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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사는세상] 택시운전사의 영화는 용기있는 사람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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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사는세상] 택시운전사의 영화는 용기있는 사람이야기다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7.08.1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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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취재 당시의 위르겐 힌츠페터와,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영화 <택시 운전사> 속 힌츠페터.ⓒ 위르겐 힌츠페터/쇼박스

“그건 폭력이 아니라 살인이었어요.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겁니다. 그날 광주 곳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영화 <택시운전사>는 철저히 ‘외부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투덜거리던, 서울의 평범한 택시기사의 눈으로 본 광주의 이야기다. 장훈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면서 “광주에 살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을 만섭이 대변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외부인의 시선’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월 광주를 왜곡하는 현실로 인해 여전히 유효한 장치로 기능한다. 장훈 감독 역시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가 작은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0년 5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도 망각보다 위험한 ‘왜곡’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훈명씨는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5·18 기념사를 보면서 온 가족이 울음을 터트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그만큼 진실은 오랫동안 은폐되고 왜곡됐으며, 그래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가 5월 광주였다.

5.18 광주를 다룬 영화 26년은 직접 광주를 다뤘다면, <택시운전사>는 여타 다른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와는 달리 외지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가령 <화려한 휴가>의 경우 주인공 강민우(김상경 분)는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이며 진압군에 맞서는 광주 시민이었다. <26년>의 경우 주인공은 광주 희생자의 자식들이었다. <박하사탕>은 주인공 영호는 과거 광주 진압군이었고, <꽃잎>에서 소녀는 5.18 광주의 피해자였다. 이를테면 기존의 5.18 영화는 지식인들의 자기 죄의식이 담긴 영화였고, 관객들은 영화 내에서 5.18 사건과 1:1의 관계를 맺어야만 했다.

▲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왼쪽부터) 장훈명, 이행기씨를 8월 2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5·18 구속부상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의 두 주인공은 모두 외지인이다. 한 명은 국적마저 한국이 아니었다. 이들은 5.18에 직접적인 가담을 하는 것도 아닌 한 발 떨어져 기록해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긴 걱정 마시고~"라는 황태술의 대사에서 영화는 두 주인공은 다른 조연들과 선긋기를 한다. <화려한 휴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행위가 가족과 이웃을 지키는 행위와 등치된다면 <택시운전사>는 이 둘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 백미인 서울과 광주의 이정표 앞 '제3한강대교'를 부르는 만석의 내적갈등은 다른 5.18 영화에선 다룰 수 없는 것이었다.영화는 서울의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라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광주의 참상을 다루지만, 광주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조력했던 영화 속 ‘조연’들은 실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끈 항쟁의 ‘주연’들이었다. 생계의 전부인 택시를 무기 삼아 “정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 1980년 5월 광주의 택시운전사들이다.

1980년 5월 18일이 어느덧 37년 전 이야기가 됐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 5.18은 '제창'과 '합창' 같은 복잡한 함수가 돼버렸고 대중은 '굳이 복잡한' 문제를 고민하는데 지쳐버렸다. 인터넷에선 5.18이 조롱의 대상이 됐고 이를 지적하면 '씹선비'나 '진지충'이 돼버렸다. 이전과 똑같이 5월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세대인 것이다. 이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딸과 광주에 두고 온 손님이란 저울질이 관객들에게 크게 공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노한 택시운전사들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됐고, M16 소총에 착검까지 한 공수들이 마치 ‘살인면허’라도 받은 듯 거리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구타했다. 계엄군은 부상자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발견하면, 차를 세워 또다시 부상자와 운전사를 때리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계엄군이 경찰을 구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날 오후 4시50분, 조대부고 3학년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첫 발포였다. 국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광주의 이런 상황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학생시위는 광주시민들의 항쟁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선 거죠. 우리 기사들은 차가 있으니, 우리가 시민들의 방패가 되어주자고.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고.”

▲5·18 취재 당시의 위르겐 힌츠페터와, 광주에서 나오며 군인들의 검문 검색을 받고 있는 힌츠페터 일행. 이렇게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온 힌츠페터는 필름을 쿠키 깡통 속에 숨겨 일본으로 가져갔다.ⓒ KBS

영화 포스터가 웃고 있는 만석의 얼굴을 집중하고, 홍보 영상이 등장인물들의 어설픈 영어를 담은 것은 의도적으로 5월 광주를 숨겨 관객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10만원에 속사정도 모르고 'OK! 렛츠고 광주'를 외친 것처럼 관객은 송강호만 보고 따라 탄 승객이었다. 이후 가이드와 함께 광주에서 하룻밤 지내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보게 본다.

영화가 그리는 광주의 모습은 2016년 겨울 광화문과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한 일상과 일반적인 시민들이 있었고 영화는 사건 중심에서 조금 멀리서 천천히 균열을 내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리고 광주를 탈출하면서 광주에 두고 온 죄책감이 영화 밖에서도 유효하게 한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실존인물이고 영화가 사실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사파리처럼 5월 광주민주화운동 체험기인 것이다.

