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전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인생 여정에 피는 꽃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은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나, 살아있는 시간, 경험, 삶, 생애, 일생 등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정(旅程)은 여행 중에 거쳐 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이지요. 어린아이들은 매순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인생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기쁘면 기뻐하고 슬프면 슬퍼하고 지루할 때는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과는 달리 감정을 표출하는 데에 인색한 편이지요. 산전수전 공중 전까지 다 겪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기 보다는 상황을 분석하며 말 하나하나에도 신중함을 두기 마련입니다. 어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에 있어 일희일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과가 나오는 하나의 긴 여정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 호흡으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흔히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승차권 하나 손에 쥐고 떠나는 기차여행 같은 것이라고 하지요.  

인생이라고 하는 긴 여정을 떠나면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 기차에 한 번 승차하면 절대 중도하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납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뒤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듯, 인생이라는 기차 또한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가다 보면 아름다운 꽃밭도 있고, 모진 폭풍우도 만나곤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엔 기쁨에 겨운 아름다운 미소도 있겠지만 캄캄한 긴 터널을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내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가슴 아프고 슬픈 일도 하루씩 견디다 보면 괜찮아질 수도 있습니다. 화나고 억울한 일도, 속상하고 괴로운 일도 하루 밤 자고 나면 지나가게 마련 될 것입니다. 막막한 삶도 울고 싶은 현실도, 기억 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들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행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우리의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보면 어떨까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나의 삶이 그 손바닥 안에 그려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뛰어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여정의 윤활유가 될 것입니다. 

누구는 인생을 전쟁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쟁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이 전쟁터를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꿀 수도 있습니다. 봄이 오기 직전이 가장 추운 법이고,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사방이 다 막혀도 위쪽은 언제나 뚫려있고, 진리 앞에 절실하게 기도를 올리면 희망도 생기는 법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안다면, 한층 인생의 무게가 더해짐을 알 것입니다. 김홍신 작가는 돈, 명예, 권력을 다 가져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괴롭고 불안하다고 토로했습니다. 남들은 ‘당신 부러울 게 어디 있나? 이정도면 됐지!’ 하는데, 그는 지금도 밤마다 참회기도를 올린다고 합니다. 

그는 ‘참(懺)’이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잘못한 일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란 지금으로부터 죽는 순간까지 지을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참회는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이며, 악도(惡道)를 벗어나 선도(善道)에 들어오는 초문(初門)인 것입니다. 사람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여 날로 선도를 행하면, 구업(舊業)은 점 점 사라지고 새로운 업은 짓지 아니하여 선도는 날로 가까워지고 악도는 스스로 멀어지는 것입니다. 

예전에 지은 죄악은 구름이 해를 가린 것과 같고, 새롭게 지어가는 선업(善業)은 밝은 불이 어둠을 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지라 마음이 멸(滅)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업(業)이 본래무명(無明)인지라 자성(自性)의 혜광(慧光)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찌 우리가 이러한 이치를 알고도 참회의 문에 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업의 근본이 탐 진 치(貪瞋痴)라 우리가 아무리 참회를 한다 할지라도, 훗날 또다시 악을 범하고 보면, 죄도 또한 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도에 떨어질 중죄를 지은 사람이 일시적 참회로써 약간의 복을 짓는다 할지라도 원래의 탐 진 치를 그대로 두고 보면 복은 복대로 받고 죄는 죄대로 남아 있게 되어 그 업이 끊임이 업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애초부터 완전하지 않기에 처음부터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 건강, 시간, 자녀들을 생각하며 주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더욱 늘어만 갑니다. 그것보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여러 핑계를 대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서 인생의 소중한 때를 놓치고 한숨 내쉬며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실패한 일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가 두려워 생각했던 일들을 시작도 안 했거나 아니면 해 본 일중에 실패했을 때의 두려움으로 아예 포기했던 일을 더 후회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은 원래부터 정답이 없는 것입니다. 일이 생기면 생긴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손해 보면 손해 보는 대로 ‘그럴 수도 있지’하며 대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 웃고 지나치면 한 번뿐인 우리 인생이 좀 더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여정에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업을 면하려면 참회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참회를 통해서 우리네 인생여정이 한결 편안하게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발원이 없고 향상코자 노력함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되 곧 죽은 사람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여정에서 참회 개과하여 마지막 인생의 꽃을 피워 가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2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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