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은 신비주의나 기적하고는 무관하다. 그러나 지성이 하느님에게 닿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목표는 일종의 계획된 염원이다.

한여름 정오 무렵, 차들로 붐비고 있는 제일 한강교 중지도 어름을 한 대의 소형 트럭이 십여 개의 냉방용 프레온가스 철제 통을 싣고 건너가고 있었다. 아스팔트 가득히 불볕이었다. 그 트럭은 행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듯한 예복 차림의 군인들이 탄 버스를 앞세우고 뒤로는 시내버스를 딸린 채였다. 그리고 난간 쪽 옆 차선으로는 대형 유조차가 약간 엇비스듬하니 가고 있었다.

한 순간, 갑자기 꽝하고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두 번째 폭발음이 나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프레온가스 통이 폭발하면서 그 충격에 뒤따르던 유조차 휘발유 탱크가 폭발한 것이다.

순식간에 한강 다리는 처참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첫 폭발로 운전기사를 날린 트럭이 앞서 가던 군용 버스를 덮쳐 들이받았으며, 그 충격으로 버스는 중앙선을 넘어 대형 트럭과 충돌했다. 그 트럭을 뒤따르고 있던 시내버스가 추돌을 피하려다 옆 차선의 유조차를 들이받았다. 가스가 기화되며 솟구친 희뿌연 연기 기둥과 기름이 타며 맹렬하게 내뿜는 검은 연기구름이 해를 가렸고, 비명과 아우성이 진동했으며 여기저기에 패대기쳐진 부상자들이 쏟아내는 피가 노면에 낭자했다.

사고가 수습되기까지 열 시간이나 걸렸으며 무려 십 수 명이나 죽고 오십여 명 넘게 심한 부상이나 화상을 입었다. 그날의 참사는 전 일간지의 사회면 톱 기사였다.
이튿날로 사고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고 트럭이 소속된 회사의 대표이사와 공장장, 관계 간부 여럿이 경찰에 연행됐으며, 그날 저녁 늦게 공장장과 담당자 등 다섯 명이 긴급 구속됐다. 회사는 사후 수습하느라 업무가 마비됐고 격분한 유족들의 항의로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 사고로 B사가 치른 대가도 명예 실추에다 거액의 금전손실, 대표이사의 사임 등 엄청난 것이었다.

참사의 원인이란 어처구니없게도 단순한 작업상 부주의와 관리상 허점에 기인했다. 프레온가스 통에 허용치 이상으로 가스를 넣고 불볕에 노출된 채 한 시간 넘게 출렁거리며 달리는 동안 가열되고 흔들려 밀폐된 용기 안 기압이 폭발 점까지 포화 되었던 것이다. 가스 충전 담당자가 안전수칙에 따라 가스 주입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관리요령에 의해 출고 전 안전검사를 하지 않은 타성적인 적당주의가 부른 참사였다.

앞서 묘사한 참사 정경은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장소만 다를 뿐 백주에 주택가 한복판에서 그런 폭발사고가 실제로 일어났었다. 그것도 필자가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서다.

그날, 필자는 3층 사무실에서 간부들과 회의 중이었다. 정오 무렵, 갑자기 건물이 흔들거릴 정도로 폭발음이 들렸다.  놀라 창가로 뛰어가 창밖으로 아래쪽을 내다 봤으나 희뿌연 연기구름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불길한 느낌이 가슴을 쳤다. 프레온가스를 실은 차가 도착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설마 하는 일루의 희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든 간부의 보고로 여지없이 깨졌다.

현장으로 달려 닿기까지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현장은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폭발 때의 충격으로 트럭 측면 짐받이 판이 수 미터나 날아갔고, 근처 상점의 유리창은 모조리 박살났으며, 길가 여관의 지붕 기와는 마치 옥수수 알맹이가 줄지어 빠지듯 몽땅 뽑혀 떨어졌다. 들이닥치는 소방차의 귀청을 찢는 사이렌 소리와 번쩍이는 비상등 불빛, 일대를 뒤덮은 연기와 구경꾼들, 직원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현장을 뒤지며 질러대는 고함소리가 뒤범벅이 돼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사람이 여럿 죽었거나 다쳤으리라는 짐작에 다리가 후둘 거렸다.  육중한 철제 용기의 두꺼운 거죽이 종잇장처럼 찢긴 채 십여 미터나 퉁겨 날아갈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그것도 주택과 상점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일어났으니 사상자가 한둘로 그쳤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은 것이다. 사고 차를 운전한 직원조차 무사했다. 방학 중이라 비교적 한적한 거기 이면 도로에는 평소 노는 아이들이 많았으며 복덕방에도 늘 적지 않은 노인들이 모여 소일하고는 했으므로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아마도 차를 세웠을 때가 점심 무렵이었으니 놀던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폭발 직전에 그곳을 떴든가 보며 운전기사 또한 사무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직후에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야말로 간발의 시차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를 모면한 것이다.
더욱 천만다행인 것은, 앞서 가상한 시나리오처럼 폭발사고가 불과 수 분 상관으로 한강교 한복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닐 수 없었다.

