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 일반을 경제적 불의나 분배 불평등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 사월의책. 304쪽. 1만7천원.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른바 ‘갈등 사회’라 불린다.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세대갈등, 남녀갈등, 빈부갈등 등도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개별적인 사회갈등에 대한 논의는 무수히 많지만, 불행히도 그러한 갈등들 간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사회철학적 시선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주로 논의되어 온 것 역시 좌우를 막론하고 경제 환원론적 분석에 불과했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 있긴 했지만 여러 갈등 중 분배갈등에만 치중하고 다른 갈등들은 부차화하는 데 머물렀던 것이다. 영어부터 한국사까지 온갖 자격증을 따도 취업의 문턱을 넘기는 너무 어렵다. 학력 때문에, 성별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가까스로 취업해도 정규직 전환이나 정시 퇴근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하기에, 자녀 교육비를 대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게 달리며 수많은 관문을 넘다 보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 나라에 살고 있는지 회의감이 밀려든다.

배제, 무시, 물화의 틀로 보는 한국사회의 양극화와 시장화

『배제, 무시, 물화』는 단순히 이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제시한 독창적 틀을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보는 책이기도 하다. 전반부에서 현대 사회 비판을 위한 이념과 전략을 탐구하고(1, 2장), 오늘날 동등한 자유의 실현을 억압하는 사회적 불의와 병리현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사회이론 차원에서 분석하고 해명한다면(3, 4장), 후반부인 5~8장은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불의와 병리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과 분석을 제시한다.

먼저 5장에서는 전반부에서 도출된 세 가지 틀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갈등 요인들을 범주화하고, 한국 사회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면서 일반적인 범주로 포착하기 어려운 이념갈등 및 지역갈등 요인을 추가적으로 고려한다. 6장과 7장에서는 이러한 전체적 상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시장화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구체적 갈등 양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특히 6장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분배 환원론적이거나 인정 환원론적인 양극화 분석이 모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많은 분석들은 분배 환원론적 분석에 치우쳐 있으나, 이는 양극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고유한 인정-무시 질서를 파악하는 데서 실패한다. 그 때문에 현상 파악은 물론 대안 제시에 있어서도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선별급식 같은 데서 볼 수 있듯이, 특정 집단에 대한 재분배 정책은 오히려 사회적 낙인을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분배와 인정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다차원적인 정의론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역설한다.

7장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의 그림자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에 대해 ‘기업사회’나 ‘시장전체주의’ 같은 식의 진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물화 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가 시민들의 자유로운 삶을 침탈하는 상황이 강화되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저항 역시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물화 현상과 새로운 저항 간의 관계 파악이나 물화에 의한 삶의 황폐화 및 속물화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실정이다. 저자는 물화의 효과가 인간의 내적 욕망은 물론 사회관계 전반에 대해서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물화 문제에 대한 더 많은 담론이 형성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8장은 앞의 논의들에 기초하여 오늘날 요구되는 대안적 실천의 방향과 과제들을 제시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결국 배제, 무시, 물화와 같은 사회적 불의와 병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정치의 심화와 확장이 필수적인 과제이다. 사회생활 전반에서 민주적 삶의 방식이 구현될 때에만 배제, 무시, 물화의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 불의와 병리현상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의 강화는 상호보완적 과정이며, 이러한 상호 이해 및 협력을 위해서도 공통의 ‘틀’을 통해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사회철학적 관점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책속으로

사회비판의 이념은 결국 ‘동등한 자유’의 실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은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위하며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식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들이 사회적 존재인 한에서 그들의 권리는 언제나 동등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이념은 앞서 언급한 약한 인간학적 전제에 입각한 절차주의라는 규범 정당화 방식 자체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합리적 논증은 ‘자유’로운 주체들의 ‘동등한’ 권리를 전제로 해서만 비로소 작동할 수 있으며, 모든 규범은 이러한 상태에서의 상호이해 혹은 동의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규범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쪽)

현시적 사회비판은 물화된 현재의 삶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고 불행한 것인지, 즉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고 있는지를 폭로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부자유한 삶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태도와 삶의 방식의 가능성 역시 예시해 줄 수 있다. 물화된 삶을 넘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구상하고 제시한다는 것은 단지 절차주의적인 정의를 넘어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좋은 삶의 이상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 정의 담론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과제다. (70쪽)

