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색 그 세련됨의 향연 펼치는 김명숙 작가
대학강단 내려와 다시미술공부...올해로 30년째 화업
삶이란 자신만의 무늬를 촘촘히 그려 가는 것

[뉴스프리존=편완식 기자] 한 시절 여성이라는 이름은 많은 것을 유보해야 하는 ‘대명사’였다. 많은 딸들과 어머니, 그리고 누이들은 그것을 숙명처럼 알고 살았다. 시대는 변하고 이제는 비켜두었던 꿈들을 하나 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비로서 자신들의 꿈을 펼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중장년 여성들의 이야기다. 김명숙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여자가 웬 환쟁이냐며 미술대학 지원을 극구 말리셨던 부모님,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방향을 틀어 교육학을 전공한 작가는 10여년간 대학강단에 선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어느순간 다시 붓을 잡게 됐고 드디어 미술대학에 입성하게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켜두었던 꿈 다시 펼쳐본다>

“저에겐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순간 모든 굴레들이 실타래처럼 풀려나간 느낌이었죠. 1960~70년대를 표현한 한국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절로 중얼거려졌습니다.”

그의 그림의 모토도 행복한 공간 구성이다. 드러나지 않고 조신했어야만 했던 상황을 중간색으로 차곡차곡 풀어내고 있다. 그런 층층의 에너지가 문뜩 세련됨의 향연으로 뿜어져 나왔다.

“꽃봉오리가 터져나오는 순간이랄까....제가 비로서 저에게 자유를 향유케 했노라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마치 한대수의 노래말처럼요”

작가는 이 대목에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음반으로 초대했다. 반항기 가득한 거친 음성이 작업실을 채운다. ‘장막을 걷어라/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접어드는 초저녁/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흘러 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고개 숙인 그대여/눈을 떠 봐요 귀도 또 기울이세/아침에 일어나면/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없이/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청춘과 유혹의 뒷 장 넘기며/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미술은 나의 장막을 걷어준 존재다 >

“사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성에 차지 않게 마련인가봐요. 제 그림의 중간톤은 그저그런 삶에 대한 예찬이지요. 생명 그 자체의 누림에 잘난사람 못난사람이 어디있나요. 산 다는 그 자체,생명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숭고한 것이지요. 예술은 그것을 환기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의 그림엔 주인공이 없다. 모든 대상과 배경조차도 허투른 것이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누구나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저는 그런 하나되는 조화로운 분위기를 회폭에 담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느낀대로 표현을 하지요.”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도 아침 저녁 으로 그림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창작의 과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위기로 변주돼 보는 이의 가슴에 다가서는 것이 작가의 목표다.

<인생에 정답은 없어도 명답은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각자의 명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삶이지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누구나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한다는 사실입이다.”

그는 때론 명답을 산과 바람에게도 물어본다. 자연은 오랜세월 사람들의 스승이 아니었던가.

“별과 바람만이 아는 것이 뭘까 생각해 보는 것이 저를 성찰케 만들지요. 이런 것들이 저의 창작의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고 나와야 비로서 새로운 것이 보이지요. 예술은 늘 ‘그 너머’를 보려하니 속성상 전위적일 수밖에 없지요. 늘상 물처럼 흘러가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도 전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즘도 밤이 이슥해서야 작업실을 나선다. 밤 11시,12시가 보통이다. 달성군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대구시내 집으로 돌아오는 40여분의 시간은 뿌듯함에 충만된 시간이다. 차속에서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행복 꾸리기를 이제사 해낸 기분이다.

같은 여성으로 늘 지원군이 돼주는 딸이 오랜만에 작업실을 찾았다.
같은 여성으로 늘 지원군이 돼주는 딸이 오랜만에 작업실을 찾았다.

<이제사 나의 이름을 찾았다>

”한동안 저는 한 남자의 아내,아이들의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 수 밖에 없었지요. 이제 아내의 가면,엄마의 가면을 벗고 김명숙이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아내,엄마의 길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든든한 후원자는 분명 남편이라 할 수 있다. 외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예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해 가는 모습을 가장 흐믓하게 생각하는 이도 남편이라고 한다.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라고 독려하는 이도 남편이지요. 이런 행복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작가가 행복감을 느끼고 그림을 그려야 작품에 행복의 기운이 담기게 된다고 확신한다. 작업량이 많아지면서 허리,어깨 등 성한곳이 없을 정도로 끙끙 앓으면서도 붓을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이기적인 것을 넘어선 이타적 작업이 된다는 믿음에서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그의 작품에 대해 ‘원색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색으로 통일함으로써 시각적인 자극이 없다. 모두가 중간색조로 통일된 색채이미지는 단정하면서도 단아한 절제미를 드러낸다. 짐짓 시선을 자극하는 원색의 순도와 채도를 낮추게 되니 꽃을 소재로 했음에도 감정반응이 억제될 정도다. 물론 중간색조로 통일된 색채이미지는 세련미로 이행한다. 자극이 없는 대신에 감정을 순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원색에 반응하는 격한 감정과는 달리 감정의 흐름을 편안하게 이끄는 까닭”이라고 평했다.

<사랑이 없으면 지상의 모든 신을 쫓아다녀도 죽은사람>

“인도의 성자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랑이 없으면 지상의 모든 신을 쫓아다녀도 그대는 죽은사람이라고 설파했어요.그런데 사랑과 함께라면 뜻대로 해도 갈등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런 사랑을 담을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미술입니다.”

김명숙 작가는 늘상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이 있다. 바람직한 일,해야 하는 일,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는가. 그래서 지금 바라는 일,하고 싶은 일,좋아 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는 요즘에서야 조금은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옛 그림의 조각배처럼 이상적인 세계로 항해케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앞으로의 제 과제도 그 오묘한 경지,형식 너머로 미묘한 향기가 넘쳐흐르는 세계에 닿은 것입니다. 형상은 다만 그 세계로 향하는 서곡일 뿐이지요.”

그의 작업실이 오늘도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뛰어난 화가라면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고심해야 하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야 비로서 미묘함을 얻을 수 있다는 되뇌임이 붓질로 승화되고 있는 풍경이다.

“예술은 감상자에게 여운이 있는 향기를 줘야 합니다. 님 떠난 자리의 여전한 내음처럼요. 그 길은 망막한 대지와 같지요. 누가 가르쳐 줄 수도 누가 간 길로도 갈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기에 예술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한 것이지요.”

그는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 즉 ’나‘로 살기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면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다. 삶이란 결국 자신만의 인생무늬를 그려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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