대체 태만과 부주의로 인해 벌어졌을지도 모를 참사를 문자 그대로 간발의 시차로 피하게 만든 건 다행한 우연이었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한 요행이라 여기기에는 뭔가 불가사의했다.
그 당시는 필자가 새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필자는 지방에 있는 한 계열사의 창업과 흑자 달성에 성공한 공로로 승진했고 그런 능력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의 그 계열사의 경영 정상화에 발휘해 보라는 주문을 받고 자리를 옮긴 터였다.

그 회사는 적자 경영이 십여 년이나 계속돼 종업원의 사기가 밑바닥이었다.  그런 안전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든 것이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시급히 해결할 난제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집 두레박은 새지 않는 날이 없다고 공장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리는 안전사고서부터 내 전용 승용차가 시내 한복판 고가차도에서 멈춰 서는 고장까지 크고 작은 말썽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새벽 같이 안양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면 한가롭게 담배 한 대를 피울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으므로 퇴근은 오밤중이기 예사였다. 그러나 경영 정상화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가정과 건강 같은 것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정신적 피로와 격무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가족, 특히 노모의 걱정이 크셨다.

중대사를 앞두고 있을 때마다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부임 후 어머니는 새벽마다 성당에 나가 부실한 회사 회생시키려고 애쓰고 있는 아들과 회사를 위해 기도하셨다. 그때 나는 이를테면 가정을 뛰쳐나간 탕자처럼 교회를 떠난 동면 신자였다. 그런 나 이었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평소 어려운 고비마다 큰 힘이 되었다.

당시, 내가 해결해야 될 난제들 중 난제는 십여 년간 종업원들 가슴에 쌓여 굳어버린 불신을 푸는 일이었다. 그건 대우개선 같은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어머니가 자식의 회사를 위해 지성으로 바치는 기도의 맥락에서,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온기를 주고받게 하려고, 늦가을에 나의 부탁으로 간부 부인들이 공장에 모여 김장을 담갔다. 넉넉한 양념 탓도 있겠지만 그 해의 김장은 전에 없이 맛있다 모두들 칭찬하며 먹었다. 그리고 그 뒤끝은 더 좋았다. 부인들 품앗이 정성으로 식당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고, 그것은 잔잔한 감동이 되어 직원들의 삭막한 가슴을 꽤 녹였던 것이다. 그건 불신으로 굳어버린 직원들 마음에 긍정적인 사고의 불씨를 피우려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입증하는 작지만 기분 좋은 변화였다.

나의 경영 정상화에 대한 염원은 이를테면 어머니의 기도와 연결돼 있고 거기서 힘을 얻고 있었다. 나는 월급날 어머니에게 신권을 구해 용돈으로 드릴 때마다 제때 월급을 탈 수 있는 게 다 어머니나 아내들의 회사 잘 되라고 일구월심 간구하는 덕분이라 감사하고는 했다.

적당주의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가족의 기도나 성원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사원들이 어려움을 잘 인내한다거나 최선을 다 해 일할 수 있는 힘은 분명히 가족의 사랑과 성원에서 나온다. 가족의 간절한 기도가 한 자루 촛불처럼 빛나면, 어둠 속에서 매듭짓는 악연의 끈이 필연으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그 매듭이 풀리게 만든다고 믿고 필자는 진실하게 그 힘을 모으려 애썼다.
비록 입증은 할 수 없으나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그날의 참사를 그 정도로 피할 수 있었든 것은 나의 어머니를 비롯해 어느 사원 가정에선가 간절히 기구한 정성이 하늘에 닿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사의 수술처럼 인간의 노력은 인과에 미칠 뿐 하늘에 닿는 것은 믿음이 낳는 사랑이고 정성일 것이다. 참사의 모면이 우연한 요행이라 여기는 것이 오히려 애매모호한 비과학적 인식일 것이다.
기업에 있어 밖으로부터의 기원과 축복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 힘이 되는가를 굳이 의심할 필요란 없다. 모름지기 기업은 숨어 기원하고 축복하는 성원 자들을 되도록 많이 소유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음은 물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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