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국민운동본부는 전국 13개의 참여단체가 연합해 지난해 9월 1일, ‘뉴타운·재개발 중단 및 주거권 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이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열렸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각 지역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여러 시민단체가 뉴타운·재개발 반대를 위해 힘을 모아 결성됐다. 전국뉴타운재개발비대위연합, 경기뉴타운재개발반대연합 등 국민운동본부와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전국 비대위 수는 약 45개에 달한다. 비대위 주민들은 집회에 나서 뉴타운 사업의 전면 중단을 외치고 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뉴타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만들었을까. 이명박·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했던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시는 총 26개 뉴타운을 지정했다. 개발공약이 강북의 주민들과 특히 부동산을 소유한 386세대의 보수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1970년대 개발이 시작된 서울의 강남3구는 튼튼한 보수의 아성으로 불린다. 아파트단지 중심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중산층을 형성하고 지역의 보수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도시개발로 정치지형을 바꿔내는 공식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공식은 깨졌다. 입주가 마무리되고 나서 치러진 선거에서 뉴타운 지역은 강한 야권 성향을 보였다. 박원순 시장은 뉴타운이 형성된 은평구 진관동(61.72%), 성북구 길음1동(61.97%), 강북구 삼각산동(62.42%) 등에서 서울 전체는 물론 각 구의 평균보다도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 시장의 평균 득표율은 은평구 58.67%, 성북구58.15%, 강북구 56.69%였다. 교육과 주거 여건이 좋은 뉴타운에 30~40대 젊은 유권자들이 몰려들면서 오히려 지역의 진보화를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상인회·향우회 등 뉴타운 지역의 과거 정당 풀뿌리 조직들은 해체된 반면, 새 입주민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여론과 미디어의 영향을 더 받는다. 이 경향도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19대 대선에서도 경북 칠곡군 석전읍은 경북지역에서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33.7%)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5.1%)를 압승한 지역이었다. 혁신도시가 위치해 젊은 층 인구 유입이 많은 곳이었다. 부산에서도 홍 후보가 이긴 선거구 중구와 서구는 부산지역에서 대표적 ‘원도심’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둘로 쪼개진 공동체

성북동 토박이 이영순(72)씨는 “어느 날 한 이웃이 찾아와 ‘동네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면서 조합이란 걸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20층 아파트가 들어서기로 서울시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이니 주민이 반대해도 재개발을 막기 어렵다’며 조합 설립에 동의해줄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이씨는 그날 저녁 자녀와 긴 시간 가족회의 끝에 고향인 성북동을 도저히 떠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개발 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지못해 조합 설립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뉴타운 실태조사는 개략적인 정비사업비 및 추정 분담금 등을 파악하는 절차다. 실태조사 때 주민 50%가 사업에 반대하면 촉진구역 지정이 해제된다.

고향을 잃고 싶지 않기에 오랜 삶이 묻어 있는 단독주택을 포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감이었다. 이씨는 “조합 설립에 동의했더니 조합 쪽에서 한참 후에 말을 바꿨다. 아파트가 아니라 저층 고급빌라촌을 짓겠다고 했다”며 “기존에 살던 35평 주택을 허문 대신 35평 고급빌라에 입주하려면 적어도 2억여원을 추가로 내야만 했는데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하겠나”라고 말했다. 재정 형편이 충분치 않았던 그는 뒤늦게 조합 설립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려 했으나 구청에서는 “결정을 바꾸기 어렵다”는 답만 반복했다.

지역 내 찬반 여론 13년간 팽팽 단골술집에 발 끊으며 이웃 갈등

이후 최씨는 이영순씨 등과 함께 성북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정비사업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성북3구역 재개발을 막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들의 시도는 재개발 사업이 신속히 추진되기를 바라는 외지 투자자를 비롯해 조합 쪽 주장에 동의하는 일부 주민들에게 번번이 가로막혀 갈등만 깊어졌다.

찬성을 요구하는 주민들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주민 김아무개씨는 “(조합 쪽에서) 고급빌라에 같은 평수로 들어가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평수가 큰 편인 단독주택을 가진 주민이나 손해 보지. 나같이 작은 평수의 빌라를 가진 사람은 재개발이 기회일 수도 있다”며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웃 때문에 답답하다”고도 했다.

