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노무현입니다> 메인 포스터.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한 지인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하여 동행하게 된것이 "노무현입니다"다.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8년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9월1일생으로 8년전인 2009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좋은 아저씨 같았던 대통령 노무현이 영화 '노무현이다'를 통해 8년만에 부활하고 있다. 25일 개봉하였는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의하면 27일 하루20만5천명의 관람객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이창재감독 작품인 이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시작하여 누적 3일째 38만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지난달 2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개봉관도 첫날 579개에서 774개로 늘어 났다. 총 누적 480만을 기록한 '님아,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20만을 돌파하는데는 11일이 걸렸다고 하니 대단한 흥행이다. 최초 제목은 ‘N프로젝트’. 혹시나 내용이 새어나갈까 걱정돼 ‘노무현’ 이름 세 글자를 담지 못했다. 제작 과정은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야말로 ‘몰래 만든 영화’였다. 제작진 전원 극장 개봉조차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봉이 어려우면 영화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자취를 감출 계획도 세웠다. 극우단체의 고소, 고발과 세무조사에도 대비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거쳐 구속됐고, 대선이 앞당겨 치러졌다. 개봉 타이밍도 절묘했다. 주인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단기간으로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하며 흥행기록을 세웠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매력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일반 영화처럼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노무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것이다. 내용은 국회의원,시장 선거 등에서 번번히 낙선만 하던 만년 골찌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 출사표을 던지면서 극적으로 대통령후보 1위가 되기까지를 그린 내용이다. ‘네 번의 낙선.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대선 후보 1위가 되다.’ 포스터 속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크게 웃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함께 적혀있는 세 줄의 문구다. ‘대통령이 되다’도 아니고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도 아니다. 감독은 ‘대선 후보 1위가 되다’라고 포스터에 명시해 놓고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과정을 영화에 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창재 감독은 당시 경선 자료 화면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유시민작가 등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주변 인물 39명을 인터뷰 장면을 섞어가며 감동적으로 인간 노무현을 영화로 부활시켰다. 일반적으로 다큐 영화가 배울 것은 많지만 감동적으로 그려 내기는 어려운데 이 영화는 다르다. 관객들 대부분 그렇게 예상하거나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모습, 서거하기 전 봉하마을에서의 모습,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에 손녀딸을 태우던 모습을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장면들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내용 대부분은 민주당에서도 홀대받던 군소후보에서 역전의 드라마를 거쳐 마침내 경선 1위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서거한 이후의 상황,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시점이 바로 이어진다. 영화는 왜 노 전 대통령의 일생에서 2002년 민주당 경선을 조명하고 있을까?

감독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가진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찾았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 속 영웅들의 삶의 궤적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해 이를 ‘영웅서사구조’로 패턴화시켰다. 이 패턴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가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생은 영웅서사를 기본으로 하는 영화가 갖춰야할 요소를 충분히 지녔다. 그리고 그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장면이었던 것이다. 고작 2%의 지지를 받는 군소후보였던 노무현이 전국을 돌며 적대자와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온갖 시련, 역경을 딛고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는 과정.

보통 영웅서사구조를 갖춘 영화 속 주인공이 도착하는 마지막 단계는 부활과 함께 누리는 자유의 삶이다. 하지만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마지막 장면은 반대로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2009년 ‘봉하의 봄’을 조명한다. 감독은 ‘노무현’이라는 콘텐츠에서 오는 비극성을 강조했다. 비극성은 카타르시스라는 집단적 정신의 정화과정을 촉발시킨다. 감독은 이런 서사구조를 통해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슬픔이 밀려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들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주인공에게 서사구조의 마지막 단계 ‘부활’과 ‘자유의 삶’을 부여하며 직접 이야기를 끝맺음 한다.

