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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커뮤니케이션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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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세이] 커뮤니케이션의 신비
  • 박종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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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언어를 구사해선데, 기업내부에서 대화가 서투르거나 부족해 능률이 저하되고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 
그건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생활도구라서 오히려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 실인즉슨 매우 중요한 것으로 기업에선 특히 그렇다.

마리 스완슨 교수는 ‘의사소통이란 마음속 온기溫氣(warmth)를 교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어느 학자는 ‘커뮤니케이션이란 개인의 의미를 창조하고 그 의미를 전개 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영혼 같은 속사람은 말로써 의사소통을 하고 육체는 영혼의 사의思義를 행동으로 나타낸다. 의사소통을 단순히 유형적인 수단을 이용한 의사의 교환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해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의사소통의 본래의 근원인 본원本源(origin)은 영혼이다’라고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각기 방식대로 의사소통을 한다. 

봄에 실비가 내려 나무와 대지를 두드리면, 그 온기와 소리와 자극과 물기를 통한 일종의 디지털 메시지를 듣고, 대지는 지각을 열고 나무는 껍질이 트이며 개구리는 눈을 뜨는 등 겨울잠을 깨는 반응(의사소통의 기본원리)이 일어난다. 자연의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듯 저들의 생명이 자연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여 대지는 생명요소를 공급하고 나무는 잎을 틔우며 개구리는 지상으로 뛰어 나온다.

그 각각의 변화가 의사소통의 한 장면으로 연출되는 것이다. 기러기 떼가 구만리 창공을 질서정연하게 날아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것은 향도와의 의사소통에 의존해서이며, 새가 종의 유지를 위해 짝을 부르는 것(calling)도 ‘지저귀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한다.

우리 인체 속에는 수많은 세포가 있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세포가 생멸하며 복잡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세포끼리 의사소통을 한다.  세포의 생멸이 정상적이어야만 건강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의사표현과 의사전달의 수단으로만 이해하고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는 말의 힘’이 좋은 경영의 기둥인 인간관계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거금을 들여 통신 기기는 설치해도 효율적이면서 인간적인 대화통로의 조직과 운영에는 무관심하다.

ⓒPixabay
ⓒPixabay

기업의 구성원이나 조직단위는 인체의 세포와 같은 존재로서 인체처럼 그 건강 여부는 기업의 생명과 발전을 좌우한다.

세포의 생장에 필요한 단백질이 있는 것처럼, 기업의 건강한 구성원한테도 희망적 인생관과 일을 통한 성취감, 회사에 대한 애정과 신뢰 같은 자양분이 필요하다. 그러한 영양소가 충분하게 생성돼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처럼 기업의 구성원이나 조직 역시 활력을 잃고 병들게 된다.

그러한 자양분을 정상적으로 생성시키거나 저지하는 인자因子가 있다.
어떤 인자가 잘못 인도되거나 부정적인 충격으로 비정상적인 인자로 변해 세포에 자양분이 공급되지 못하게 막는다면, 그 인자는 암세포를 키우게 된다.  그 중요한 인자는 기업의 전통과 체질에서 생성돼 유전된 인자일 수 있고, 기업 환경과 활동을 통해 생긴 후천성 인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지 그러한 인자들이 경영조직이라는 의사소통 네트워크를 통해 생멸하고 활동하느라 벌이는 의사소통은 오묘 하리 만큼 신비스러운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일단 그 기능이 변질되면 무서운 암적 존재로 변해 경영을 위협하는 것이다.

기업은 영업을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광고를 한다. 판매상품에 그 질이나 가치를 돋보이게 할 화려한 옷을 입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이고도 경제적인 내부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돈 쓰기를 주저하는데 당장 그 대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 써도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단견적인 통찰이고 위험한 사고다.

기업을 살찌우고 발전시키는 힘이란, 보통 경쟁력이 높은 제품과 비교우위성이 강한 기술, 건실한 자본력과 인력, 경영자의 의욕과 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지도 않다.

기업이 이상을 삼는 것은 이윤 외에 무엇인가 다른 가치 있는 게 더 있으며, 그러한 이상을 실현시키는 힘 또한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다른 신비로운 힘을 가진 게 분명히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기업의 발전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으며, 임금인상에 따라 반드시 신뢰와 회사 사랑이 깊어진다 할 수 없다.

