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말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다 미완에 그쳤던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 때아닌 '진실공방'이 붙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일 JTBC 뉴스룸 신년토론에서 한 발언에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반박 입장을 내면서다.

유 이사장은 신년토론에서 "2004년 4대 개혁입법이 왜 안됐냐...(중략) 당시 열린우리당 152석, 민주노동당 10석 해서 162명의 국회의원이 (법안 처리를) 하려 했는데 자유한국당(당시 한나라당)이 상임위 회의장과 본회의장에서 육탄 저지를 했는데 경호권을 발동해 끌어내지 못해서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부영 전 의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완전히 거짓주장"이라며 "야당은 국회를 점거하지도 않았고 여야협상은 순항했다. 여당이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협상은 깨졌다"고 썼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전직 중량급 정치인들이 2004년말 국회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펴자 네티즌들도 한쪽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15년여 년 전 국회 상황의 '진실'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 2년 차인 2004년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신문법(언론관계법) 등 여당 주도로 추진한 이른바 4대 쟁점 법안 제·개정·폐지 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4개 법안 중 신문법을 제외한 3개 법안이 그해 처리되지 못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폐지는 커녕 지금까지 '일점일획'도 수정되지 않았다.
 또 유 이사장이 밝힌 바와 같이, 그해 연말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로 보수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여야 공방의 와중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법사위 회의실 및 본회의장 점거 등 '육탄 저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쟁점 법안 처리 불발의 원인을 당시 야당의 '육탄 저지'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당시 여야 간에 물밑 협상을 통해 수뇌부간 '잠정 합의'를 했다가 한쪽이 당내 이견을 이유로 깨는 과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당시 여야 수뇌부간에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아닌 개정을 골자로 하는 4대 법안 통과 '잠정 합의'가 있었으나 여당(열린우리당) 내부의 이견으로 인해 '최종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던 사실은 복수의 당시 여당 인사 증언을 통해 확인된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04년 12월 하순 자신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회동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고 신문법,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등을 여당 안(案)대로 개정하기로 했으나 유시민 당시 의원을 포함한 열린우리당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의 반발에 봉착해 결국 여야 대표의 협상안은 좌초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부(副)대표였던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부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 사이에 국가보안법을 일부 개정하고 나머지 개혁입법 법안 일부를 통과시키는 안을 가져왔는데 결국 당시 천정배 원내대표가 당내 '강경파'의 의견을 수용해 '그 협상안을 받을 수 없다, 즉 국가보안법 개정은 안 된다. 폐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닌) 개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열린우리당 내) '원칙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컸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으로 합의처리를 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강했는데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 후 국가보안법은 뒤로 미루고 과거사법, 신문법 등을 우선 처리하기로 당시 여야 원내대표 간에 합의했으나 이번엔 한나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 유지' 결정에 반발하며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과 법사위 회의실 등을 점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당시 여야가 번갈아 가며, 수뇌부끼리 합의한 협상안을 당 내부 반발을 이유로 거부한 셈이었다.'

2004년 12월31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모습.
2004년 12월31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모습.

이와 함께,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서 여야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004년 쟁점 법안들이 처리되지 않은 배경을 설명하면서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의 존재를 비중있게 거론했다.

천 의원은 "2004년 당시에 (4대 '개혁입법' 처리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의) 숫자는 과반이 됐다"며 "야당이 몸으로 막으면 경호권을 발동해 야당 의원을 끌어내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지만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이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강행처리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쟁점 법안의 처리가 불발되기까지 야당의 반발도 있었지만 당시 의사봉을 쥔 김원기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에 따른 처리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말이었다.

결국 유시민 이사장이 방송 토론에서 한 발언은 팩트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그 발언에 담기지 않은 '복잡한 상황'이 있었던 셈이다.
유 이사장은 이부영 전 의장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묻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반론할 생각 없다"며 "당시 법사위와 본회의장 점거 상황은 검색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유시민 당시 의원을 포함한 여당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의 강경론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개정의 기회를 놓쳤다는 이 전 의장 주장에 대해서는 "이부영 당시 당 의장의 정치적 평가이기 때문에 그대로 존중한다"며 "현실정치에는 늘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며 옳은 주장이라고 해도 때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지적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역사를 왜곡했다는 말씀은 이부영 의장이 당시 상황을 일부 오인하신 탓에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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