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언론인인 단재 신채호(1880∼1936, 11월 7일 충청남도 대덕군) 역사학자 겸 독립운동가, 선생의 탄신 행사가 8일 청주에서 열렸다.

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5시 충북도청 강당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9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단재·일편단생·단생 등을 사용했다. 행사는 단재의 약력 보고, 김덕근 시인의 헌시 낭송, 축사, KBS 어린이 합창단 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제13회 전국 단재 역사퀴즈 대회와 제10회 전국 단재 청소년 글짓기대회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수상자들은 단재 선생과 관련된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필명으로 금협산인(錦頰山人)·무애생(無涯生) 등을 사용했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는 단재는 '조선상고사'의 저자로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돼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덕남 여사는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국적회복 운동 등 평생을 독립운동 관련 사업을 해왔다.  이 여사의 노력으로 신채호 선생의 국적은 지난 2009년 회복됐다.
이덕남 여사는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국적회복 운동 등 평생을 독립운동 관련 사업을 해왔다. 이 여사의 노력으로 신채호 선생의 국적은 지난 2009년 회복됐다. [좌로부터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덕남 여사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생존 가족으로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가 있으며 부친은 신광식(申光植)이며 모친은 밀양박씨이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신성우(申星雨)로 부터 한학을 익혔고,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이남규(李南珪)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