이처럼 그동안 성북3구역에서는 “개발을 진행할 경우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 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주민과 “분양권을 되팔아 이득을 남길 수 있다”며 찬성하는 외지투자자 및 주민이 팽팽히 대립해왔다. 재개발구역에서 으레 나타나는 ‘익숙한 골’이 성북3구역에서도 예외없이 파였다. 이런 논쟁은 지난 7월 성북3구역이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에 따라 직권해제 대상 구역으로 선정되기까지 약 13년간 계속됐다. 그사이 동고동락했던 오랜 이웃과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불편한 사이가 됐다는 주민이 적잖다.

“재개발 때문에 20년 단골 술집을 못 간 지 오래됐다. 그 술집 주인이 정비사업을 찬성했거든. 난 반대했고. 서로 마주치면 다툴 때도 있어서 피하느라 그랬지.”

뉴타운, 주민들을 혼란 속에 몰아세운 뉴타운 사업

서울특별시 주택본부는 뉴타운 사업을 ‘공공이 원하는 민간사업으로 적정규모의 생활권역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는 종합적인 도시계획사업’이라 설명하고 있다. 민간 중심의 소규모 재개발 형식과 달리 뉴타운 사업은 공공이 관여하는 종합도시의 개발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는 시범뉴타운에서 2차, 3차 뉴타운까지 총 26개 지역에서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인천, 부산에서도 뉴타운 사업은 우후죽순 시작됐다. 국민운동본부 이의환 실무위원은 “당시 뉴타운 사업이 호경기와 맞물려 부동산값 상승을 부추겼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뉴타운 사업은 장밋빛 정책이라는 환상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이의환 실무위원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뉴타운 사업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많은 후보들이 뉴타운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 때문이었다. 이 위원은 "2008년 총선 당시, 아무도 뉴타운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 무렵의 상황을 전했다. 총선 이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혀, 총선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후보들이 거짓 공약을 남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두고 여야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 4월 17일 MBC 에서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과 김종률 통합민주당 의원이 대립각을 세웠다. 이날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뉴타운의 실상을 주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부천시 뉴타운·재개발 비대위 공동대표 류재선 위원장은 “뉴타운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로 시작해서 사기로 끝나는 사업이다”라고까지 비난했다.

돈으로 얼룩진 뉴타운 사업의 진실

뉴타운 사업을 반기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는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의 여파가 밀려오면서부터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뉴타운 정책의 사업성 악화로 이어졌다. 사업을 통해 수익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떠안아야하는 부담이 늘어나자 실망과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이미 뉴타운 사업에 발을 들인 건설사와 조합은 뉴타운 사업을 강행했다.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의 총회 참석을 봉쇄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조합에 고용된 용역업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심지어 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9월 29일, 부천에서 뉴타운 반대 운동을 벌이던 김동준 비대위 위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조합 측으로부터 7차례나 고소·고발당하고 용역업체의 협박과 폭언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다닐 정도였다. 이의환 실무위원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김동준 씨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 재개발 시행단계에서 조합이 일단 설립되면 건설사의 편에 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을 용역업체를 동원해 괴롭힌다. ⓒ 서울특별시 주택본부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4월 27일, 진보신당 주최로 뉴타운 사업 추구전략 모색을 위한 토론회 및 뉴타운 사업지역 피해주민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피해주민들은 자신이 겪었던 피해사례를 하소연했다. 또한 미봉책으로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졸속 대응을 비판했다. 6월 8일에는 뉴타운 사업을 논하는 토론회에서 뉴타운 사업의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한 후 9월 19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뉴타운 사업을 반대하는 대규모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내 집 냅둬’, ‘고치며 살게’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뉴타운 반대를 외쳤다.

이 위원은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이 찬성 세력,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원수지간이 됐다”며 “입장이 다른 주민의 가게에서는 쌀도 안 사먹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의견 충돌로 인해 주민들 간의 폭행이 일어나기도 한다. “뉴타운 법은 주민 수명 단축법”이라고 단정지은 이 위원은 “노인들은 요즘도 밤잠을 못 주무신다”며 철학이 부재한 도시 개발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국민들을 현혹했던 뉴타운 사업이 왜 이제는 주민들을 거리에 나서게 했을까?