사회갈등 일반을 경제적 불의나 분배 불평등 문제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호네트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생활세계 내부에는 고유한 인정-무시 질서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무시와 그에 대한 저항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무시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동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회적 불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 상황에서 경제적 불의와 무시가 중첩되어 나타나기 쉽지만, 그렇다고 무시가 곧바로 경제적 불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105쪽)

물화된 사회관계는 물화된 인간을 만들어 낸다. 물론 물화된 인간이 물화된 사회관계를 재생산하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타인을 도구화하고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결국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고 지배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이러한 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도구화하고 지배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151쪽)

배제, 무시, 물화에 대한 모든 사회적 저항이 목표로 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삶의 전반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요구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표출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 스스로의 자율적인 삶을 향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넓은 의미의 정치공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경우 제도적인 정치공간의 왜곡이 이러한 사회갈등들을 순치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252쪽)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의 역사

이처럼 이 책은 경제적 배제, 문화적 무시, 삶의 물화라는 세 가지 거시적 틀을 통해 다양한 사회갈등을 유형화한다(116쪽 참조). 그렇다면 다양한 사회적 불의와 병리현상을 배제, 무시, 물화라는 틀로 구분하는 것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이러한 구분은 서로 환원되지 않는 다층적인 사회갈등 영역을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분석할 틀을 제시하기에 앞서 마르크스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참조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것이 물질의 파생물이라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취하며 물질로 구성된 사회적 토대가 정신, 이념, 철학 등의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사회 내에 서로 다른 정도의 부를 가진, 따라서 서로 다른 정신을 가진 계급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이러한 세계관에서 많은 부가 특정 계급에 집중된다는 점을 경제적 분배의 문제로 읽어낸다. 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유일하게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노동가치설을 원리로 노동의 가치를 착취하는 자본가를 비판했다. 이 비판은 노동자 계급에게 자본주의를 끝내고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경제 환원론적 분석이 지배적인 현실은 지금까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정-무시 문제를 등한시하고 부차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문화적 무시 문제는 경제적 배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사회적 인정 없이는 배제와 불평등 또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 의해 계승됐다. 저자는 수많은 비판이론 학자 중에서도 먼저 2세대 학자인 하버마스의 이론을 차용하는데, 그에 따르면 하버마스는 우리의 세계를 문화, 사회, 인격으로 구성된 ‘생활세계’와 경제, 정치로 구성된 ‘체계’로 구분한다. 점차 사회적 근대화가 이뤄지면서 권력을 매개로 하는 공공행정영역과 화폐를 매개로 하는 현실에서 시장질서와 같은 ‘체계’의 영역이 발전했다. 이에 따라 ‘체계’의 영역에 속하는 권력이나 화폐가 생활세계에까지 침투해 ‘생활세계 식민화’를 야기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주장이다. 이때 생활세계 내의 규칙인 상호 이해를 위한 의사소통이 체계 논리에 의해 침식되면서 생활 세계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나아가 이는 개인 간의 의사소통이 모두 권력과 화폐로 대체되고 생활세계 자체가 수량화, 물질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해석에 이른다.

이어서 저자는 3세대 학자인 호네트가 하버마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세계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분석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호네트는 어떤 인간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 때,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 때문에 지위 향상에 대한 요구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때 사회의 주류로부터 무시당하던 하위 계층의 이러한 요구는 필연적으로 사회갈등으로 번진다. 호네트에 따르면 하버마스가 지적한 외부로부터의 침투가 아니더라도 생활세계 내부에 이미 사회갈등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를 비추는 세 가지 시선

책의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이론들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이미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각각을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문제의 원인을 모두 경제적으로 치환하는 마르크스주의가 문화적,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현대사회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이에 따라 저자는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이론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해 자신만의 분석 틀을 만들었다. 책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통해서 경제적 배제를, 호네트의 인정-무시 질서를 통해서 문화적 무시를, 그리고 하버마스의 생활세계 식민화를 통해 삶의 물화를 짚어낸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청년 실업률 10%대를 웃돌며 취업, 결혼, 육아 등을 포기해버린 일명 ‘n포 세대’가 많다. 저자가 사용하는 경제적 배제란 개념은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반영한다. 이것의 바탕이 된 마르크스주의도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며 충분한 부의 분배를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의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경쟁에서 뒤처지면 착취당할 기회조차 상실한다고 지적한다. 취업을 포기해버리고 경제체계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취업포기자가 이런 상황에 해당한다.

