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라스낭독극장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_집에서 힘든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어머니를 위로하던, 젠이 뱀들에게 끝끝내 뺏기지 않고 지켜내던...라디오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_힘든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어머니를 위로하던, 젠이 뱀들에게 끝끝내 뺏기지 않고 지켜내던...라디오 /(제공=창작집단 LAS)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바로 지금을 살아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내면의 이중 잣대를 극대화 해주고 있는 연극 <딸에 대하여>가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관객들의 오감을 깨우는 창작집단 LAS의 신작 발굴 프로젝트 ‘2019 라스낭독극장’의 작품으로 선을 보이며, 창작집단 LAS만의 열혈팬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노인요양병원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엄마,

해고된 동료의 복직을 위한 시위 중인 딸 ‘그린’과 동성연인 ‘레인’.

그리고 엄마의 담당환자인 가족도 없고 의식도 불분명한 ‘젠’ 할머니.

네 사람의, 바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이야기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낭독공연사진_엄마(임유영), 그린(김희연)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낭독공연사진_레인(진소연)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낭독공연사진_젠(신현실), 엄마(임유영)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낭독공연사진_엄마(임유영)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무대사진 /(제공=창작집단 LAS)
‘딸에 대하여’ 낭독공연사진_사람들(이강우), 젠(신현실) /(제공=창작집단 LAS)

연극 <딸에 대하여>의 원작,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는 2017년 발간 이후 3개월 만에 판매 부수 3만 부에 도달한 베스트셀러이자,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60대 요양보호사 어머니가 바라보는 레즈비언 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발간 당시, 성소수자, 무연고자 등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가진 내면의 이중 잣대를 적나라하게 해부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의 무대화는 ㈜쇼빌컴퍼니의 김현준 프로듀서와 창작집단 LAS의 이기쁨 연출이 합심하여 기획되었으며, 이번 “2019 라스낭독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신예 홍단비 작가와 이기쁨 연출이 함께 각색한 이 희곡은 창작집단 LAS만의 색을 입혀 ‘나’보다 ‘우리’, ‘함께’라는 감동어린 사색의 시간을 안겨주었다.

흔히 가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형적인 이성애 핵가족이며, 이성간의 사랑이어야 행복하고, 이성 간의 결혼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완성되며, 위기의 순간에 나를 돌볼 사람은 그래도 내 자식이고 배우자라는 ‘막연한’ 신념들과 연결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무수히 반복되는 사랑에 대한, 행복에 대한, 돌봄에 대한 이러한 감정구조는 ‘정상가족’ 내부의 불평등한 경험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적인 삶의 시간을 연장하게 되는 원인이다. 지금까지 국가는 결혼 및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정하고 그러한 기능의 총합으로서의 가족의 형태를 규정할 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개인의 생존을 도모하고 자립의 의무를 부과해왔다.

-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저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

노인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엄마’ 역에는 임유영 배우, 엄마의 담당환자인 무연고 노인 ‘젠’ 역에는 신현실 배우가 참여하여, 해고된 동료의 복직을 위한 시위 중인 딸 ‘그린’ 역 김희연 배우, 딸의 동성연인 ‘레인’ 역 진소연 배우, 이야기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맡은 이강의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창작집단 LAS의 독특함에 또 하나의 색깔을 입혀 주었다.

- MINI INTERVIEW -

1. 김혜진 작가님의 글은 언제 어떤 기분으로 읽느냐에 따라 화자가 달라지는, 주로 보이는 인물이 달라지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주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딸에 대하여>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도 다른 시점에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다가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린, 레인, 젠은 스스로가 선택이 불가능하기에 '보통'의 삶의 지탱을 위해서도 투쟁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반면, 엄마만은 사실 선택 가능했던 삶이라 여기기에 '자의적 희생'이라는 선택을 딸에게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 느꼈기도 합니다. 극 중 한 인물에 집중되지 않도록 지문을 읽는 화자를 다르게 분배하는 등 연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들이 있었을 듯 합니다. 원작 소설을 낭독극으로 가져오면서 어떤 부분들에 가장 중점을 두셨을지, 그리고 관객들과 내년에  언제끔 다시 만날 예정인지 계획도 궁금합니다.

‘딸에 대하여’ 작품을 세심하게 연출한 이기쁨 연출은 장난스런 표정을 잘 짓곤 한다.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작품을 세심하게 연출한 이기쁨 연출 /ⓒAejin Kwoun