기업 내부에 잠재하며 생명의 편에서 창조를 고무하고 미움과 갈등을 순화시키며 평화와 화목을 돕는 신비한 힘을 만들고 유지하며 작용하게 하는 암호가 무엇인지 해독해 내야 한다. 어떤 기업은 이미 그런 암호를 풀어내 건강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고 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무관심해 아무렇게나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경영조직을 비효율적이라는 고질에 시달리게 하고 구성원의 가슴에서 사랑과 신뢰, 신념과 열정을 메마르게 만들며, 돈을 하수구에 흘러버리게 방치하고 있다.

대기업의 총수가 종업원들을 ‘머슴’이라 여기고 머슴처럼 대하면서 머슴한테 하듯 대화한 기업 치고 부실화 되거나 망하지 않은 예 가 없다. 그런 기업엔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지시만 있을 뿐 창조적 대화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에는 반목하고 적대시하는 관계가 매우 흔한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의 빌미가 자존심을 짓밟는 말에 연유하며, 그 미움의 골이 깊어진 이유가 대화의 포기와 단절에 연유한다. ‘쪽박을 깨는 말’이 너무나 예사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타사에 비해 손색없는 보수를 주고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데도 이상하게도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던가,

근로자가 마치 씻을 수 없는 한이라도 맺힌 것처럼 딴 사람이 되어 상사에게 눈을 부라리고, 회사가 바로 자신이 삶을 영위해가는 터전임을 잊은 것처럼 회사 재산을 부수고 불 지르는 짓거리가 예사로 반복되고 있다면, 뭔가 세포를 병들게 하는 인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슨 이유에선가 의사소통이 잘못돼 세포를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포의 변질에는 기업의 지명도나 보수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흔히 하는 말로 ‘동냥도 안 주면서 쪽박까지 깬다.’는 역기능적 의사소통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순기능적인 의사소통으로 바꿈으로써 얻는 대단한 긍정적 효과가 그런 것이다. 전자의 반응은 저주요 증오며 후자의 결과는 이해와 관용이다. 어떤 의사소통이 창조적이며 좋은 가는 너무나 자명하다.

커뮤니케이션의 상식을 초월하는 신비스러운 힘이란 어떤 것인가. 
젖소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면 전보다 더 많은 젖을 짤 수가 있다. 잠이 안 오면 베토벤의 <로맨스>를, 불안할 때는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을 들으면 신기할 정도로 효력이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한 여인이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입원했다. 정밀검사 결과 장에서 여러 개의 이상한 꽈리 모양의 폴리가 발견됐다. 치료가 상당기간 계속 되었다. 그러나 통증도 돌기突起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얼마간의 상담과 관찰이 진행된 후 내린 처방은, 완벽하게 격리 차단된 독방에 환자를 넣어 실컷 울라는 권유였다. 그녀는 땀으로 온 몸이 젖고 목이 쉬도록 몇 시간이나 벽을 두드리고 몸부림치며 울고는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돌기들은 사라졌고 그 후 통증은 더 이상 재발하지 않았다. 백약이 무효인 통증이 얼마간의 염분을 포함한 수분뿐인 눈물로 치료된 기적은 아마도 억제된 분노나 증오나 원한의 울혈 덩어리를 눈물의 신통한 지시암호가 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라는 세계에 생기고 사라지는 무수한 말과 대화와 회의를 통해 사원 개인은 각양각색으로 의사소통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반응한다. 세포의 성장  단백질과 억제 단백질이 균형을 이뤄야 하듯이 기업의 의사소통도 균형과 자정自淨 능력이 강해야 한다. 상사의 모욕적인 말 한 마디로 존중심을 지탱하고 있던 세포가 변질해 미움을 키우게 된다던가, 상하 간 불신으로 대화통로에 갈등이라는 콜레스테롤이 끼어 대화를 경색시킴으로써 불화하고 대립하게 만드는 것 모두가 잘못된 의사소통 탓이다. 그러나 그런 게 현실이다. 

다만, 그런 부정적 부작용을 이해와 대화를 통해 억제하고 순화시키며 해독을 최소화하는 순기능적 의사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어떤 개발비나 로열티가 필요 없으며 그저 마음먹고 실천하면 된다. 훌륭한 의사소통을 하는 기업이 건강하고 장래가 유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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