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선무 23일까지 AB갤러리 전시

남북모두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AB갤러리 전종훈 대표(왼쪽)와 선무 작가
AB갤러리 전종훈 대표(왼쪽)와 선무 작가

[뉴스프리존=편완식 기자]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남과 북 모두에게 할 말이 많다. '‘엣지(edge)에 서있으라’는 말이 있다. 여러 세계를 경험하고 경계선 위에 서있어야 비로서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한 탈북작가도 그렇게 자신의 에술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선무 작가는 1998년 두만강을 건너 3년 6개월간 중국과 라오스, 태국 등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두만강 건너에 살고 있는 친적에게 돈을 구하러 갔던 길이 한국행으로 이어졌다. 처음엔 강가에서 친지와 접촉하기로 했지만 연락이 안돼 강을 건너 중국땅을 밟게 된다. 그의 말대로 동냥질에 나섰던 것이다. 북한 지방미술대 재학중이었던 그에게 중국은 또 다른 바깥세계였다. 우물안 세계에 있었던 그는 눈이 뒤집혔다.

”차일피일 귀향을 미루다 북한선거 투표시간에 맞출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북한에서 투표참여를 안 하면 앞길에 장애가 생겨요.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북한만이 세상이겠냐’며 딴 세상에 살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는 지난해 뮌헨전시 때 스톡홀름대학에서 특강을 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을 했던 오슬로대학 학생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북과 남에서 모두 살았는데 뭘 느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간단하게 ‘사람살이에 주체사상 없어도 된다는 것’이라고 답했지요.“

그는 북과 남이 모두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한점을 아쉬워 한다. 남쪽도 북한쪽을 표현 할 땐 부감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의 팩트도 정치이념따라 달리 해석하는 것은 다반사다. 그의 작품중에 ‘폭탄주’가 있다. 대동강 맥주와 참이슬로 제조한 폭탄주를 그려, 같이 마시고 놀다보면 하나가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처음에 남쪽에서 그린 그림들은 북한 선전화풍 그림이었다. 김일성 김정일도 자주 등장했다. 북한체제를 풍자한것임에도 언뜻보면 북한 선전화 같다. 첫 전시 땐 신고가 들어가 조사를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저로서 자기표현은 김일성 김정일 이었어요. 그 생각대로 살았으니 그게 저의 삶 전부이고 표현이었죠.“

예술가들은 자기존재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도 자신을 얘기하는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그를 애기 한다도 했을 때 김일성 김정일은 빼놓을 수 없었다. 북쪽에서의 삶이 그랬기 때문이다.

“몇십년 동안 그들의 생각이 나를 지배 했으니까요.”

그는 23일까지 서래마을 AB갤러리에서 열리는 ‘나의 분단을 말하다’ 전시에서 이 같은 맥락의 작품들을 보여준다. 유화부터 종이작품까지 출품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표현방식을 달리해 작업한 것들이다.

1972년생인 그는 북한에 남은 가족이 걱정돼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활동한다. 선(휴전선)이 없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선무(線無)라는 예명을 쓰고 있다. 2015년 DMZ 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작인 ‘나는 선무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해졌다. 홍익대에서 미술을 다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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