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앨리스(성수연), 에이드리언(김정)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정체성에 대한 사유와 사랑 및 관계에 관한 고찰을 품고 있는 작품 <로테르담>이 지난 해 12월 18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그 어느 때보다 ‘퀴어’와 ‘페미니즘’에 대한 관객들의 큰 관심과 공연의 완성도와 재미에 대한 입소문으로 조기에 전석매진을 기록하며 아쉬움 가득한 속에 막을 내렸다. 다음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작품 <로테르담>의 공연은 비온뒤무지개재단과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난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 모든 게 나한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은 거야.”

로테르담에 살고 있는 7년차 ‘레즈비언’ 커플 앨리스와 피오나.

새해를 앞둔 어느 날, 피오나가 앨리스에게 폭탄 같은 커밍아웃을 한다.

“나 남자로 살고 싶은 것 같아. 아니, 남자인 것 같아.”

혼란에 빠지는 앨리스, 이 와중에 베프인 조쉬는 여행을 떠나려 하고, 설상가상으로 직장 동료 렐라니의 무차별적 애정공세가 시작되는데…….

앨리스는 과연 피오나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위태로워진 두 사람의 관계는 굳건히 이어질 수 있을까?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피오나(김정), 앨리스(에이드리언)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조쉬(마광현), 앨리스(성수연)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에이드리언(김정), 조쉬(마광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앨리스(성수연), 조쉬(마광현), 에이드리언(김정)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렐라니(이지혜), 앨리스(성수연)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공연사진_렐라니(이지혜), 앨리스(성수연) /ⓒ박태양-보통현상(제공=프로젝트이어)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유럽의 관문으로 통하는 최대 무역항이다. 전쟁 이후 실험정신이 가득한 노력들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로테르담은 어떤 모습을 하여도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앨리스는 그녀의 연인과 7년 간 그 도시에 머물고 있다. 비행기로는 1시간, 작년부터는 유로스타로 3시간 남짓 걸릴 뿐인 런던의 해역 너머 이국의 도시에서.

각자가 처한 사태를 주체적으로 마주하는 레즈비언 커플과 이미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각한 퀴어 인물들이 그들의 삶에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되는 현실을 그리고 있는 <로테르담>은 어쩌면 단순하고 어쩌면 너무나도 복잡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나 절묘하게 공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드라마로 짜인 서로의 대화들을 통해 깨닫게 만들어 준다.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자신의 정체성이란 것은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이 아님을.

연극 <로테르담(Rotterdam)>은 영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Jon Brittain의 2015년 발표작으로, 초연 이후 여러 극장에서 잇달아 공연되었으며, 2017년 올리비에 어워즈(영국 연극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서 ‘협력극장 작품상(Outstanding Achievement in an Affiliate Theatre)’ 부문을 수상함으로써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그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쉽지 않고 어색하고 복잡한 주제에 대하여,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영리한 작품 <로테르담>을 만나 볼 수 있었던 것은 2019년 한 해를 지나오며 상당히 큰 ‘행운’이라 여길 만큼, 강력한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으로 손꼽고 싶다. 사회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젊은 창작집단 '프로젝트 이어'의 작품들은 점점 더 매력을 더해가고 있기에 다음 작품 또한 기대가 모아진다.

- MINI INTERVIEW -

1. 장 전환부터 위트와 세심함에 감탄하기 시작했던 작품 <로테르담> 실제 그 인물 같던 배우님들의 연기와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던 인물들의 대사는 작가가 천재일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작품을 우리 무대로 가져오며 작품의 치밀한 구성과 대화들을 우리네 관객들에 맞춰 또 다른 고민들을 많이 하셨을 듯합니다. 박장대소를 하다가 왜 갑자기 눈물이 흐르나 싶던, 인물 하나하나에 감정을 모두 쏟아붓게 만들던 작품 <로테르담>에서 번역가님과 연출님은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셨을지 궁금합니다.

・번역자 김수아

이미 드라마적 구성이나 캐릭터 각각의 서사,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쫀쫀한 대사들까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사실 원작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어떻게 누락시키지 않고, 잘못 전하지 않고 - 가장 완전한 그 모습 그대로, 원작의 의도대로 옮겨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텍스트를 그대로 다 옮긴다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의도를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 언어와 사회적 약속들을 통해서 펼칠 수 있을까...하는 선택들이요.