뉴타운 사업의 실상은 모든 가옥주가 수혜자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토지등소유자는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설립에 대한 법적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조합을 설립하는 데 있어서 가옥주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동의만을 강요받는다는 사실이다. 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이들에게 동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아웃소싱 업체를 고용한다. 아웃소싱 업체 직원은 주민들을 방문해 뉴타운 사업으로 얻게 될 이익에 대해 온갖 거짓과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관광 여행 등의 선물 공세로 설립동의서를 받아낸다. 뉴타운 사업 지역의 특성상 장년층, 노년층이 많이 거주하다보니 아웃소싱 업체 직원을 동원해 현혹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추가분담금이 지나치게 높고 집값이 터무니없게 낮게 책정됐다는 사실을 알 때쯤이면 이미 정비사업을 반대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된다. 류재선 위원장은 “뉴타운 악법은 주민들의 필연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를 질서유지요원이라고 하는 용역업체를 고용해 억누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New Town, New People의 현실

세종대학교 변창흠 교수(행정학과)는 “뉴타운 사업은 주거 정비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투자사업”이라 묘사했다. 결국 뉴타운이 건설되고 나서 이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추가분담금을 지불한 가옥주와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던 돈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이를 되팔아 이익을 챙기고 다른 곳으로 또 옮겨간다. 주목해야할 점은 뉴타운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세입자는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창흠 교수는 "주민이 자기 마을의 변화에 대해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뉴타운 사업은 주거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나 세입자인 경우가 많다. 서울시 2008년 자료 ‘뉴타운 및 균촉지역 사업추진현황’에 따르면, 뉴타운 28개 지역의 세입자 비율은 72%다. 세입자는 열악한 거주환경의 실거주민임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사업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다. 그나마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을 위해서는 사업지구 지정 3개월 이전부터 거주해야한다. 이마저도 가옥주가 세입자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경우 포기할 수밖에 없다. 류재선 위원장은 “주민들은 개발세력과 공공이 추진하는 사업에 주체가 아닌 객체로 질질 끌려간다”며 돈 있는 사람만 집을 키워서 돈을 벌어들이는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세입자는 물론 가옥주까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 뉴타운 사업의 비극적 결말이다. 변 교수는 “정비사업의 올바른 방향은 세입자나 가옥주가 함께 논의하고 계획을 짜는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거쳐 주민들이 내쫓기지 않으면서도 현재 주거환경을 개선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뉴타운 사업에 해피엔딩은 없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타운 사업이 취소되기란 사실상 어렵다. 뉴타운 법 제정 당시 주민들의 반대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창흠 교수는 “현재 뉴타운 사업은 중단할 수도 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라고 말했다. 관련 법규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정작 정치권에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변 교수는 “뉴타운 사업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신 정부는 뉴타운 법이라 불리는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도촉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계획법(도정법)’을 통합한 ‘도시재정비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제정해 정체된 뉴타운 사업의 물꼬를 트려고 했다. 도촉법과 도정법은 실거주민을 배려하지 않고 개발 자본에게 이익을 퍼주기 위한 개발악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민운동본부는 위 제정안이 주민들을 두 번 속이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법안 폐기를 강력하게 외치고 있다. 공공 재정지원, 건설 규제완화 등을 통해 뉴타운의 사업성을 살리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반대 목소리에 귀를 막고 뉴타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 해도 문제는 끝이 아니다.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주택의 공급만큼 수요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류재선 위원장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과 맞물려 주택 과잉공급으로 인한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로 부천 소사지역의 경우 장기간 지속된 미분양으로 인해 아파트 분양가는 계속해서 떨어졌다. 결국 개발이익을 내야하는 시공사는 사업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뉴타운 사업에만 매달리게 됐다. 열악한 거주환경을 개선한다는 뉴타운의 본래 취지는 무색해졌다.

국민운동본부는 뉴타운·재개발 지구에 전면적인 사업비용 및 각 세대별 비용부담규모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주민들의 찬반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23개의 뉴타운 중 김포, 군포, 평택, 안양, 오산에 예정된 5개의 사업이 주민들의 반대에 의해 백지화됐다. 한편 10월 10일, 경기도는 뉴타운 사업에 대한 주민 의사를 묻는 전수조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칼로 잘라내기 위한 투쟁이 보다 많은 결실을 맺기까지는 앞으로 난항이 계속될 전망이다.

