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남자든 여자든 무슨 차이죠? 남자 스타일은 뭐고, 여자 스타일은 뭐라는 게 정말 정해져 있을까요?”

'후회하는 자들' 단체사진_ /ⓒAejin Kwoun
'후회하는 자들' 단체사진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성전환 수술로 타고난 성별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 <후회하는 자들>이 지난 7일부터 오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한계, 정상과 비정상을 가로질러 세상의 일반적인 통념에 반문하며 관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당신의 선택에 확신할 수 있어요?”

미카엘은 1994년 50살의 늦은 나이에, 올란도는 1967년 스웨덴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거쳤다. 2008년, 이제 60대가 된 이들은 서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후회’, ‘성 정체성’, ‘성적 재규정’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을 동시에 경험한 이들은 성전환 수술 후의 삶이 자신이 이전에 꿈
꿔왔던 삶과 거리가 멀었다고 회상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다르지만, 성을 규정하지 않고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부정당하지 않는 삶 그 자체를 갈망한다.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 미카엘라 시절 사용했던 가발을 꺼내보는 미카엘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 이사도라 시절 사진을 함께 보고 있는 이들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 "나는 주의를 끌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냥 평범하고 싶어요. 보통 사람으로."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공연사진_미카엘(지춘성), 올란도(김용준) |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실을 말하면 그 사랑을 잃을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사실을 말하시겠어요, 아니면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얼마간 숨기시겠어요?" /ⓒ이은경(제공=극단 산수유)

트렌스젠더라는 특정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지만, 작품은 모든 사람들이 한 번 쯤은 스스로에게 물었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주체성과 선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로의 눈빛을 맞추며 덤덤하게 들려주는 각자의 인생사를 통해, 우리는 두 번의 성전환에 대한 시선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내내 끈질기게 작동하는 성(정체성), 문화적 억압, 개인의 행복, 후회와 선택의 문제에 관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게 된다. 성별 규범의 억압과 한계, 정상과 비정상을 가로질러, 우리와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에 반문한다.

'후회하는 자들'의 작가 Marcus Lindeen /(제공=작가 Marcus Lindeen)
'후회하는 자들'의 작가 Marcus Lindeen /(제공=작가 Marcus Lindeen)

2006년 초연 이후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후회하는 자들>은 스웨덴의 젊은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쿠스 린딘(Marcus Lindeen)의 데뷔작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독일, 스웨덴,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등에서 현재까지도 공연되고 있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2010년 유럽 다큐멘터리 부문의 프리 유로파(Prix Europa)상과 2011년 스웨덴 아카데미상인 굴드바게(Guldbagge Awards)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동안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다룬 번역극에 주력해 온 연출가 류주연이 연극과 영화를 재구성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누구보다 혹독한 겨울을 살았고 누구보다 간절히 봄을 그리며 살아온 두 인생에서 나를 비추어 봅니다. 동성애자여서가 아니라, 불행한 유년기를 겪어서가 아니라, ‘후회의 경험’으로.”라고 말하며 담담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작품 <후회하는 자들>은 지춘성 배우와 김용준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로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만들며 작품의 깊이와 기대를 더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세상에 대한 반문을 현대적이며 감각적인 창작활동으로 무대화 하고 있는 ‘극단 산수유’에서 제작한 작품 <후회하는 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돌아볼 수밖에 없었던 선택들을 이야기하지만, 구태의연한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성을 이원론이라는 단순한 구분으로 단정 짓고 규범 짓는 사회에 우리는 왜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일까? 꿈이나 목표도 어떠한 계기로 변화할 수 있건만, 그들의 선택은 왜 실패라 여기는 것일까?

적극적인 후회는 새롭고 좀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3000년 후에는 젠더가 없어질 수도 있고...우리는 시대를 아주 앞선 사람일 수도 있어요.”

- MINI INTERVIEW -

1. 보통 성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연극은 자아정체성을 확고히 시키며 일반인들을 설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이번 작품 <후회하는 자들>은 '경계의 무너짐'에서 정체성의 회복을 다루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극 중 두 사람을 성소수자의 범주에 넣는 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지만, 스웨덴의 그들의 이야기를 대한민국의 무대로 가져오며, 희곡을 번역하고 연출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들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을 듯합니다. 번역과 연출의 과정에서 어떤 부분들에 가장 중점을 두셨을지 듣고 싶습니다.

