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론을박

▲ 김덕권 전 원불료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사자성어에 갑론을박((甲論乙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갑이 주장을 하면 을이 반박한다.’라는 뜻으로, 서로 자기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함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 말의 유래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옛날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삼형제가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보고 제일 큰 형이 저 새를 잡아서 삶아먹자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둘째는 구워먹자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막내는 맛있게 먹으려면 끓는 물에 데친 후 구워 먹자고 합니다. 서로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논란하는 형제들의 갑론을박이 계속되자 그 해결책을 얻으려고 고을 수령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사또가 그 말을 듣고 새를 잡아오면 판결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를 잡으려고 삼형제는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바다 위의 새는 벌써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주장과 너무 많은 소문과 너무 많은 가짜뉴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귀를 막고 입을 닫으려고 해도 여전히 시끄러운 주장들 때문에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땐 조용히 관망하거나 아예 관심을 꺼야 좋을 듯한 데 아직 수양이 덜 된 중생이라 여전히 칼럼을 통하여 바른 소리를 들려주고 싶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올 해, 우리나라 실업자 수가 5개월 연속 100만 명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근본적인 취업난 해결을 위해 공무원 추가채용을 비롯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공무원 추가 채용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어서 추경(追更) 논란이 두 달이나 갑론을박하고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 여야 5당은 실업자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추경을 가지고 45일간이나  갑론을박에 휩싸이다가 천신만고 끝에 7월 22일 간신히 통과 시켰습니다. 정부는 지난 5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17년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을 확정,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추경(안)은 11조 2000억 원 규모로 편성해 올해 하반기에 공무원 1만 2000명을 추가 채용하는 등 공공 일자리 7만1000개를 만드는 게 골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취업 준비생의 사연을 소개하며 “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는 각오”라며 “정부의 모든 정책역량을 일자리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국회를 찾아 “추경을 통해 만들어지는 여러 일자리를 궁극적으로 민간 중심 일자리로 연결하는 방안을 많이 생각해보고 있다”며 추경 처리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등 야 3당은 “혈세로 공무원 채용을 해선 안 된다”며 추경 편성에 반발하고 있네요. 이렇게 여야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이견이 19일에도 이어지면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가 또 파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당초 전날 추경 처리를 목표로 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이날도 추경 논의 진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어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하소연 합니다.

특히 추경(안) 제출 당시부터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공무원 추가채용 관련 80억 부분에 대한 갈등이 대폭 삭감되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이 추경에서 해당 부분에 대한 80억을 제외하고 500억 목적예비비에서 사용하도록 하자는 우회 안을 제시했지만, 야 3당이 이를 ‘꼼수’로 규정하며 또 맹렬히 반대했던 것이 저간의 사정입니다.

예결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젊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17만 개 공무원 일자리를 만들면 그 뒤 수 백조를 30년간 우리 젊은이들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며 “이것은 지금 단순히 예결위 소위에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날을 세웁니다.

어떻습니까? 이를 보고 저는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 생각납니다. 4색 당파가 만들어지고 당파 간의 당쟁이 처음 시작된 것은 선조 때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 김효원과 심의겸의 갈등이 무려 300년 가까이 서로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다툼으로 번질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원래 둘은 같은 사림파(士林派)였지만, 김효원은 퇴계 이황 쪽 신진세력이었고, 심의겸은 율곡 이이 쪽 기성세력이었습니다. 1575년 선조 9년. 동대문 쪽 건천 동 집으로 향하는 김효원이 갑자기 발길을 멈춰서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혼잣말을 내뱉었습니다.

“네가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게냐? 그래 어디 두고 보자.” 이 혼잣말이 그 질기고 처절한 당파싸움의 씨앗이 될 줄을 그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김효원은 당대의 꽃보직으로 통하는 ‘이조전랑’직에 오릅니다. 그런데 이 직위의 천거 과정 속에서 심의겸은 김효원이 외척 윤형원(몰락한 훈구파)의 집에 식객으로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유를 들면서 김효원의 ‘이조전랑’ 임용을 극렬 반대하여 그와 갈등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 일에 앙심으로 품고 보복의 칼을 갈던 차에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 직에 천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김효원이 나서서 심충겸은 명종 비 인순왕후의 남동생인 외척이라는 이유를 대며 “절대로 아니 됩니다. 이조전랑 직이 무슨 외척집안 물건이란 말이오.”라면서 극렬반대 하였지요.

이러한 그들의 감정싸움이 깊어지면서 파벌이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밀고 밀리는 파쟁이 일어나 김효원과 심의겸, 그 둘을 중심으로 동인과 서인으로 파가 갈리게 됩니다. 어이없게도 김효원의 집이 동대문 쪽이라서 동인이라 하였고, 심의겸의 집은 그 반대쪽인 서대문 근방이라서 서인이라 칭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1683년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고 다시 벽파와 시파로 갈려 대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인은 1591년 남인과 북인으로 분당되고 그 후,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또 분파가 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조선의 사색당파처럼 싸우고만 있을 것인지요? 갑론을박 싸움으로 지새는 동안 맛 좋은 새는 날아가고 맙니다. 일은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천만다행하게도 우여곡절 끝에 추경(안)이 통과 된 것은 그나마도 여간 다행한 것이 아닙니다.

극하면 변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모든 일을 화(和)와 유(柔)로써 해결하면 능히 강(剛)을 이길 수 있으며, 촉(觸)없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각 당파들이 그 왕성할 때를 조심하지 않으면 서로 입장이 뒤바뀔 때 더 어려움을 겪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