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김덕권 칼럼] 늙은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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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김덕권 칼럼] 늙은이의 노래
  • 김덕권
  • 승인 2017.08.1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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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산김덕권 칼럼니스트

늙은이의 노래

호랑이도 늙으면 이가 빠지고 눈도 잘 안 보이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가요? 꼭 요즈음의 제 꼴이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눈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잘 안 보이고, 다리는 아파 잘 걷지도 못합니다. 설상가상이랄까 며칠 전 부터 이가 아파 치과엘 갔더니 이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이미 양 쪽 어금니를 뽑은 마당에 또 이를 뽑으라니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도리 없이 통증을 면하려고 이를 뽑았습니다. 이제는 음식을 잘 씹을 수가 없네요. 맛있는 음식도 없습니다. 먹고 싶은 요리도 없습니다. 그나마 먹는 것도 시원치 않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점점 쇠약해지는 제 모습에서 자연의 섭리(攝理)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며칠 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재벌급인 지인 한 분이 제주도에 투자할 것이 없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이미 돈 버는 욕심을 버린 지 오래인 저보고 돈 벌 곳을 묻다니요? 아니 그만큼 끌어 모았으면 그만이지 아직도 재물에 허기진 그분의 모습에서 ‘늙은이의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노자도덕경》제22장의 ‘휘면 온전할 수 있다’는 늙은이의 노래를 한 번 불러 보시지요.

「휘면 온전할 수 있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늙은이는 ‘하나’를 보며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것이 수행(修行)입니다.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 겨루지 않기에 세상이 그와 더불어 겨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린 하루하루 나이가 들면서 몸도 망가지며 병들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또 나이 들어가는 만큼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청춘의 열정이 줄어드는 만큼 점점 운신(運身)의 폭(幅)도 좁아지고, 말도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에 버거운 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지혜는 있으되 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족함을 대신하기 위해 늙은이다운 품격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품격이 바로 곱게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곱게 늙는다는 건 외모가 아니라 품격입니다. 아무리 가꾼다고 해도 늙으면 백발과 주름이 생기고 피부는 거칠어지며, 기운도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저처럼 잘 걷지도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도 빠져 잘 씹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품격을 가다듬으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 노인의 품격을 기르는 휴양(休養)의 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말과 행동과 인품에서 풍기는 것이 향기로워 질 것입니다. 사람이 늙어 휴양 기에 당하여는 생사에 대한 일과 정신통일이 가장 크고 긴요한 일입니다.

<휴양의 도>

첫째, 안도(眼道)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기어이 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이도(耳道)입니다.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을 기어이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무관사(無關事)의 도입니다.

설사 보이고 들리는 일일지라도 나에게 관계가 없는 일은 기어이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대우(待遇)의 도입니다.

의식(衣食) 용도를 자녀나 책임자에게 맡긴 후에는 대우의 후박(厚薄)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 망각(忘却)의 도입니다.

젊은 시절에 지내던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왕년의 나를 잊는 것입니다.

여섯째, 착심(着心)의 도입니다.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있는 일은 미리 처결하여 착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째, 용서(容恕)의 도입니다.

과거나 현재에 원망스럽고 섭섭한 일이 있으면 다 용서하고 잊는 것입니다.

여덟째, 시비(是非)의 도입니다.

과거에 대한 일로 시비에 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홉째, 수양(修養)의 도입니다.

염불과 좌선, 기도를 부지런히 하여 해탈의 법력을 얻는 것입니다.

열째, 무시선(無時禪)의 도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데에는 때도 없고 곳도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시선 무처선’이지요. 이 공부법을 끊임없이 닦아 가면 마침내 해탈과 열반락(涅槃樂)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한량이 없고, 착심도 한계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을 착심으로 하면 그 착심이 한이 없고, 해탈을 하면 어떠한 순역경계(順逆境界)에도 괴로움과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 ‘늙은이의 노래’도 모르고 이 나이에 더 재물을 끌어 모으면 가는 곳이 어디일까요? 늙은이는 노인답게 살아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이 열 가지 ‘휴양의 도’가 아닐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8월 1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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