한편 문화적 무시는 어떤 사회 구성원이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인정을 박탈당하는 경우를 뜻한다. 저자는 모든 문화가 그 내부에 우월성과 저열성, 정상과 비정상, 우리와 그들의 구별을 지닌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저열, 비정상, 그들의 범주에 속했던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이주자들은 문화적 무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호네트의 주장을 빌어 저자는 무시당하는 자들이 인정받고자 동등한 문화적 지위를 요구함에 따라 기득권과의 마찰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택배차 거부 아파트’ 사건도 문화적 무시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단지 내 택배 차량 진입은 금지하면서도 바로 집 앞까지 택배를 배달하라고 요구한 아파트가 얼마 전 온라인상에 알려졌다. 당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배차와 관련해 안전 문제가 대두됐는데, 주민들은 별도의 협의 없이 택배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규정을 통보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일련의 논란 속에서 무의식에 서린 육체적 노동자에 대한 무시와 그에 대한 반발심이 만나 사회갈등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저자는 이러한 경제 영역과 문화 영역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삶 전반의 물화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질서와 근대국가의 행정 체계가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면서 하버마스가 주장한 생활세계 식민화가 야기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삶 대부분이 숫자와 규정으로 치환되는 물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침투하면서 이 사회는 왜곡된 욕망 구조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세계와 타인,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여기며 경제적 목표만을 향해 달려나간다. 결국, 모든 것이 도구화된 삶 속에서 개개인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물화를 겪는다.

 ‘탈조선’의 무기력에 도전하다

이와 같이 한국사회를 세 개의 시선으로 분석한 저자는 이 관점들이 구분되는 동시에 중첩돼 서로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저자는 배제와 무시의 결합이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공고히 한다고 서술한다. 예컨대 여성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 평가는 여성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게 하며 저임금을 받는 여성은 재차 무시당한다. 학력, 학벌,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단순한 문화적 차별에서 그치지 않고 부당한 분배 문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한국사회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근대사회에 경쟁 이데올로기가 전 지구적으로 사회 전체를 이끌면서 문화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교육의 영역이 물화되면서 배움에조차 값이 매겨졌다. 이를테면 주요 과목 학원, 과외는 물론이고 이제는 한 시간에 몇십만 원에 이르는 대학입시 컨설팅까지 등장했다. 이미 무시의 대상이었던 빈곤층은 그러한 교육 상품을 구매할 수 없기에 자연스레 교육의 혜택을 더 적게 받고, 이는 저학력인 빈곤층을 양산해 또다시 그들이 무시당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배제,무시, 물화라는 세 가지 요소 간의 상호 작용을 염두에 두고 사회 현상을 복합적으로 분석할 때 제대로 한국사회의 문제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분석이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 문화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는 물화 현상이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저자가 어렵사리 새로운 분석 틀을 만들었지만 거기서 비롯된 분석은 익히 알던 사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또 책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한 갈등 해결, 참여하는 정치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원론적이라서 해결책으로는 불충분하다. 책에서 배제, 무시, 물화가 각각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 강조된 만큼 이에 초점을 맞춰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면 논의의 의미가 더 확장될 것이다.

개선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서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보다는 그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탈(脫)조선’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저자는 근대 철학사에서 제시된 여러 사회 이론을 재구성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종합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사회 곳곳에 흩어져있던 문제들을 한데 모아 그 관계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는 무기력에 침잠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하나의 시도로서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 점차 사그라지는 현시점에서 『배제, 무시, 물화』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조망해보는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이 책 『배제, 무시, 물화』는 이런 협소한 시각과 환원론적 견해를 넘어 다양한 갈등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가지 틀은 독창적이면서도 명쾌하다. 1)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그러한 경제적 관계로부터 ‘배제’된 실업자, 소수자들을 고려하는 적극적 시각이 필요하다. 2)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이 잘 보여준 것처럼 경제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적 ‘인정-무시’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3) 시장화되는 삶, 증대하는 환경 문제 등 경제적 배제나 문화적 무시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없는 삶의 ‘물화’(物化)와 병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붙던 대한민국은 이제 ‘헬조선’이 돼버렸다. ‘헬조선’이란 지옥을 뜻하는 단어 헬(Hell)과 조선왕조의 조선을 결합한 신조어로 온라인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자신의 나라를 지옥에 비유하는 오늘날 한국사회는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원식 박사는 저서 『배제, 무시, 물화』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부조리와 병리 현상을 분석하기에 알맞은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진단해 처방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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