'후회하는 자들'을 연출한 류주연 연출가 /(제공=류주연 연출가)
'후회하는 자들'을 연출한 류주연 연출가 /(제공=류주연 연출가)

・류주연 연출

이 작품을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길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특이한 사람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다가 끝내는 동정적인 마음으로 끝을 맺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성소수자 몇몇이 특별한 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기만의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성의 구분을 어떤 정당성을 갖는지 반응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이건 2번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의 문제를 떠나, 인생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깊은 후회를 하더라도, 인생을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며, 용기 내어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2. 성소수자(sexual minority)들에 대한 분류 중 트랜스젠더, 드랙퀸, 양성애자, 이성애자, 무성애자 등의 분류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운 분류라 느꼈었습니다. 이 작품을 대하며 LGBTAI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ual, Questioner)라는 분류를 누가, 무엇을 위해 나누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전까지 알고 있다 여기던 것을 다시 고민하게 만들던 이번 작품 속 많은 대사들 중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게 여기시는 대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후회하는 자들' 미카엘/미카엘라 역 지춘성 배우 /ⓒAejin Kwoun
'후회하는 자들' 미카엘/미카엘라 역 지춘성 배우 /ⓒAejin Kwoun

・미카엘 역 지춘성 배우

늘 시대보다 앞서거나 뒤쳐진다는 삶은 오해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삶은 고난과 역경에 맞설 수밖에 없지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삶이라 생각되어 배우로서 특히 와 닿는다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후회하는 자들' 올란도/이사도라 역 김용준 배우 /ⓒAejin Kwoun
'후회하는 자들' 올란도/이사도라 역 김용준 배우 /ⓒAejin Kwoun

・올란도 역 김용준 배우

“난 나 자신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만들었죠.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자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3. 많은 고민들을 함께 하게 만들지만 편안함이 가득했던 작품 <후회하는 자들>의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차기작들이 궁금합니다.

・류주연 연출

저는 내년에 안식년입니다. 그래서 2020년 극단 산수유 정기공연은 극단 나베의 상임연출인 이승원 연출님께 위임했습니다. 저의 차기작은 <누란누란>이라는 국내 창작극으로, 언제 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지춘성 배우

차기작은 ‘사무실 복귀’입니다.

・김용준 배우

차기작은 애니 베이커의 ‘이 세상 반대편 어딘가에 있을’입니다.

'후회하는 자들' 포스터 /(제공=극단 산수유)
'후회하는 자들' 포스터 /(제공=극단 산수유)

침해받을 수 없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자기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경제적 개인주의는 다르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을 때, 오히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무명씨로 강요하는 악행의 근원일 때, 이를 목격한 어떤 사람들은 "나만 잘살면 된다"는 경제적 개인주의로 후퇴한다. 하지만 경제적 개인주의로 퇴행한 개인에 대한 옹호가 해결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국가의 악행이 지속되는 한,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 한, 국가를 대신해 개인이 자신을 완전히 고립적으로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차라리 순진하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라는 자조의 철학은 보험회사가 손님을 유혹하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삶은 분절되어 보험 상품에 의해 절대 보호될 수 없다. 삶은 총체적이니까. - 노명우 저 "세상물정의 사회학 - 상처받은 개인" -

사회에서 쉽게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삶은 쉬울 수 없다. 그들의 상처와 아픔이 많았을 삶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의 선택을 '후회'하고 예전과는 달라질 새로운 삶에 도전하려는 자신들의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선택을 한 그들의 삶은 소위 '힙하다'고 말하고 싶다. 국가 안에서, 사회 안에서 한 개인이 인간답게 살고자 함은 당연한 권리이다. 누구에게나. 분절된 시선과 가치관으로 뒤덮인 사회ㆍ국가 속에서 다양함을 억누르는 전체주의적 사고는 우리의 선택권을 억누른다. 하나의 억누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그 억누름을 당하는 이들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삶의 다양성을 위하는 정말 기초적인 첫걸음일는지 모른다.  우리 안에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은 특별한 이들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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