‘제대로 된 아버지’의 결핍이 불러온 노무현 현상

작년 개봉한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경우 오로지 노무현 지지자를 위한 영화였다. 그러나 <노무현입니다>는 감독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애초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듯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일면식이나 추억이 없음에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많다. 그들은 노무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감정을 공유한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이다. 어떤 영화관에서는 아예 티슈를 한장씩 준다고 하는데,이런 영화관에 입장하는 관객들은 처음에는 의해해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서야 왜 티슈를 주었는지 알게 된다고 한다.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관객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까닭을 ‘영웅서사구조’의 관점에서 노무현의 일생을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까? ‘노무현 현상’의 원인을 영화 속 구조보다 관객들의 무의식에 내재하는 결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멀리서 보면 권위주의적이고 우월한 ‘지도자’보다 우리와 공감하고 인간적인 ‘대표자’에 대한 결핍이고, 가까이서 보면 우리 가정의 ‘제대로 된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다. 그 결핍을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채워주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표출되는 것이다. 2002년 처음 경선에서 지지율이 단지 2%로에 지나지 않았던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되기 까지의 대 역전 드라마를 보면서, 관객들은 인간 노무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영화 속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유시민 작가.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어느 정도 마감되는 시점은 사회가 바로잡혀질 때라고 말한다. ⓒ 영화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아버지’의 결핍이 강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간 이어온 유교문화 안에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장자에게 재산이 상속되고 남존여비(男尊女卑), 재가금지(再嫁禁止) 등 권위주의적 부권제 사회가 자리 잡은 영향이다. 게다가 일제강점과 산업화를 거치며 좋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왜곡되고 사라졌다.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아버지상도 좋은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자, 음주, 폭력, 도박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

아버지의 개념이 확장된 지도자들도 ‘좋은 아버지상’을 갖춘 사례가 드물다. 조선의 왕들과 일제 강점기의 통치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며, 대한민국 수립 이후 대통령이 된 사람들 대부분 독재와 범죄로 국민들에게 국가폭력을 행사했다. 이 역사의 결과로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된 아버지’를 갖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에 내재되었다고 본다. ‘부성결핍증후군’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부성결핍증후군’은 박정희에 대한 심리적 의지로 나타났다. 정말 좋은 아버지를 가져 본 경험이 없기에 자신에게 따뜻한 쌀밥을 줬다는 왜곡된 믿음으로 박정희를 쉽게 마음속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듬직한 인물, 단호하고 차가운 명령에 복종해야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박정희이자 좋은 아버지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민주화를 거치며 박정희로 대표되는 아버지상은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됐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박정희가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는 한 동안 공석으로 유지되다 노무현이 채운 것이다. 새파랗게 젊은 부하직원을 ‘동업자’라 칭하며 함께 가자고 했고, 자신의 운전기사 결혼식에 신혼여행 운전기사를 자처하기도 했으며, 자신을 감시하던 중앙정보부 직원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만큼 진정성을 품었으면서도,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로 행여 자신을 괄시할까 주변의 시선에 예민하기도 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지도자’이기보다는 인간적인 ‘아버지’에 가까웠다.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간다

이 영화를 본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 민초들의 아픔을, 돈 한푼 받지 않고 변호하여 무죄를 증명하는 극적인 과정도 상당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53%의 지지를 얻어 가장 높은 인기도를 차지했다. 그는 선거 유세 중 암살로 갑작스럽게 죽었지만, 정치적 실패로 끝낼 것 같았던 케네디는 오히려 미국 ‘뉴 프론티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주제로 조사를 한다면 노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자살로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했지만 그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관객뿐 아니라 국민들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했고 자유의 삶을 얻은 듯 보이니 말이다.

정치에 대한 꿈을 심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보는 시각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떠나보내려 한다고 해서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에요.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에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어느 정도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잡혀질 때 그 애도의 기간이 종료되리라고 봐요.”

영화 속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떠나보낼 시점은 사회가 바로잡혀질 때이기도 하겠지만, 국민들은 ‘제대로 된 아버지’에 대한 결핍감을 해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를 영원히 안식의 세계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시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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