그리고 아무래도 코미디 대본이다 보니 문화적인 컨텍스트 안에서 이뤄지는 농담들을 어디까지 살려내고 어디까지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번역극이 과하게 현지화 되는 것도 작품의 밸런스와 오리지널리티를 깰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웃음 포인트는 포기하더라도 전체적인 톤을 맞추는 안에서 재미도 살리고 싶었습니다. 연출님과 배우 분들과의 작업 과정에서 그 균형이 맞게 정리된 것 같다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연출자 진해정

연출자로서 가장 중점에 두었던 부분은 극이 품고 있는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구현이었습니다. 우선 시간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각 막이 이틀 사이에 벌어지는 반면 막 사이에는 4개월이라는 긴 기간이 설정되어 있었는데요, 이러한 시간 구성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작품의 장르적 특성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움직이고 스쳐가는’ 로테르담이라는 공간성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기에 공간의 유동성과 시간의 압축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연출방향이 무엇일까 많은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2. 작품 <로테르담>이 젊은 세대들의 정체성의 자각과 커밍아웃 등의 이야기라면, '경계의 무너짐'을 이야기하는 작품 <후회하는 자들>은 장년층 이상에서 계속되는 경계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암묵적 합의에 의한 이원적 젠더 구분은 폭력적인 부분이 크다 여기며, 인간 그리고 인간을 넘어선 모든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이분화된 성구분만으로 쉽게 특정 지을 수 없다 여깁니다. 깊은 배려가 느껴지는 작품 <로테르담>의 무대화를 준비하며 준비 전과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으셨을지 이야기들을 듣고 싶습니다.

・번역자 김수아

솔직히 준비 전과 후로 큰 생각의 변화랄 것은 없습니다. 그저 누구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 그래야 한다, 나라는 인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굳게 생각할 수 있었던, 좀 더 찐하게 느낄 수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로도 많이 받았고요.

・피오나/에이드리언 역 김정 배우

자신의 정체성, 정의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내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되거나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느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앨리스 역 성수연 배우

모든 인간들에게는 결함이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혹시 누군가는 더 엄격한 잣대로 이들을 판단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연습과정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과 만나며,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제가 (말씀대로) 주관적 영역인 '사랑'을 생각할 때조차도 어떤 종류의 정치적 올바름을 강박적으로 전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완전히 옳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것을 알면서도 손을 잡고 일단 함께 가기로 하는 순간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저에게 일어난 변화입니다.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조쉬 역 마광현 배우 /ⓒAejin Kwoun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조쉬 역 마광현 배우 /ⓒAejin Kwoun

・조쉬 역 마광현 배우

너무 뻔한 얘기지만...대부분의 갈등들에는 역시 사랑이 가장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들 각자의 입장이 있고 또 우리 대부분은(아마도 모두가) 조금씩은 부족하고 또 이기적이고 그 외에 여러 이유로 갈등은 필연적으로 생기지만 사랑하니까 이해해 줄 수 있고 견뎌줄 수 있고 기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랑하니까 이해하고 싶고 같이 견뎌주고 싶고 기다려주고 싶다는 생각들...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3. 한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퀴어한 친구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차별금지법을 방해하거나 그들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말이나 글로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조금은 답답하고 간지럽다 여기던 부분들을 너무나 시원스레 풀어주는 듯 한 작품 속 주옥같은 대사들에 많이 웃기도, 많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대사 하나하나 모두 인상 깊었지만서도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 여기는 대사 한 줄과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로테르담' 진해정 연출 /(출처=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테르담' 진해정 연출 /(출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출자 진해정

작품의 마지막 대사인 만큼 작가의 의도가 집약되어 있는 라인입니다. 사랑의 성립에는 상대에 대한 ‘모름’이 전제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알 수 없음’과 그로부터 비롯하는 불안과 두려움마저도 기꺼이 감내하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의 손을 잡아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 불리는 어떤 순간들의 가장 빛나는 지점임을 말하는 아주 아름다운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피오나/에이드리언 역 김정 배우 /ⓒAejin Kwoun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피오나/에이드리언 역 김정 배우 /ⓒAejin Kwoun

・피오나/에이드리언 역 김정 배우

이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앨리스가 에이드리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앨리스 역 성수연 배우 /ⓒAejin Kwoun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앨리스 역 성수연 배우 /ⓒAejin Kwoun

・앨리스 역 성수연 배우

앨리스라는 인물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말이고, 이렇게 말했던 앨리스가 에이드리언과 함께 가기로 결정했을 때 어떤 마음의 변화들이 있었는지 상상해보게 되는 말이어서 골랐습니다.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렐라니 역 이지혜 배우 /ⓒAejin Kwoun
‘로테르담’ 커튼콜사진_렐라니 역 이지혜 배우 /ⓒAejin Kwoun
'로테르담' 포스터 /(제공=프로젝트이어)
'로테르담' 포스터 /(제공=프로젝트이어)

우리는 누구나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려는 ‘슈퍼맨’을 꿈꾸지는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사회 속에 너무 모나지 않게 지내며,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꿈을 꾼다. 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연극적인 작품 <로테르담>은 ‘인정이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내가 보고 싶은 방식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를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성정체성 또한 그저 정체성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기에 멈춰있기 보다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파도치고 폭풍우가 치기도 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옳거나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일는지 모른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