즉 새로운 세대는 광주에 대한 죄의식도, 가해자를 향한 응징적 복수심도 남아있지 않은 세대인 것이다. 광주는 어느 덧 머나먼 옛이야기가 되고, 대중들 각자에겐 끝난 사건인 것이다. 9년 보수 정권이 광주를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택시운전사>는 <화려한 휴가>의 관객수 680만을 뛰어넘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할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대중적이고 범작이라는 말은 취향을 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600만의 선택, 나아가 천만까지 기대해본다면 이 영화는 5.18을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의 인식을 짚어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씩은 영화가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개인택시 운전사인 김만섭(송강호)은 기사식당에서 동료와 밥을 먹다 우연히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다녀오면 1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한다. 그래서 그 길로 곧장 손님을 태우러 달려간다. 그런데 그 광주는 1980년 5월의 광주였다. 그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다. 광주에서 만난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도 이곳 사람들에게 맡기라며 그를 격려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울림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광주를 향해 핸들을 튼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만섭이 비겁했을까? 또 내가 만약 김만섭처럼 1980년 광주에 내던져졌다면 죽기를 각오했으리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광주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김만섭은 정치에 무관심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겐 5년간 사우디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한 경력이 유일한 인생경력이다. 그는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대한민국이 지상낙원인줄 안다. 그래서 거리로 나와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향해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못마땅해 한다. 그런 그가 광주의 상황을 목격하고 괴로워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역사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저)는 당시 택시운전사들의 차량시위를 “항쟁의 결정적 비약이 이뤄지는 두 번째 계기”라고 평가한다. 첫 번째 계기가 됐던 5월 19일 금남로 가톨릭센터 앞 시민들의 시위가 “즉흥적이고 비조직적”인 시위였다면, 이날 차량 행렬은 “즉흥적으로 이뤄진 시위였지만 운수노동자들의 강력하고 일체화된 행동에 강한 폭발력이 응축돼 있었던” 조직적 시위였다는 것이다.

▲ 1980년 5월 20일 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이 금남로에서 차량시위를 벌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계엄군의 진압은 잔혹했고, 차량시위의 대가 역시 평생 가혹했다. 시위 차량이 금남로의 계엄군 저지선에 이르자, 계엄군은 엄청난 양의 최루탄을 쏘아대며 이들을 진압했다. 방독면을 쓴 공수들이 뛰어들어 차량 유리를 부수고, 운전사를 끌어내려 집단 구타했다. 이행기씨는 그날 계엄군에 잡혀 도청으로 끌려갔다. 계엄군이 21일 집단 발포 후 도청에서 퇴각하면서 가까스로 풀려나올 때까지,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계엄군의 군홧발에 찍혀 척추뼈가 깨지는 부상을 당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치료를 받은 곳은 산부인과였다.

“거의 3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끌려 들어왔어요. 알고 보니 친구가 같은 방에 있었는데, 그때는 서로 알아보지도 못했어요. 얼굴이고 몸이고 온통 피곤죽이 되어버려서,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고 얼굴이 피범벅이라 알아보기 힘든 겁니다. 그때 공수가 했던 말을 기억해요. ‘나는 너희들 따위 평생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버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군홧발 뒤축으로 엎드린 사람들의 척추를 찍어 누르고, 야구방망이 크기의 곤봉으로 머리를 강타했어요. 가랑이 속으로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는데, 공수가 들어오면 앞 사람의 몸이 좌우로 벌벌벌 떨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광주의 택시운전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전영도씨(가명·65)는 그날 차량시위에 참여했다가 금남로에 닿기도 전 신안사거리에서 계엄군에 체포됐다. 전씨는 “나는 두들겨 맞고 전남대로 끌려간 이후, 기억이 별로 없다”면서도 공수들의 그 ‘눈빛’만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어. 그때 군인들에게 술만 마시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건 술이 아니라 약을 먹어 약에 취한 눈빛이었어. 모두 흐리멍텅하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것이…. 사람이면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못해요.”

▲영화 <택시운전사> 한 장면.ⓒ 쇼박스

그날 이후 37년, 여전한 트라우마

광주의 ‘황태술’들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어떻게 봤을까. 장훈명씨는 “영화 만들기 전에 장훈 감독을 만나 몇 시간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면서 “그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우리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끝부분 검문소에서 서울 번호판이 적발됐는데 하사관 한 명이 눈 감아줘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서 “당시 운동의 불씨를 다시 살린 기사들의 차량시위가 영화에 나오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고 말했다.

영화 속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은 기사들을 응원하며 주먹밥을 나눠주는 시민들과 만나고, “광주에서 택시는 다 공짜”라며 무료로 기름을 넣어주는 주유소에서 놀라기도 한다. 1980년 택시운전사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했던 김동희씨(77)는 “당시 광주시민은 모두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한계적'일 수 없는 외부인의 시선

김만섭의 시선에 주로 집중한 걸 두고 혹평이 없지 않다. 황진미 평론가는 "외부인의 시선이 지극히 한계적"이라고 지적했다. 내 생각은 정반대다. 만약 김만섭이 광주의 진실을 목격하지 않았으면 그의 인생 경로는 어떤 길로 접어들었을까?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지 않았을까?

사실 탄핵정국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던 이들은 또 다른 얼굴을 한 김만섭 아니었던가? 만약 이들이 박정희 유신정권, 그리고 전두환을 주축으로한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을 제대로 직시했다면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들었을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외부인' 김만섭의 각성은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지점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특히 그가 광주로 되돌아가는 장면 연기는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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