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향기

사람의 정(情)이란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그리고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을 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방법이 서로 다른 가 봅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마음만 가슴에 담고 있으면 그만이라고들 하지만, 여자들은 한사코 그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랑을 꺼내서 보여 주기를 원하지요.

조용필의 <정이란 무엇일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받는 걸까 주는 걸까/ 받을 땐 꿈 속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 온 살아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뜨네./ 정을 쏟고 정에 울며 살아 온 살아 온 내 가슴에/ 오늘도 남모르게 무지개 뜨네.」

누구나 어려울 때, 그리고 많이 외로울 때, 또한 무슨 일로 괴로울 때, 진심으로 정으로 다가가 한사람의 정신세계를 편안하게 그리고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살맛나게 하는 게 정이고, 사랑이며, 진심이 아닐 런지요? 또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진심이건만 상대방이 그 진심을 몰라줄 때가 아마 내 마음이 가장 허무하고 제일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이 진심으로 정을 나누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 보는 게 꿈이고 가장 큰 소망일지도 모르지요. 여기 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부 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분들이었지요. 그들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위해주며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부부를 보고 있으면 어느 사람이라도 행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런 행복을 깨는 불행한 일이 터진 것입니다. 바로 건강하던 할아버지께서 아프기 시작하셨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아버지가 병원에 치료를 다니면서부터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약 가져와!” “네 여기요” “물은?” “네 여기요” “아니.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어?”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물 컵을 엎어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엔 뜨거운 물이 아닌 찬 물로 할머니가 물을 다시 떠왔더니 “아니 그렇다고 찬물을 가져오면 어떡해!!” 하며 또 할머니가 가져온 물을 엎질러 버립니다.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님들 오셨는데 왜 이렇게 늦게 상을 차리느냐며 소리를 쳤습니다. “당신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정신이 벙벙해서 그만...” “이게 어디서 말대답이고?!” “손님들 계신데 너무 하시네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할머니께서는 마음이 너무 아프셨습니다.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에 너무 당황한 손님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어르신! 왜 그렇게 사모님을 못 살게 구세요...” 그러자 한참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 할망구가 마음이 여려. 나 죽고 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되서 말이야..... 날 미워하게 해서라도 나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야 될 거 같아.....” 할아버지의 눈가엔 어느 새 울며 나간 할머니보다도 더 슬퍼 보이는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떠나셨지요.

그리고 그 무덤가 한 편엔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일부러 할머니와 정 떼려고 했던 할아버지의 원치 않던 독한 모습이 왜 이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할머니도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정 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할머니에게 모질게 구셨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가 평생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꽃처럼 아름답게 피고 향기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비우는 까닭은 제 몸을 탐욕의 죄악으로부터 단단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납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집니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덕화만발 가족으로 만나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서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반기며, 보내는 것이 바로 정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 아수라 같은 세상에 맑고 밝고 훈훈한 향기를 뿌리다가 갈 때가 되면 소리 없이 사라져도 깊은 정의 향기는 오래 오래 남는 것이 우리들의 정이 아닐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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