・이기쁨 연출

<딸에 대하여> 원작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가 사무쳐 꽤 긴 시간 동안 완독하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는 자체가 너무나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엄마는 딸 그린에게서 분리되지 못하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딸에게 모든 마음을 지우고 바라봅니다. 잔인하고 이기적인 희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내 어머니 시대의 부모들은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떤 누구라도 ‘부모’라는 역할은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서툴고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상처 주고 외로워진다는 것, 이 모든 것을 해결해나가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다보니 제 개인적인 마음은 ‘엄마’에게 많이 다가가 있었습니다. 죄책감과 미안함과 이기심, 용서와 화해가 혼재된 마음이었죠.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읽어낸, 좋아하는 소설이라 원작을 해치지 않고 무대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매우 컸습니다. 원작 소설은 엄마의 감정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줄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다고 1인 모놀로그로 무대화시킬 수는 없었으니까요. 저와 홍단비 작가는 ‘엄마’의 상태와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 그리고 4명의 인물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각색을 해나갔고, 그 결과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라든가, 오래된 라디오 같은 메타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요양소에서 젠을 구출해내는 장면도 원작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을 했습니다. 4명이 ‘가족’이 되는 순간, 그리고 이 극을 통틀어 딱 한 번 시원하고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낭독극을 연출할 때마다 그 극의 분위기에 맞게끔 지문을 읽는 방법이라거나, 동선 등을 매번 다르게 사용을 하는데, 이번 <딸에 대하여> 같은 경우는 ‘엄마’에게 지문을 읽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자체로 존재시키고 싶었고, 엄마의 상태를 표현하는 지문들은 관객이 엄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읽어지길 바랐습니다. 그 외의 지문들은 맡은 역할과 관련된 지문을 주로 읽게끔 배치를 하였구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딸에 대하여> 무대화를 처음 제안한 ㈜쇼빌플레이의 김현준 PD님과 홍단비 작가와 꽤 긴 시간동안 애정을 가지고 고민하며 각색 작업을 진행해왔고, 무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년 언젠가에 짧게라도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무대화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지문으로 설명되었던 엄마의 상태를 어떤 방식으로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대본상 여러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무대미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지, 그리고 조금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잔잔한 서사를 어떻게 좀 더 드라마틱하게 끌고 갈 수 있을지, 이런 부분을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잘 다듬어서 관객 분들을 꼭 만나 뵐 수 있기를, 저도 마음 깊이 바랍니다....!

2. 피가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는 면은 나카노 료타 감독님의 '행복 목욕탕'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어떤 가족'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여러 인물의 목소리가 촘촘하게 엮어진 작품 <딸에 대하여>에서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 여기는 대사와 그 이유가 듣고 싶습니다.

‘딸에 대하여’ 이기쁨 연출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이기쁨 연출 /ⓒAejin Kwoun

・이기쁨 연출

엄마와 그린의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대표할 수 있는 단축번호 1번.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 슬픈 이야기지만, 너무나 많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에 대하여’ 엄마 역 임유영 배우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엄마 역 임유영 배우 /ⓒAejin Kwoun

・엄마 역 임유영 배우

그린과 레인의 관계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어가는 엄마지만, 여전히 엄마는 이 모든 일이 거짓말이기를 소망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저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다는 평범한 일이 그린과 레인에게는 기적 같은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엄마는 소망합니다. 비록 자신에게는 참혹한 진실일지라도 딸 그린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이 기적처럼 다가오기를.

‘딸에 대하여’ 젠 역 신현실 배우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젠 역 신현실 배우 /ⓒAejin Kwoun

・젠 역 신현실 배우

젠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치매노인이지만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건, 현재에 무엇을 할 수 있건, 앞으로의 시간이 얼마가 남았건 상관없이 한 생명이 누군가에게 있어주고, 자신이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뺏기지 않고 지켜낸 모습을 보여주는 대사입니다. 젠이 딸들과 엄마의 현재의 고민을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순 없지만 아주 단순하게 방법을 전해주는 대사였던 것 같습니다. 젠은 작품 속에서 아이(가족)가 있냐, 어디에 있냐는 질문을 반복합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다시 대답을 해봅니다. 그게 딸이건, 하나이건, 누구이건, 있다는 것에 "좋아.", "고와."라구요. 그렇게 바라봐주는 것이라고.

‘딸에 대하여’ 그린 역 김희연 배우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그린 역 김희연 배우 /ⓒAejin Kwoun

・그린 역 김희연 배우

많은 대사들이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린 뿐 아니라 엄마도 레인도 젠도 그 밖의 사람들도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말을 많이 해주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인상 깊은 말을 떠올려본다면 저 대사인 듯 합니다. 그린은 부당함을 보았을 때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 힘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함에서 온다는 걸 저 대사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이처럼 뜨거운 사람일 수 있나, 그랬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부끄럽기도 했었구요.

‘딸에 대하여’ 레인 역 진소연 배우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레인 역 진소연 배우 /ⓒAejin Kwoun

・레인 역 진소연 배우

'그린'과의 사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레인'이 극 중 '엄마'와의 갈등 중 뱉는 대사입니다. 캐릭터 분석 과정에서, 레인은 기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의 속도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린과 자신이 켜켜이 쌓아온 7년간의 전사를 전혀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엄마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문장이기에 인상 깊은 대사로 꼽았습니다.

‘딸에 대하여’ 사람들 역 이강우 배우 /ⓒAejin Kwoun
‘딸에 대하여’ 사람들 역 이강우 배우 /ⓒAejin Kwoun

・사람들 역 이강우 배우

어떤 상황을 맞이하는,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결국 우리 옆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관통하는 대사라고 생각됩니다. 또 누군가는 자기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요.

'2019 라스낭독극장' 포스터 /ⓒEASThug(제공=창작집단 LAS)
'2019 라스낭독극장' 포스터 /ⓒEASThug(제공=창작집단 LAS)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의 집에 딸과 연인이 한 집에서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며 갈등이 심화되지만, 그들의 관계는 ‘애증’일 것이다. 사회에서 개개의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떠넘긴 부양의 의무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압박적인 사고 속에서 엄마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 시간 속에 엄마의 인생은 잘 보이지 않기에 그러한 희생을 당연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그린과 레인은 가족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들은 병원에서나 금전 관계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쉽지 않다. 그들은 ‘인정’과 ‘공감’을 위한 연대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본인들도 사회 속에 약한 존재이건만 동료를 위해 사회에 당당하게 저항을 한다.

‘젠’과 ‘엄마’ 또한 피로 섞여 있지 않다. 국가에서도 일정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무연고자들은 아직 살아 있지만, 사회 속에서 잊혀진 채로 사라져 간다. 피로 연결된 사이는 아니지만 애정이 가득한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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