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새벽,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모처럼 마음의 풍요를 만끽하던 추석 연휴의 한 가운데 발생한 일이었다. 화마(火魔)는 주거용 비닐하우스 30여개동을 태우고서야 가까스로 진화됐다.

마을 주민 이상희(52) 씨는 분개한 목소리로 그 날의 정황을 전했다. “새벽 3시 반에 갑자기 자다가 튀어나왔는데 전화기가 있나, 뭐가 있나. 그야말로 맨 몸뚱이 하나만 챙겨서 나온 거야. 소방차가 오긴 왔는데, 불을 안 끄더라고. 사람들이 잔뜩 와서는 물이 없다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어. 아, 냅둬라, 그냥 다 타게 놔 두는게 낫다, 이러면서.”

화마(火魔)가 송두리째 앗아간 비닐하우스촌의 삶

겨울을 앞둔 화훼마을은 스산했다. 한 쪽에는 목재를 옮기고 망치질을 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편의 공터에는 자갈과 잿더미만이 남아 참혹했던 화재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 씨는 화재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건비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서 목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무로 집을 짓는데 300여만원이 드는데 이게 다 빚이야. 전기도 각자 끌어와야 하는데, 이게 한 집에 한 30만원 들고. 근데 이 정도 돈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기, 천막에서 살 수밖에 없어.” 마을 한 구석에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천막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갈 곳 없는 우리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현재 213여세대 9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장지동 화훼마을은 송파구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1980년대, 철거민들이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살면서 형성된 주거지역이다. 91년과 99년 큰 화재가 난 뒤 이 곳은 판자촌으로 재구성됐다. 2001년 행정자치부에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화훼마을은 오랜 주거권 운동 끝에 가까스로 주소를 갖게 됐다.

그러나 마을이 형성된 곳은 토지 주인이 버젓이 존재하는 사유지였다. 주민들이 탄원서를 써서 겨우 버티고 있던 이 곳이 정식 주소지로 인정된 후, 지가 상승을 노린 투기꾼들의 관심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현재 자신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는 용역깡패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임자가 따로 있다는 거야 알지, 누가 좋아서 여기 살고 있는 줄 알아? 근데 어쩌겠어. 당장 길가에 나앉게 생겼는데, 버텨야지. 죽지 못해 사는 거야.”

주로 장애인과 노인들로 구성된 이 곳의 주민들은 잦은 화재와 열악한 주거 상황으로 인해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 10월의 화재 이후, 1명의 주민이 사고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많은 아이들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뇌 관련 장애 3급을 판정 받았다는 남순연(60) 씨는 기자를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송파구청에서 간이 화장실 몇 개를 설치했으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오물 처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도시 빈민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당신들의 울타리

송파구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화훼마을은 일단 사유지이기 때문에 구청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송파구는 미관상의 이유로 마을 주위에 아름답게 채색된 울타리를 둘러 쳐 놓았다. 장지동 화훼마을은 외부에서 알아볼 수 없도록 철저히 단절되고 고립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건 오색의 무지개와 ‘자랑스런 송파, 이제는 내가 주인입니다’라는 당당한 슬로건이 새겨진 울타리뿐이다.

“토지 주인이 2달의 기한을 줬는데, 사실 막막하지.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이야. 학생, 우리 좀 제발 살려달라고. 여기 우리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줘. 제발.” 겨울이 오는 길목, 송파구 외곽의 흰 울타리 너머에 ‘분명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척박하디 척박한 그 곳에도 애써 꿈틀거리려는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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