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02/22 20시 기준

한국 확진자 433

한국 퇴원자 18

중국 확진자 77,922

중국 사망자 2,361

  • 네이버포스트
  • 네이버tv
  • 다음카페
  • 네이버회원가입
“ 무소용의 '공간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스트빌리지 미술’ 정신 내 예술의 뿌리”
상태바
“ 무소용의 '공간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스트빌리지 미술’ 정신 내 예술의 뿌리”
뉴욕, 히말라야,한국을  오가며 유목적 삶 살아온 최동열 작가...소용은 무소용에서 나와

  29일까지 열리는 인터아트채널 전시서  당시 함께했던 이스트빌리지 작가 작품도 선보여 
 
  • 편완식 기자 (미술전문기자)
  • 승인 2020.02.08 1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묘인근 작업실에서 작업중인 최동열 작가. 그는" 근처에 봉제공장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청년기를 보냈던 이스트빌리지 분위기를  연상시칸다"며 좋아했다.

[뉴스프리존= 편완식 기자]10여년전 그를 만난 것은 경기도 이천에서다. 지인의 집을 빌려 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히말라야로 떠났다. 얼마후 그가 대구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동묘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는 사실은 최신 소식이다. 언제나 처럼 아마도 떠도는 삶 속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일게다. 화가 최동열(69)을 그렇게 다시 마주하게 됐다. 긴 여로를 끝낸 여행자의 모습일까. 아니라면 영원한 보헤미안 같은 방랑자일까. 그를 만날때마다 늘 자문하게 된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 그가 들려주었던  이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문학 지망생이었던 그는 수재들의 코스였던 경기중학에 입성을 하게 된다. 규격화된 성공코스에 떠밀려진 것이다. 하지만 경기고 진학에 실패하면서 그는 ‘사회의 규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검정고시를 거쳐 15세 나이로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했지만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해병대에 자원,베트남전에 첩보대원으로 참전했다. 새로움과 삶의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해병 첩보부대(HID)에 근무하면서 그는 전쟁의 비인간성을 몸으로 읽는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옮겨졌다. 뉴저지 주립대 생활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조숙한 그에게 대학은 어리기만 했다. 클럽의 기도, 술집 웨이터, 공장 일 등이 그의 배움터가 됐다. 22살짜리 미국 유학생은 유도와 태권도 사범까지 하며 강단있게 지내며 술과 마약에 빠져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고스란히 글과 통찰의 결과물이 됐다. 자서전 ‘들개와 선임하사’를 증보한 ‘돌아온 회전 목마’와 미학을 논한 ‘아름다움은 왜’라는 책들이 생산물들이다.

 글쟁이를 꿈꿔던 그는 어느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배경이 됐던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의 풍광에 매료된  무작정 그곳으로 떠났다. 1977년 뉴올리언스에서 회가인 지금의 아내 엘디(L.D.로렌스)를 만나게 된다. 재즈의 고장인 뉴올리언스는 문학적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간 한국청년에게 오히려 화필을 들게 만든 인연이 됐다.

“아내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와 있었지요. 시내 카페에서 그림을 걸고 있어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졌어요.”
서로는 단번에 대화상대가 됨을 알아차리고 가깝게 지내면서 멕시코 등지로 스케치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그림이 글보다 자유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지요.” 텍사스 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아내의 동료들과의 교류가 큰 자양분이 됐다.

결혼 후 외동딸이 생기면서 뉴욕을 떠나 워싱턴주 올림픽반도로 거처를 옮겼다. 아이에게 인공적 정원이나 공원이 아니라 자연을 친구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미국 작업실은 밤바다의 안개가 특히 운치가 있어요. 코요테의 울음소리에 잠이 들고 하늘가득 별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서너 시간씩 강을 걸으며 연어낚시를 해도 사람은 만날 수 없어 새를 벗삼아야 할 정도지요. 생각할 시간은 많으나 역설적으로 그것을 소화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자신이 화가라는 인식까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그에게 이런 것들을 허락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산수의 디테일한 맛이 오히려 톡 쏘는 청량제 구실을 하지요.”

그에게 머무는 곳은 모두가 작업공간이 된다. 미국에선 작업실 주변에 라벤더를 재배해 다양한 색깔의 염료를 만들어 썼다. 허브식물이라 아내는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식물을 재배하는 것도 삶처럼 과정이 중요하지요. 농사는 작가에게 창조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제격입니다.”

