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한 길 걸은 이사람, 정치계 25년 한 길만 걸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신인의 정치 입문 이야기'

[뉴스프리존= 김은경 기자] 정치계에 오래 몸 담았지만 일반인들은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정치신인'을 취재 한다는 것은 기자로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스프리존은 '정치계 25년' 한 길만 걸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3인의 '정치신인의 정치 입문 이야기'를 '설' 기획으로 취재했다.

첫번째,  이은영  노무현대통령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두번째, 이홍영 문재인대통령 청와대 행정관

세번째, 조대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이은영 전 행정관
이은영 전 행정관

첫인상이 소탈 그 자체였다. 이 전 행정관의 손에 들려있는 에코백이 유독 눈에 들어와서 였을까?

이 전 행정관의 기억속의 노무현대통령도 소탈함으로 남아 있다.

이 전 행정관은 말한다.'' 제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치계에 몸 담고 일 할수 있었던 원동력이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배운 '정치에 대한 희망'때문인것 같습니다''

이 전 행정관(이하 이은영)에게 노무현대통령이 종로에 출마했을 당시에 사람도 많지 않은 골목골목을 누비며 마이크 들고 온몸으로 열정적인 연설하던 모습은 남다른 기억인 듯 하다.

98년도 종로재보궐 선거 당시 당직자였던 이은영은 중앙당에서 파견을 나왔다.

더구나 고 노무현 대통령은 연설을 잘 하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노무현대통령의 '독도 명연설'은 지금 다시 들어도 대단 하다며 일본측의 독도 망언 시즌이 돌아올 때 꼭 한번 sns에 다시 소환된다.

'정치란 희망이다'라고 생각하며 파도가 치는 정치현장에서 버티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 전 행정관은  '아이 셋'의 엄마다.

그래서 더욱 '정치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 이라며  정치신인의 포부를 밝혔다.

'민심을 보고가라'

노무현정부 초반의 일이었다.

보통 대통령들은 청와대내의 비서관실은 발걸음 하지 않는 데 노무현대통령이 (이은영이 소속해 있는) 여론조사 기능을 갖춘 비서관실에 들렀다.

노무현대통령 퇴임 후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는 봉하마을 가게에서 담배 피우던 모습 그대로였다며 당시 비서관실에서도 그렇게 담배 한대를 피우시더라고 회상했다.

여론조사 비서관실은 노무현대통령이 직접 만들어서 더욱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본다.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의 어느 가게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은영 전 행정관은  이 모습과  비서관에 내려와 담배 피우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지금은 한장의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 사진 인터넷 자료
퇴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의 어느 가게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은영 전 행정관은 이 모습과 비서관에 내려와 담배 피우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지금은 한장의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 사진 인터넷 자료

'노무현대통령에게 배운 정치와 일화'에 대해 듣고 싶어하는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이은영 전 행정관은, ''여론조사 기능을 갖춘 비서관실이다 보니 그런 보고서를 올리기 마련이고 대통령님이 피드백을 해주셨는데 '여론과 민심의 차이점이 뭐냐'고 하셨고, 그 뒤 '여론보다는 민심을 보고 가야한다'고 피드백 주신 것이 기억에 남고 제가 정치를 배운 큰 부분입니다.

여론조사를 계속 하다 보니 ‘여론은 계속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여론만을 보고 가다보면 정치하기가 되게 힘들다’는 것이고 제가 내린 결론은 '민심의 등대를 보고 가는게 중요하다' 입니다''  라고.

노무현대통령이 직접 기획한 여론조사 실무 행정관이었던 이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노무현대통령의 중요한 정신인 ‘참여정치’, 이 역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민심을 보고 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참여정치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민심을 보고, 민심을 참여 시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들이 기억하는 것이지요 ''

정치는 신물나는 것이 아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은영은  노무현대통령에게 '국민을 위한 정치 열정'을 배운 것 같다고 했다.

이은영 전 행정관이 25년을 한 길로, 정치계에 쭉 몸을 담고 행정ㆍ 실무 보좌의 일을 해 올수 있던 원동력이 노무현대통령 이라면

정치계에 발을 디딘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1995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 복귀 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중앙당 공채1기로 정계 입문한 이은영은, 이후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 시키는데 미력한 힘을 보탰다.

1997년 DJ집권 후에는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행정실 심의위원과 고위당정협의회, 법안심사위 등 당론형성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청와대의 행정 실무를 해온 이은영이 잘 하는 일은 일단 행정실무라는건  명확하다. 현실 정치에 필요한 '백업' 역할을 하는 초선 여성정치인 기근인  민주당에 이은영의 그동안의 이력은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대통령 임기초부터 퇴임까지 행정관을 지냈고, 그 당시에도 여론조사 비서관, 청와대를 나와서도 여론조사 전문가, 지금 현재 문재인정부에서도 '국민소통특별위원' 을 하고있다.

'여론ㆍ민심 ㆍ소통'이 하나의 궤로 이은영의 이력을 말해준다. 

'문재인정부 국민소통위원'을 하면서 이은영이 하는 일은 주로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역민들과 공유'를 하는 것이었다.

'미래를 위한 준비작업을 하는 것'이 소통위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은영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년간 중점을  두고 추진했던 것이 남북관계 개선이었고, 이는 결국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문제이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고 소회했다.

지역주민과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한 고민과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은영은 과천에서만 12년을 거주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지역민들과 이야기하며 듣고 재정리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했어요'' 라고 말하며, 의왕과 과천의 삶의 질의 수준을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은 꿈도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교육환경ㆍ문화ㆍ생활체육 분야를 지금보다 더 높게 향상 시키고 싶구요.

방향성은 '미래사회에 대한 준비'로 설정하고 이는 항상 저의 화두이기도 해요.

특히 교육관련 해서 관심을 더 갖고 있고 환경변화가 크기 때문에  생활체육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중요 하다는것을 잘 알기에 먹고사는 문제 다음으로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것도 정치를 하는 이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은영은 노무현대통령에 얽힌 가장 힘들었던 일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단일화를 하던 시기의 일을 떠올린다. 당시 노무현후보 지지율이 다소 떨어지자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후보직에서 내려오라고 흔드는 세력에 맞서 당시 젊은 당직자들이 우리 후보 지켜내자고 성명서 발표를 냈다.

''언론에 나오지도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가만 있을수는 없었습니다.그런데 그날의 성명서 발표는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어요. 반란을 일으켜 보려했으나 움찔하고 말았던 거예요. 당시 성명서 문서, 사진 아무것도 기록으로 남은 것이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그다음 힘들었던 일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 했던 세력들로 인해서다.

그런데 탄핵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 많은 인파를 보며, 때로는 퇴근길에 그 인파 속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눈물을 삼켰던 일을 떠올린다.

노무현대통령의 ,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라는 어록을 되새기며 이은영은 민주주의 발전의 곳곳에는 시민들이 있었다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차별받지 않은 교육과 문화를 모두가 향유 할 수 있는 풍토 조성에 힘 쓰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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