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과고독의 구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은 지난 1월 말 MBN의 <보이스 퀸> 최종 우승자 정수연의 우승소감이었습니다. 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 경연 프로그램은 6개월이라는 대장정 끝에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주부들이 이렇게 노래잘하는 사람이 많은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보이스 퀸>은 단순히 주부들이 나와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서 출연자들에 대한 휴먼 드라마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출연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한이 서려 있는지 뿜어내는 가락마다 웬만한 가수들을 뺨치는 감동의 연속이었지요.

출연자마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슴에 안고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숨은 능력을 폭풍처럼 쏟아 냈습니다. 50대 췌장암환자가 병실에서 잠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찾아오고, 30대 신부가 결혼식 끝나자마자 웨딩드레스를 입고 참여합니다, 이렇게 거칠고 힘들 삶에서도 한곡조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하루는 버티면서 살아가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우승 소감은 그동안 안으로만 삭여왔음직한 우승자의 어떤 심정이 배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섯 살 된 아이 하나를 혼자 키우는 30대 싱글 맘이라고 했습니다. 싱글 맘은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뜻이지요.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설움도 컸을까요? 우승자는 경연에 참가하면서 방송에서 싱글 맘이라는 게 공개되면서 자신은 괜찮지만 혹시나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 제일 힘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싱글 맘이라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시선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 사회적 편견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전에 인정(仁政)을 최고의 정치로 여겼던 유교사회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국가의 책무로 강조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환과고독(鰥寡孤獨)’, 즉 홀아비[鰥]와 과부[寡]와 고아[孤]와 자식이 없는 노인[獨]에 대한 구휼(救恤)은 언제나 정치가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예기(禮記)》의 <대동사회론>과 《맹자(孟子)》에도 이들에 대한 문제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고, 이들에 대한 보호가 왕도정치의 시금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분들을 잘 보살피고 있는 것일까요? 환과고독 가운데 ‘과(寡)’에 해당하는 오늘의 싱글 맘들은 어제의 ‘과부들’에 비해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배려를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우승 소감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강한 반증이 아닐까요?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 싱글 맘의 12%는 저소득층에 속한다고 합니다. 경제활동을 하더라도 소득·자산·주거 수준이 열악한 근로 빈곤층으로 분류된다는 것이지요.

이들의 생활고는 양육 포기로 이어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99.7%가 미혼 싱글 맘 자녀입니다. 이는 미혼 싱글 맘이 홀로 자식을 키우기 힘든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방증일 것입니다. 이분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 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정부가 만 14세 미만 아동을 양육하는 월 소득 148만 원이하의 저소득 싱글 맘에게 지원되는 양육비는 월 12만원이라고 합니다. 특히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미혼 부모들은 소득과 주거가 불안정하고, 정부에서 지원되는 아동양육비는 현실을 반영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싱글 맘 자녀들이 겪는 고통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학교생활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초콜릿 괴물’이라고 놀림 받으면서 부쩍 말수가 줄고 도통 웃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문화 가정 싱글 맘의 자녀라는 이유로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홀아비와 과부 그리고 고아와 자식이 없는 노인에 대한 구휼은 그 옛날의 왕도정치를 다시 불러와 정치가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과제임을 정부에서는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왕도정치는 강자는 영원한 강자가 되고, 약자는 강자로 진화하여 강자와 약자가 다 같이 향상 발전할 수 있는 진보적·이상적 사회 발전의 원리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이렇게 종교적 · 윤리적 논리를 통해서 패자는 없고 승자만 있는 인류사회 건설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2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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