씩 호소하지만, 그들은 망설이다가 수차례 진실과 거짓 사이의 대답으로 대응한다. 진실을 위해 브라이언의 집에 몇 차례 찾아갔던 제니는 그의 주치의직까지 잃는다. 그러던 중 제니는 소녀가 사망한 날 밤 한 캠핑카에 찾아갔었다는 얘기를 듣고 캠핑카의 주인에게 진실을 묻지만, 그 역시 불같이 화를 내며 제니를 협박할 뿐이다.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캠핑카의 주인은 소녀에게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성노동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성노동을 끝내고 걸어가던 소녀를 불러 세워 다시 한 번 성노동을 요구한다. 소녀가 이를 거부하자 그는 힘으로 소녀를 제압하며 성관계를 강요하기에 이른다. 위기를 느낀 소녀는 제니의 병원에 문을 두드렸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고, 결국 남자를 피해 강변으로 달아나던 중 발을 헛디뎌 죽음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람들이 죄의식을 마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죄를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자신을 연민함으로써 죄책감을 덜기도 한다. 브라이언의 아버지와 캠핑카 주인이 그러했다. 두 사람은 소녀를 성적으로 착취해 결과적으로 비극을 초래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끝내 소녀의 죽음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소녀가 이민자이자 성노동자였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소녀는 죽음 이후에도 찾는 이가 없을 정도로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제도권 밖의 인물’이며 두 남성은 소녀를 단박에 성적인 대상으로 타자화했다.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은 절대 가벼울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을 ‘한낱 이민자 출신 매춘부’라고 격하시킬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낱 이민자 출신 매춘부’보다는 내 존재가 더욱 소중하고 내 상황이 더욱 절박할 때, 죄책감은 줄어들고 내 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결국 남성들은 사건에 대해 침묵하기로 결정하고, 제니에게도 이를 강요한다.
 
한편 제니는 달랐다. 제니는 자신의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행동에 나섰다. 사실 소녀가 죽은 것도, 줄리앙이 의사의 꿈을 포기한 것도 결국 제니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날 밤 훈계한답시고 줄리엔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여건에서 근무하려는 마음을 애당초 가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소녀가 제니의 병원에 숨어들 수 있었다면? 제니는 이 ‘만약’을 피하려 하지 않았고, 무거워진 죄책감은 제니를 더욱 절실하게 속죄에 몰두하게끔 했다. ‘이름찾기’ 과정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줄리엔을 찾아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줄리엔에게 그날의 훈계를 사과하고 다시 의사를 꿈꿀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은 제니의 속죄에서 결코 가벼이 생략될 수 없었다.
 
제니는 집요하게 진실을 파고들었지만 진실이라는 카드를 놓고 타인을 위협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을 불러내고, 선의를 가지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유도했다. 결국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그런 제니의 존재가 끝까지 밟혀, 한밤중에 그녀를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며 소녀가 이미 죽었으니 이제 그만 단념하라고 화를 낸다. 제니는 그에게 스스로 속죄하려면 경찰에 자수해달라고 호소하지만, 그는 불안정한 모습
을 보이다 자살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가까스로 그를 안정시키고 나서 제니는 다시 말을 건넨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거예요.”
 
제니는 절대 죄의식을 피하거나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속죄를 서두르거나 그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 또한 소녀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고, 나와 당신이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실을 말하고 이 ‘괴로움’을 마주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제니의 방식은 주위 사람들을 천천히 변화시켰다.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결국 경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소녀의 죽음을 모른 척 했던 소녀의 친언니도 제니를 찾아와 눈
물을 흘리며 죄책감을 털어놓는다. 제니가 말없이 그를 안아주자 ‘나 또한 당신과 같다’는 위로가 두 사람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죄는 그렇지 않다. 제니는 사력을 다해 이를 해냈고, 결국 병원에 그대로 남기로 결심한다. 불법체류자, 빈곤층 노인등 또 다른 ‘언노운’들이 주로 제니의 병원을 찾아온다. 제니는 죄의식을 마주하고 신원미상의 소녀를 기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듯, 이들 또한 진심을 다해 대한다. 다르덴 형제는 “소녀의 이름을 찾는 행위는 소녀를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세상은 진보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제니는 속죄를 통해 ‘언노운 걸’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회복시켰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 ‘언노운’이 가득한 세상에서, 새삼 제니의 속죄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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