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게 살았던 박단순씨의 삶, 노점상은 왜 거리에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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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게 살았던 박단순씨의 삶, 노점상은 왜 거리에서 죽었나
  • 김성은
  • 승인 2017.07.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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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이 장사했던 곳 삼양사거리 노점자리. 이곳을 시민들과 함께 추모의 공간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 김성은

"얼음도 비싼데 뚜껑을 잘 덮어야지, 왜 제대로 안 덮고 그러냐..."

노점상 고(故) 박단순씨가 이승에서 한 마지막 말입니다. 단속반이 어질러놓은 얼음상자 뚜껑을 보고 한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폭염특보가 발효되었던 지난 6월 19일 오후 2시, 강북구청의 노점단속 중에 쓰러진 그는 다시 눈을 뜨지 못하고 25일 오후 3시 30분경 만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지 5일째인 지난 29일까지 이 황망한 죽음에 대해서 강북구청은 단 한마디 사과조차 없습니다. 박씨의 죽음에 관해 강북구청 측은 "강압적 행위가 없었다, 매뉴얼대로 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도의적 책임'을 운운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강북구청장도 아닌 구청 관계자들의 익명 인터뷰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당시 박씨가 입원해있던 중환자실로 찾아와서 고인의 아들에게 "자네 나이가 몇 살인가?", "어머니는?" 딱 두 마디를 하고 5분 정도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강북구청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가족들에게 병원비와 장례비, 위로금을 포함해서 475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것에 대해서 유족에 위로와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이 먼저일 텐데, 법적 책임이 없다면서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면 받을 수 있는 긴급의료급여와 장제급여가 포함된 보상금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하는 그 태도에 유족은 기가 찬다는 반응입니다. 두 아들과 유가족들은 구청 관계자들을 그 자리에서 쫓아냈고 이대로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서 노점상 동료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고인의 고단했던 삶

노점상 고(故) 박단순씨는 1956년생으로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삶이 특별히 가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자와 성공한 사람만 주목하는 한국 사회가 눈길도 주지 않는 우리네 가난한 이웃들의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그저 자기 삶의 곁에서 가난을 떨쳐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나쁜 짓을 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도 없었을 뿐입니다. 

7남매 중 맏이였던 남편과 22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고 그다음 해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전라도 시골에서 소작농을 하는 것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 1981년 서울로 올라왔지만 서울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인의 시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한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서울로 이주하고 난 뒤에도 시아버지는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다가 199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농사만 짓고 살던 남편도 술에만 의존하다가 결국 알코올중독으로 15년 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몇 년 전부터는 친정어머니도 병환으로 몸져눕게 되어 그 간병과 부양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친정어머니도 1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 고인의 새신발. 고인이 살아생전 신으려고 산 새신발, 아까워서 신지도 못한 신발. 빈소에 함께 놓아두었습니다.  ⓒ 김성은 

고(故) 박단순씨와 그 가족들처럼 1980년대에 노점상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작농으로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상경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도시 빈민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식들과 어린 시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고인과 남편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서 둘은 양말이나 과일 등을 파는 노점상이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다가 1990년대에 강북구 삼양사거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변에 동북시장과 솔샘시장 등이 있어서 장사도 곧잘 되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노점상들과 전국노점상연합에 가입을 했고 단속은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힘이 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삼양사거리 주변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강북구청은 보도환경을 개선한다면서 대대적으로 주변 노점들을 강제 철거했습니다. 결국 삼양사거리에서 장사하던 60여 개의 노점이 거리에서 사라졌고 같은 숫자의 생계도 사라졌습니다. 남편의 알코올중독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이후 삼양사거리에서 같이 장사를 하던 여동생의 남편도 강제철거 이후 사망했습니다. 

자리가 없어진 노점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보따리 장사뿐이었습니다. 단속을 피해서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장사를 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는 곳 근처인 삼양사거리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있는 환경미화원 후생관에 양해를 구하고 그 계단에 앉아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쁨과 슬픔, 아픔이 그대로 서려 있는 삼양사거리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엄마는 도둑질을 하지도, 강도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이후 지난 26일(월), 강북구청 앞의 집회에 참가한 큰아들이 했던 말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 강북구청의 태도와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서 분통이 터진 것입니다. 

노점상이 자주 외치는 구호 중 하나가 바로 "노점상도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구호로 외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노점상을 사람 취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생각하고, 용역업체를 통해서 깡패들을 고용하는 행태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같은 지역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도 "'냄새 나는 저거', '보기 싫은 저거' 빨리 좀 치워달라"고 민원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을 고용하여 노점을 운영하거나 '깔세'(자릿세)를 받거나 자리를 팔아먹는 등의 기업형 노점상이나 위생, 보행권 등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노점상들도 있습니다. 그런 노점들은 노점상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인은 하루 많아야 2~3만 원 버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남편의 한 달 병원비와 1주일에 한 번씩 병문안이라도 가기 위한 교통비를 합한 50만 원을 위해서라도 노점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나오는 급여로는 정말 최소한의 생활을 하고 이 돈이라도 벌어야 남편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소수의 기업형 노점상과 부도덕한 노점상들 때문에 고(故) 박단순씨처럼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노점을 선택한 사람들까지 쓰레기 취급하고 범법자 취급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너무 차갑기만 합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노점을 하는 구민이 스스로 '공무집행'이라고 강조하는 단속행정 도중에 사망했다면, 그 죽음 앞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주민이 선출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닙니까. 구민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단속이었다고만 얘기하면서 본인이 직접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는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처사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 강북구청 노점살인단속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용역깡패 해체를 위한 1차투쟁결의대회 '강북구청 노점살인단속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용역깡패 해체를 위한 1차 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노점상회원들.  ⓒ 김성은

노점상 고(故) 박단순씨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서울 북부권역의 노점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2일(목)부터 '강북구청 노점살인단속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용역깡패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27일에는 노점 3단체(대노련, 전노련, 민주노련)와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 빈곤사회연대 등의 대중단체나 빈민 조직과 함께 전국적 규모의 대책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고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 놓여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유가족들과 대책위가 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강북구청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처벌(징계), 장례 절차를 포함한 책임 있는 후속조치와 노점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만남과 대화로 합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있는 자세에 유가족과 대책위는 물론이거니와 고인의 이웃인 강북구민들조차 납득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하루 빨리 유가족과 대책위를 만나서 대화하고 그 요구들을 수용하길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탁드립니다.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인 대통령이 용역깡패, 노점상의 현실을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좀 나아졌겠지 싶겠지만 현실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건장한 남성 서넛이 눈앞에 등장해서 위협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 누구나 오금이 저립니다. 

지금처럼 국가의 공권력과 법 집행을 민간으로 외주하는 행태를 계속 방치한다면 용역깡패라는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인의 불행한 죽음이 공무집행을 빙자한 폭력에 의해 벌어졌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단속과 철거의 당사자들인 국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노점상 고(故) 박단순씨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성은 시민기자는 '강북구청 노점단속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용역깡패 해체를 위한 대책위' 간사입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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