예술을 하려면 전쟁터에 나가 보거나, 감옥생활과 애키우기 중에 적어도 하나는 해 봐야 한다는 통설에 작가는 동의한다. 농사는 애 키우기와 같단다.

멕시코에선 마야족과 생활을 같이했고 이천에서도 예술가의 이름이 아닌 음식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주민으로 흡수된 삶을 살고 있다. 멕시코의 원시적 강렬함과 이천 도자기의 멋이 소득으로 얻어졌다.

“이천생활은 청자와 백자의 이미지로 한국산수를 읽어내는 안목을 허락했습니다. 비로소 제대로 한국산수를 그리게 된 것이지요. 어려운 정물과 산수의 조화도 가능해졌어요.”

밖에서 안을 보는 동양화의 전형적 구도도 안에서 밖을 보는 구도와 조화를 시켰다. 안과 밖의 하모니를 이룬 것이다. 한국산수와 누드의 조합도 시도했다.

상체만 드러낸 이인성의 ‘어느 가을날’을 한국누드화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는 작가는 수동적인 근대공간에서 문학과 미술 모두 근대성이 싹트자마자 현대의 격랑에 휩쓸린 것을 못내 아쉬워 한다. 능동적인 근대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로 대표되는 19세기 문학처럼 인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치열했던 적은 없었지요. 미술도 사정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탐색기도 없이 현대의 비구상에 덮친 한국근대미술의 처지는 처량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등 모습만 보인 작가의 누드작품은 근대성 성취의 첫 걸음이다. 등과 어깨로 이어지는 라인이 한국적 누드를 고한다. 거기엔 수줍음보다 당당함이 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멕시코 유카탄 정글지대과 미국 서북부 지역, 중국 우루무치, 티베트, 네팔 등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씩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이번에도 그에게 왜 떠도는지 짓굳게 다시 물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겹도록 던진 질문이다.

“인간이 정착을 한 건 떠돌던 기간에 비해 매우 짧습니다. 북방민족인 우리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긴 역사에서 보면 인류는 떠도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할 때도 대강 목적지만 정한다. 비행장에서 내려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어느 길로 갈지는 늘 유동적이다,

“모든 것을 예약을 하면 왠지 저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져요. 물론 생전 처음 다다르는 곳에서 모든 것을 정하자면 황당하고 두렵기도 하지요. 하지만 안개 너머의 풍경을 기대하는 것 같은 가슴의 설렘이 있어요” 

 히말라야 트랙킹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지에 도착해 같이 갈 가이드, 야크, 조랑말, 포터 등을 닷새 걸려 구했다.

“우리 인생도 미리 정해진 것이 없잖아요. 예약 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할까요.”

한달 식량을 등에 진 조랑말 두마리가 눈 쌓인 계곡에서 100m 아래 강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모든 식량이 물에 젖었지만 다행히 말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4500m 고지에서 식량을 널어 말리느라 3일을 고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주위의 만년설 덮인 설산을 그렸다.

율리시스가 트로이 전쟁 후 그리스의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그린 호머의 오디세이에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인 님블(nimble)이 자주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 접했을때 적응하는 마음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동작이 민첩하고 생각이 날렵함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볍고 생각이 비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짐이 없고 고정관념이 없어야 된다는 얘기다.

“인간이 집을 짓고 정착하기 전에는 새로운 곳에서 언제나 움직이는 삶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피느라 언제나 님블해야 했을 겁니다.” 사실 율리시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긴 여로로서 하나의 삶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

“정착이 불규칙한 자연에서의 분리라 한다면, 움직이는 삶은 불규칙한 자연속에서 쉬는 리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착에 안정감을, 떠도는 삶에선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무서움을 받아들일 때 힘과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이것이 예술의 출발점이라 했다.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같은 곳에 한 번 가 보십시요. 짐승들은 먹고 먹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놀고 여유를 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촉감이 열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자연에서 분리된 인간은 이런 긴장감 마저도 스릴이라 부르며 하나의 오락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가 정한 스케줄 없이 떠도는 삶을 선택한 것은 그의 촉감을 열기 위한 과정이다.

