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베트' 커튼콜 사진 /ⓒAejin Kwoun
'자베트' 커튼콜 사진 /ⓒAejin Kwoun

[뉴스프리존=권애진 기자] 조금 난해할 수밖에 없는 철학으로 가득한 귄터 아이히의 세계를 꿈꾸는 듯한 동화의 세계로 펼쳐내는 연극 <자베트>는 매력적인 형식과 개성이 하나 가득한 배우들의 향연으로 관객들을 깊은 사유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모두를 이끌어내고 있는 김정 연출은 고연옥 작가의 창작극 “손님들”의 연출을 맡아 54회 동아연극상에서 신인연출상을 받으며 대학로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연출가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귄터 아이히의 또 다른 작품 ‘꿈’을 <꿈에>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그의 세계를 보다 쉽게 보여준 바 있다.

연극 <자베트>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한 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 이상 등장하는 장면도 많지 않다. 각기 한 사람씩 손과 발을 휘휘 내졌거나, 온 몸을 까딱거리는 동장을 반복하며 무대 전반에 걸쳐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공연 전이나 공연이 끝난 후 배우를 만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연출의 말이 이해가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 <자베트>는 각 배역이 가장 인상 깊어하는 대사 외에는, 김정 연출과 일문일답을 진행해 보았다.

근대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 귄터 아이히의 작품 <자베트>의 프로젝트내친김에의 무대작업은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극에 상당한 집중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쉽지 않을 이야기를 너무나도 놀라운 캐릭터 설정과 배우들의 쉽지 않았을 움직임, 긴장의 끈을 이어주게 만들던 음악 모두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작품의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부분과 작업과정들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자베트'를 연출한 김정 연출 /(제공=김정 연출)
'자베트'를 연출한 김정 연출 /(제공=김정 연출)

- 김정 연출 ; <자베트>라는 대본을 수년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말들과 문득문득 마음을 파고들어오는 철학적인 언어들이 이 작품의 매력이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 상에서 극 초반에 이어지는 동화적인 이미지와 드라마성이 후반부에 철학적인 선문답으로 종결되는 점이 무대화 시키는데 있어 늘 좌절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픈 이야기들보다는 지나치게 심오하다고 느꼈고 그런 점을 제가 그저 아는 척하고 넘어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업 역시 직관적으로 느끼는 이 작품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철학적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작품을 풀어내는데 있어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가진 배우들의 기량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배우들은 스스로 역할에 맞는 혹은 자신이 무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방식의 몸짓과 양식으로 캐릭터를 풀어냈습니다. 텍스트 역시 한 사람의 인물이 자신의 몸짓과 화법으로 환상을 풀어내는 방식이었으므로 개인의 매력과 동시에 개인이 버텨나가야 할 시간들을 충실히 수행해 내었고 동시에 관객들에게 배우 한 명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매력을 주었다고 감히 격려하고 싶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장면을 풀어내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히 흥미로웠고 꽤 짧은 시간 안에 양식적인 통일성을 찾아내어 장면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후반부에 자베트가 자신의 존재 나아가 존재라는 것 자체에 대한 질문 장면에서는 수없이 많은 접근 방법들과 해석, 텍스트의 각색을 해나가는 시간이 필요 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지금도 역시 그 장면에서 나열되는 단어들과 관념들을 완전히 해석해냈다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괴롭고 어려운 창작의 과정 끝에서 닿은 결론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자’ 이었습니다. 귄터 아이히의 철학에 닿지 못하더라도 박종태라는 배우가 무대에서 보낸 오랜 세월 그리고 살아온 세월 그리고 연출인 제 자신이 무대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들 혹은 존재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만큼만 내뱉자 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11회의 공연 동안 완전한 순간을 맛보았냐 하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지만 조금씩 그 이야기에 아주 조금씩 접근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고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4명의 배우들과 창작진들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다만 잊혀진 동화속의 이야기가 아닌 어린 시절 꿈꾸었던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환상으로 비춰지길 바랐습니다. 이성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한 시대이지만 지금이야 말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관객들이 무대를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고민들과 함께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 들어간 공이 어느 정도일지 가히 상상이 힘듭니다. 준비과정부터 공연까지 애정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듯한 작품 <자베트>에서 연출님과 배우님들이 가장 인상 깊다 여기는 대사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자베트 역 김종태 배우 /ⓒAejin Kwoun
자베트 역 김종태 배우 /ⓒAejin Kwoun
엘리자베트 역 김주희 배우 /ⓒAejin Kwoun
엘리자베트 역 김주희 배우 /ⓒAejin Kwoun
엄마 역 이미숙 배우 /ⓒAejin Kwoun
엄마 역 이미숙 배우 /ⓒAejin Kwoun
라이스키르헨의 교사 테레제 바이징어 역 최희진 배우 /ⓒAejin Kwoun
라이스키르헨의 교사 테레제 바이징어 역 최희진 배우 /ⓒAejin Kwoun

- 김정 연출 ; 저는 이 작품을 손에 쥐고부터 늘 자베트와 엘리자베트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떠올리며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커다란 새와 함께 끝도 없는 저 높은 곳을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추측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순간을 단순히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푸르고 어둡다. 너무 푸르고 너무 깜깜해서 눈이 부신다’는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그 말을 읊조리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곤 했습니다.

무대에서 그 순간을 표현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말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엘리자베트의 묶여있던 몸이 자베트로 인해 자유롭게 터져 나오고 그 좁은 혜화동1번지 공간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차도록, 배우는 몸짓으로 호흡으로 그 순간에 다가갔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배우의 눈에 가득한 빛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바로 그 순간 날갯짓은 멈추고 우리는 비로소 그 순간 속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한 단어 한 단어 뱉어냈을 때 ‘아, 내가 대본을 읽을 때 마다 꿈꾸었던 그 순간이 비로소 한자 한자 가득 찬 언어들로 살아났구나.’ 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연습을 해가며 한 문장 한 문장이 이러한 식으로 살아남을 느끼는 것도 이번 작업의 큰 묘미였습니다. 배우의 땀에, 눈물에, 기쁨을 가득 머금은 눈빛에 실려 문장들이 살아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연극무대에서 문학적인 언어, 옛 말로 취급받는 아름다운 언어들을 배우의 몸으로 빚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 팀이 연극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문장이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꼽긴 어려운 부분입니다.

매 작품마다 놀라운 집중을 하게 만드는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차기작도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차기작 활동 소식을 들려주세요.

- 프로젝트 내친김에 ; 4월초 서울시극단 창착플랫폼 공연인 이소연 작 <최후의 마녀가 우리의 생을 먹고 자라날 것이며>라는 공연을 계획 중입니다. 이 작품은 2년에 걸쳐 낭독공연을 하며 발전시킨 대본이구요. 자신을 마녀라고 믿는 한 소녀가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저주 같은 운명을 벗어나려 애쓰는 동화 같기도 성장극 같기도 한 작품입니다. 어떻게 나올지는 작업에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아서 기대가 되기도 하고 한 편 걱정되기도 합니다.(하하) 그리고 6월엔 작년 페스티벌 도쿄에서 선보인 마츠이 슈 작 <팜>이라는 공연을 올리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작년에 열심히 준비해서 10월에 도쿄에서 이틀간 3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우리 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된 작품이기도 하고 좀 더 자유로운 스타일이면서 신체적으로도 접근해보고 싶었던 방식으로 풀어낸 독특한 작품이라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한국에서의 공연을 고대해 왔는데 솔직히 여건이 잘 맞아지진 않고 있지만 팀 안에서는 힘을 모아서 어렵더라도 진행해보자고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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