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의 캐비닛 문건 일부를 공개하고 특검에 사본을 제출하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가 문건을 발표한 시점은 최초 발견일으로부터 11일 뒤인 7월 14일이다. 청와대는 18일 경내 사무실의 사물함, 책상, 캐비닛 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던 중 사무실 두 곳에서 박근혜정부가 생성한 문건 더미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날 문건이 발견된 국가안보실은 외교·안보와 관련한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곳이어서 자료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을지 주목된다. 나머지 한 곳은 국정상황실로, 지난 정부 때에는 기획비서관실이 있던 사무실이다. 야권에서는 청와대의 문건 공개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기록물인 것은 맞지만 자료의 비밀 표기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무수석실에서 발견된 문건 1361건 중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254건의 작성 주체가 바로 기획비서관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오후 발견된 문서는 정확한 규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양이 꽤 된다”며 “어제부터 이틀간 경내 전수조사에서 나온 문건과 정무수석실 자료 분류·분석이 마무리되면 이번 주말쯤 종합해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민정수석실 근무자 누군가가 책임 소재를 명확하기 위해 문건을 남겨두고 갔거나 당시 우병우 수석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근무자가 고의로 흘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이는 대목은 지난 정부 문건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뭉치째 나올 수 있느냐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 이후 문서 파쇄기를 26대나 추가 구입했을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작성(자) 불명의 서류 뭉치”(홍준표 대표)라며 문건 신빙성 자체를 문제 삼는 이유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과거 정부 문서가 발견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사각지대론’이다. 자필 메모는 전문증거로 증거 채택 여부를 다투게 된다. 형사소송법상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작성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이 문건들이 작성했다는 점을 밝히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또는 법원이 인정하게 되면 증거로 채택된다. 작성자와 문건 작성 배경이 파악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 측에서 증거로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은 난항에 빠질 수밖에 없다. 
 ▲ 14일 오후 청와대 관계자들이 과거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한 300여 건의 자료를 청와대 민원실에서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이날 청와대는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지원 방안을 검토한 내용을 포함한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문건,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 등 민정비서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과정에서 전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생산한 문건 300여 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지난 정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나와 “(민정수석실 발견 문건 중) 2015년 5월 이후 작성된 것은 없었던 점으로 미뤄 그 이후에는 해당 캐비닛을 사용하거나 관리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라며 “이후엔 쓰지 않는 캐비닛이 돼서 사무실 뒤쪽으로 밀려나고 관심 대상에서 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공무원 A씨도 통화에서 “나 역시 아무도 안 쓰던 캐비닛을 열었다가 이명박정부 때 문서를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500명 가까운 청와대 근무 인원이 새 정부 출범 직후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교체된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A씨는 “인선 작업이나 사무실 공간 구획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의 것일 수도 있는 캐비닛을 일부러 뒤지지는 않지 않나”라며 “시간을 정해 전체를 훑지 않는 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미필적 고의론’을 제기한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라디오에서 “국정농단에 직접 개입한 고위직은 철저한 증거인멸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말단 행정요원들은 본인이 직접 관여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에 문서 사본이 생산되고, 돌려보는 과정에서 미처 파기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는 ‘늘공’(늘 공무원이라는 뜻으로 직업공무원 지칭)들이 윗선의 파기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기록물의 경우 무단 파기하면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른바 ‘캐비닛 문건’의 존재를 모른다고 밝혔다. 우 전 수석은 17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청사에서 열린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던 중 캐비닛 문건에 대해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고, 무슨 상황인지,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추가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 전 수석은 문화체육관광부 좌천성 인사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이다. 청와대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 작성 추정 메모나 문건 핵심어 외에는 자세한 내용을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문건 사본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제출한 만큼 법정다툼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 예술인 지원배제 명단 등에 관한 ‘적법하지 않은 지시’ 내용이 공개되면 정치적 후폭풍이 일 수도 있다. 한국당 등이 문건 공개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유다. 

문건 공개, 특검 이관 절차의 적법성을 놓고도 공방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은 전임 정부의 대통령기록물에 대해서는 이관을 위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며 “임의로 특검에 자료를 주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발견된 문건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니다”라며 “범죄 단서로 보이는 내용이 많아 수사를 위해 사본을 검찰에 넘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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