“떠도는 삶에선 내일과 어제도 희미하고 그저 새 환경이 연달아 나타나는 지금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몇달 떠돌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는 가끔 밤에 깨어 지금 여기 침대가 어디인지 모르는 공포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직 오늘로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서이지요.”

오지에서 그의 작품은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한다. 몸은 와 있어도 마음은 아직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시간이 끊겨진 공간에서다.

“상상하지 못한 묘한 시간이지요. 아니 시간이 얼어 붙은 공간입니다. 원초적 공간이 이럴 것입니다. 영원이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이라 할 수 있지요.”

그에게는 극한상황이 두려움이 아닌 쉼이 되고 그림이 된다. 산을 신으로 섬기는 원주민들은 그에겐 산의 정기를 터득케 해주는 스승이다.

스스로를 홈리스라고 칭할 정도로 고정적으로 사는 집이 없는 최동열 작가. 그는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낯선 지역에서 장기간 머물며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어느 순간 히말라야에 오를 때 갑자기 집에 온 느낌을 받았어요. 진정한 휴식이 된 것이지요.”

원초적인 공간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 좀처럼 그것을 쉽게 느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르네상스시대 무역으로 온 세상들이 연결되어 모르는 곳들이 사라지고 모든 곳이 단지 신기함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그렇게 됐습니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회가 고립이 되어 저 숲 속은 모른다는 개념이 있었고, 매일 숲속을 들어갈 때는 강렬한 긴장감이 형성되었지요. 무역과 소통의 열린 르네상스에서는 모든것을 다 알 수 있다는 호기심만 더 강렬해졌습니다.”

모든 스케줄이 잡힌 관광객으로의 여행은 르네상스 같이 벌써 많이 알고 호기심으로 하게 되지만, 그가 아무 계획 없이 하는 떠돎은 중세시대 처럼 모른다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인터넷시대의 21세기는 태도상 다 아는 르네상스시대와 흡사하다.

“20세기나 중세시대에는 모르는 곳이 많아 깊이 생각하며, 모르는 곳과 대상을 대하는 두려움과 깊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모르는 상황에 처하면 온몸의 세포가 열릴 자세가 되었지요.이것이 매일 일어나는 일이 되고 습관이 되면서 인간의 행동력이 됐어요.”

그는 온 몸의 세포가 열리는 원초적 공간을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에겐 사랑놀이 같은 희열이다. 그가 50년 가까이 보헤미안으로 사는 이유다. 최근에는 ‘미술 한류’를 개척하기 위한 아트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인생을 이미 만들어지고 결정된 대로 사는 것은 재미가 없어요. 삶이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어야 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유복한 집안 배경을 마다한 이유다. 국내 1호 변호사로 독립선언 33인을 변호했던 최진씨가 조부이고 철원 유지집안 출신의 조모는 소설가 나도향의 친누님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바로 ‘인사동 누님’이다. 부친은 국내 첫 슬롯머신을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동열은 30대 때인 1980년대 중반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미국 화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이스트빌리지는 마약과 범죄로 퇴락해 가는 동네였다. 하지만  임차료가 저렴하고 빈 건물이 많아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새롭게, 자유롭게, 그리고 거침없이’는  슬럼화된 이스트빌리지에 모여든 예술가들의 시대감성이었다. ‘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키스 해링은  낙서화로 주목받았고, 데이비드 워나로위츠는 행위예술로 이름을 날렸다. 최 작가도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했다. 이제 그는 그 ‘반항의 유목지’에서 배양된 것들로  21세기 현대인의 심리적 강박감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성과물들이 서울 경리단길에 위치한 갤러리 인터아트채널에서 29일까지 선보인다  기획전 ‘최동열과 이스트빌리지 친구들’을 통해서다. ‘노마딕 라이프 인 뉴욕(Nomadic Life in NY)’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40년간 작업한 유화, 밀랍, 도자기, 드로잉 등 40여 점을 펼쳐 보인다.  이스트빌리지에서 함께 활동한 크래시, 데이즈, 마샤 쿠퍼, 제임스 롬버거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작가는 오늘도 잠에서 깨어나 커피향에 취해  그림을 그린다.  그린 그림을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이제사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의 마음을 알 것 만 같다.

정치핫이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