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 칼럼] 춘풍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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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춘풍추상
  • 김덕권
  • 승인 2017.08.0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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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추상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은 명대(明代)의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채근담>을 지은 홍자성은 1600년대 전후 중국 명나라 신종대의 사람으로,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고 경력이나 인물됨에 대해서도 알려 진바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환초도인(還初道人)’이라 불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채근담>에 나오는 이 <춘풍추상>이라는 말의 ‘춘풍(春風)’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는 말이고, ‘추상(秋霜)’은 가을 서릿발처럼 매섭고 엄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원문을 보면「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으로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春風)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 입니다.

이와 같이 남의 과오는 마땅히 용서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생각이 너그럽고 두터운 사람은 봄바람이 만물을 따뜻하게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생령(生靈)이 봄바람을 만나면 살아납니다. 그러나 생각이 각박하고 냉혹한 사람은 찬 서리에 모든 것을 얼게 함과 같아서 만물이 이를 만나면 곧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내면에 존재하는 무형의 잣대를 사용합니다. 선악(善惡). 미추(美醜), 시비(是非) 등의 판단이 그렇게 내려지지요. 자(尺)는 어떤 대상의 길이를 잴 때 쓰는 도구입니다. 당연히 그 대상의 크기나 모양이나 외부환경 등과 무관하게 눈금의 간격이 늘 일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의 눈금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면의 잣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의 잣대를 한 결 같이 유지하고 적용하기란 실제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경향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내가 한 잘못은 용서가 되고, 남의 잘못은 그가 몰지각한 인간이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됩니다. 내가 침묵하면 깊이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내가 화내는 것은 주관이 분명해서이고, 남이 화내는 건 성격이 더러워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내면의 잣대를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늘였다 줄였다 하기 쉬운 법입니다.

그래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을 얼마나 공평무사한 잣대로 판단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성숙함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묵자(墨子)>는 ‘친사 편’에서 “군자는 스스로 어려운 일을 떠맡고 남에게는 쉬운 일을 하게 하지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동양의 전통은 공평무사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경지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군자의 덕목으로 꼽아 온 것입니다.

조선시대 왕은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봉서, 사목, 마패, 유척’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尺)입니다. 암행어사는 각 고을의 도량형(度量衡)과 형구(刑具) 규격을 검사하기 위해 유척 2개를 지녔습니다. 탐관(貪官)이 백성에게 엉터리 도량형을 써서 세금을 많이 거둬 나라에는 정해진 양만 바치고 나머지를 챙기는 부정부패를 단속한 것이지요. 이처럼 길이, 부피, 무게 기준을 의미하는 도량형은 국가를 지탱하는 근간이었습니다.

대인관계에도 이중 잣대는 갈등을 야기(惹起)합니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분법적으로 재기 때문입니다. SNS가 발달 된 현대사회는 익명이 판을 치고 독선과 오만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거의 무장돼 있습니다. 주관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재단하게 마련입니다. 타인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신은 의도가 훌륭하다면 쉽게 자신을 용서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일이라 합니다. 우리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요? 모든 일은 <네 덕>이며 <내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이며 관계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하더라도 이 집착과 고통의 근원을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건 딱 두 가지 뿐입니다.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잘났다는 아상(我相)과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옳다는 분별 심(分別心)입니다.

우리 아상과 분별 심을 일단 저 멀리 던져 놔버리고 그냥 “제 탓입니다.”라고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그래도 저 사람의 잘못이 더 큰데,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하는 등등의 반발하는 생각이 마음 안에서 치고 오를 것입니다. 그래도 상황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한번 지켜보시지요. 내가 옳다는 상황을 설명하려 말고, 내가 이렇게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마디 하고 그냥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이게 쉽게 되질 않으실 겁니다. 내 잘났다는 아상과 내가 더 옳다는 분별심이 우리의 마음 안에 오랜 시간동안 자리 잡은 탓입니다. 그래도 이를 계속해서 반복해 <제 탓>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하면, 상대방의 잔소리도 점차 줄어들고 내 마음안의 분별심도 서서히 잦아들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 덕이고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이 말이 익어 가면 그때부턴 내가 이런저런 잘못을 해도 이전 같으면 나를 공격하려던 사람도 그냥 별말 없이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히 익게 되면 <네 덕, 내 탓>이라는 말을 하게 될 때마다 이상하게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덕산 김덕권 칼럼니스트

그땐 나만 즐겁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변해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맑고 밝고 훈훈한 곳이며, 나날이 좋은 날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고 마음공부인 것입니다.

춘풍추상! 이제 남의 결함을 들추어내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결함을 속속들이 찾아내야 합니다. 대인관계에서 우리가 당장에 이겼다할지라도 교만하고 방심하면 다음에는 질 것이요, 당장에는 졌다할지라도 겸손하며 분발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는 것입니다. 남에게는 봄바람 같이 내게는 서릿발 같이 마음을 닦아 가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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