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8년 사림 내부의 갈등인 동서분당으로부터 선조 23년 기축옥사에 이르기까지의 사림의 분열 과정과 이 과정에 연루된 인물들을 살폈다. 그 이전까지 사화에 시달리던 사림은 선조 시기에 이르러 정치적 공간을 획득했으나 곧 분열하고 만다. 저자는 사림의 지나친 도덕적 확신이 사림의 분열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치의 본질을 묻는다.  유학에서 지식인의 바람직한 삶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요약된다. 수기의 목적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치인은 다수에게 유익한 정치를 이상으로 삼는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수기가 곧 치인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유익한 정치를 펼치리라는 믿음은 오늘날 투표에 나서는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도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국학진흥원 이정철 연구원은 그의 저서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를 통해 선한 의도가 반드시 유익한 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임진왜란 이전의 선조 대를 조명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이 시기만큼 정치적 이상이 높았던 시대도 드물었다. 이이, 류성룡, 정철, 성혼 등 명망 있는 인물들이 포진해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귀결은 기축옥사라는 거대한 정치적 파국과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파국이었다. 저자는 높은 이상을 가지고 조정에 진출한 사림이 왜 당쟁에 몰두했고 파국을 맞이하게 됐는지를, 앞선 중종, 명종 대의 훈척정치라는 구조적 이유에서부터 설명한다.
 
개혁이라는 착각
 
저자는 선조 즉위 전후로 조정에 진출한 신진사림을 통해 리더십의 문제를 고민한다. 여기서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인간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집단 내에서 당연시되는 의사결정 방식을 의미한다. 국가 운영에 있어 저자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은 국정 문제 해결과 부패 방지 기능의 조화다. 당대에 이 두 기능은 각각 대신과 언관에게 맡겨져 있었다. 대신에게 권력이 쏠려 균형이 무너져 있던 중종, 명종 대의 훈척정치는 합리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왕의 인척이 권신으로서 권력을 휘둘렀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를 목격한 사림은 대신의 기능을 부정하는 것을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착각했다. 이에 언관 기능이 비대화돼 탄핵과 비판이 반복되며 당쟁이 격화됐다. 저자는 사림이 리더십의 변화를 꾀했지만 사림 역시 대신의 기능 자체를 억압해 균형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고 꼬집는다.
 
시대 변화 과정에서 사림이 맞닥뜨렸던 새로운 리더십 설정의 문제는 정치의 보편적 과제다. 단기간에 커다란 사회, 경제적 변화를 경험한 한국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젊은 세대의 수평적 리더십이 공존하는 과도기의 양상을 보인다. 두 종류의 리더십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호소력을 갖는다. 사림의 정치는 이전 세대가 보였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극단적 선택의 결과로 실패했다. 사림의 모습은 세대로 구분되는 리더십의 충돌을 겪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대립이 아닌 통합에 바탕을 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프레임, 정치를 옥죄다
 
선조 8년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화되며 시작된 당쟁의 전개 과정은 정치 프레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당쟁의 초기에는 특정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판단의 차이만을 의미하는 시비(是非)가 동서인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사림이 시비 판단에 매몰돼 당쟁이 격화되며 동서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정사(正邪)로 바뀐다. 정사는 정체성에 대한 규정으로 정치적 프레임의 성격을 갖는다. 동인은 서인을 사당으로, 서인의 일원을 소인으로 칭했는데 소인은 정치적 대화나 타협의 대상이 아닌, 싸워서 격퇴해야 할 대상을 이르는 말이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정치적 프레임 형성의 원인을 훈척정치 속에서 만들어진 시비와 원칙에 민감한 사림 고유의 인간형에서 찾는다. 이 시기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는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쳤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프레임 논쟁이 역사 논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서인이 사당으로 규정됨에 따라 서인이 주도한 명종 말에서 선조 초에 걸친 사림의 개혁은 부정되고 말았다.
 
프레임 논쟁으로 격화된 당쟁이 선조에게는 오히려 권력을 불리는 기회가 됐다. 이 시기 선조의 모습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저자는 선조가 조선 최초의 군(君) 출신 왕으로서 허약한 정통성 탓에 자신의 힘을 최대화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설명한다. 선조는 동인과 서인의 갈등을 적극 활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며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구축했다. 이로써 국왕과 신하가 함께 국가를 다스린다는 군신동치의 관념은 손상되고 사림의 이상 정치는 파행적 정치로 대체됐다.
 
정치적 프레임 설정에 따른 갈등과 여기서 파생되는 견제 기능의 상실은 보편적인 정치 현상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도 ‘종북’이나 ‘보수꼴통’과 같은 상대 당에 대한 정치적 프레임은 타협의 여지를 없애고 정치를 끝나지 않는 쟁투의 장으로 만든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 진보, 보수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후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보수 정권의 업적이 부정되고 민주주의의 수준을 끌어올린 진보 정권의 성과는 퇴색된다. 그러나 사림의 역사는 정치의 요체가 시비와 원칙의 분별이 아닌 소통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시기 정치 행위자들의 문제를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의 부재로 요약한다.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중시했던 사림은 당파 간 시비와 정사의 판단을 정치 개혁보다 우선에 뒀다. 선조 역시 조정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와 지위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힘을 최대화하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공적 이상의 정책적 구현에는 무관심했다. 정치적 책임의 실종은 국정의 무정부적 사태를 초래했다. 이 같은 선조 시대 정치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준다.
 
조선 선조 때 벌어진 당쟁을 분석해 ‘스스로 확신한 도덕적 정당성’이 분열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진정성도 시대적 상황에 지배되고 대의를 잊으면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고 경고한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이 지난해 11월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선조 8~23년(1575~1590년) 당쟁이 격화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책이 나올 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었다. 조선의 당파싸움이라는 부정적 소재를 다룬 책을, 지식인이 아닌 나쁜 사람이 나쁜 정치를 한 것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를 때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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