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제54회

방문

“그냥 우리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가요.
이렇게 걸으면서 사람들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부족 된 운동도 하고 건강도 좋아지고요. 처음이라 힘들겠지만 한번 걸어 봐요!”
“정말 매일 걸어 다녀요?”
“네! 이제 하나의 생활패턴이 되었어요.
프랑스의 한 저자는 걷기와 생각하기는 밀접하게 연관된 행위라고 하더군요.
정말 저는 걸어가면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들을 천천히 생각하며 그 문제에 사유하게 되지요.
그러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도 하게 되고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게 되지요.
요즘 자가용 안에서 갇혀 사는 것, 정말 답답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 되도록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것은 폐쇄적인 분리, 무관심을 양산하는 듯하더군요.
그리고 사람이 앉아 있으면 사유는 잠들어 버리는데, 뇌는 근육을 움직일 때에만 작동한다는 원리는 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 있잖아요, 칸트는 늘 산책하면서 사고하고 걸으면서 철학했다고 합니다!”
“어쩜!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아요. 좋은 것만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한참 베스트셀러였는데요.”
“아, 아니….”


애춘은 책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그동안 책을 읽을 만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편안한 사람들이라 여겼다.
애춘은 책을 읽는 자체가 복잡하고 머리를 더 아프게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니 그런 말도 공중의 허상처럼 여겼다.
지선의 물음은 애춘을 좀 어색하게 했다.
지선은 그 책에서 현대인들은 빠름을 미학으로 여겨 사고의 결핍을 초래하고 그 빠름의 속도는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휴식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선은 어휘력이 풍부했다.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든가 자기 안에 갇혀 볼 수 없었던 애춘과는 달리, 교양이 풍부했다.

“요즘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아마 제도가 잘못된 원인도 있겠고….”
지선은 아무 말 없이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애춘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현관의 뒤쪽으로 향하는 길은 곧게 뻗어있었고 하얀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 건물의 잔디밭 주변의 울타리는 붉은 장미가 활짝 피어 있었다.
“현대인은 마음의 집이 장미처럼 활짝 피어야 합니다.”
애춘은 심야토론에서 송 박사가 언급한 말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마음속의 장미…! 마음의 집….’
하얀 건물의 현관에는〈모델하우스〉라는 팻말이 보였다.
애춘은 남편의 건축 모델하우스를 짐작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열 살 정도의 소년이 인사를 하며 맞았다. 두 눈 주위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보였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즐거웠나요?”
“네”
소년은 낯선 애춘을 쳐다보며 움찔하고 약간 겁먹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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