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또 넘겼다. 이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국회에 예산안 심의·의결권을 부여하면서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계연도 개시일은 이듬해 1월 1일. 역산하면 12월 2일이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이다.

그러나 국회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한 차례 법정 시한을 지켰을 뿐이다. 올해까지 시한을 어겼으니 무려 5년을 법을 위반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는다면서 자유한국당이 이들 패스트트랙 법안 말고도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 이대로라면 언제 국회 본회의가 열려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 막연하다.

이에 문희상 국회의장은 3일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여야 정당에게 “엄중한 민생경제 상황을 상기해 밤을 새워서라도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이번 20대 국회는 마지막 정기국회가 막을 내리는 오는 10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될지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사하여 의결, 본회의에 넘기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3일까지도 심의를 마치지 못해 당장 본회의가 열린다 해도 예산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이 심의를 지연시켰다”고 비판한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문제 삼아 심의를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길거리에는 ‘예산 확정’ 현수막이 겨울바람에 휘날린다.

서울 서초구남부터미널 사거리에 이런 현수막이 결려있다. 그런데 현수막 부착자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이름이 아닌 당원협의회다. 이 지역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은 물론 현역인 박성중 의원. 그래도 위원장이자 현역의원 이름을 빼고 당원협의회 이름으로 현수막을 걸었다.

왜 그랬을까? 이는 지난 8월 현수막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무려 100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추경안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12명 중 한 명이었던 박성중 의원이 추경안에 반대표를 던져놓고도 지역구인 남부터미널 사거리에 ‘지하철역 공기 질 개선 239억 추가확정’ 등 추경 성과를 알리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언론의 비판적 보도 대상이 되었다.

▲지난 8월 추경안 반대표를 던진 박성중 의원이 내걸었다 비판을 받은 현수막 © 임두만
▲지난 8월 추경안 반대표를 던진 박성중 의원이 내걸었다 비판을 받은 현수막 © 임두만

당시도 현수막에는 예산 ‘확보’가 아닌 ‘확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현수막에는 ‘당연히’ 확정이라고 썼다. 이는 예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 놓고 ‘예산 확보’라는 표현을 쓰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의식한 것 때문으로 보인다.

법도 피하고 비판도 피하고 의정활동 홍보는 해야겠기에 나온 고육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꼼수’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시민들, 특히 지역구민들은 ‘확정’이나 ‘확보’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2020년 예산안은 언제 국회를 통과할 것인지 기약이 없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가 취소되지 않는 한 여당은 본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철회가 없는 한 필리버스터 철회는 없다고 버티는 중이다.

이 때문에 예결위의 예산심사도 중단된 상태이므로 ‘확정’이든 ‘확보’든 이런 문구의 현수막은 총선용 ‘꼼수 홍보’로 볼 수밖에 없다. 출퇴근길의 사거리 행인들은 이 ‘꼼수 홍보’에 속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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