‘느린 변화’ 현 여권에 이로울 가능성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도시재생사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는 전망이 어둡다. 도시재생사업은 공약대로 된다면 ‘빠른 변화’보다는 ‘느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노후지역의 순차 개발을 통해 원주민의 재정착과 마을공동체 형성 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 구청장 중 자유한국당 소속 구청장은 6명뿐이다. 강남3구와 중랑, 중구가 해당된다. 주민의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데, 주거환경이 개선된다면 현 여권에 이로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이 대대적으로 들어서고 ‘고시촌’ 등 낙후된 주거환경이 개선된다면 고스란히 여권인 민주당의 성취가 된다.

부동산 규제가 중산층의 반발을 부른다면 정치지형은 보수층에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2005년 8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강한 반발이 일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을 기준시가 9억원에서 6억원 이상으로 대폭 강화하고, 1가구 2주택자 양도세 50% 중과 등의 대책을 담았는데, 특히 종부세는 ‘세금폭탄’ 패러다임으로 보수층의 비판대상이 됐다. 다음해 치러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수도권과 강원권을 포함한 88개 단체장 중 87개 지역에서 참패했다.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서울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서울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서 제외하자 당장 서울에 지역구를 둔 여당 민주당 의원들은 불만의 기색을 내비쳤다. 한 여당의원은 “부동산 안정이 중요하니 당론을 따르겠지만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지역주민들의 불만이 많아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하지만 ‘뉴타운 개발의 역설’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자산가치 상승을 동반하지 않는 도시정책이 오히려 여권의 지지율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8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지난주보다 1.5%포인트 내린 72.5%로 집계됐다. 리얼미터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정책 혼선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반등했다”고 분석했다. 74.0%로 시작한 긍정평가는 사드 추가 배치와 환경영향평가, 아파트값·전셋값 폭등과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경기침체 관련 보도가 이어지면서 8월 1일 69.9%(부정평가 22.7%)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발표된 2일에는 71.7%(부정평가 21.1%)로 반등했다는 것이다. 11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통령의 긍정 평가율은 78%로 2주 연속 상승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월세 폭등하면 현 정권 지지도 타격

10년 전 참여정부 시절과 유권자들의 자산 및 주거형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원인이다. 지난 6월 발표된 ‘2017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 지표조사’에서 서울시민들의 주거형태 중 월세(31.3%)가 전세 비중(26.2%)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30대의 월세 비율이 2005년 19.4%에서 2016년 45.6%로 늘어났다. 빚을 내 집을 산 자가주택 거주 30대의 비율도 24.8%로, 2015년(12.0%)보다 2배 늘었다. 50대의 월세 비율 역시 2015년 13.8%에서 지난해 22.4%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집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하는 50대가 늘어난 것으로 서울연구원은 분석했다. 이들 계층은 주거비 안정을 가장 강력하게 바라고 있으며, 8·2 부동산 대책에 대한 지지도도 높다는 것이다. ‘종부세’ 등에 대한 과거와 같은 격렬한 반발이 전 계층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작다.

바꿔 말하면 도시재생사업과 부동산 정책이 월세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질 경우 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흔들릴 수 있다. 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임대사업자 관리’로, 야당은 ‘공급 확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내년 4월까지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기회를 드리겠다”고 발언하며 시기를 못 박은 것 역시 지방선거 직전 부동산시장에 대해 완전히 쐐기를 박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 구리시 인창동 비대위 주민들이 뉴타운 반대를 위한 인천시청 앞 집회 참가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읽고 있다.

반면 ‘주거 극빈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선거에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2014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한 진보정당 관계자는 “원룸이나 고시촌 지역의 경우는 여야 성향을 논하기 전에 아예 투표를 안 하는 성향이 제일 강하다”며 “역대 도시재생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쉽게 반영되지 않는 이유”라고 전했다.

“오순도순 살게 내버려둬라”

지난 2월 서울시청 신청사 로비에서 한 시민의 자해 소동이 일어났다. 칼을 소지한 남성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향하다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것이다. 성북구의 또다른 재개발 구역에서 추진위원장을 지냈던 이 남성은 서울시의 정비구역 직권해제 이후 그동안의 사업비 보전 문제로 사건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재개발·재건축은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산권이 직접적으로 걸린 주민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약 15년 전 우후죽순으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사업 추진이 어려운 구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 뉴타운, 정비사업 구역을 지나치게 지정한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지정만 해놓고 후속 처리가 이어지지 않자 사업은 자연히 삐꺽댔다. 이에 후임 박원순 시장이 2012년부터 직권해제를 들고나왔다. 일종의 출구전략을 편 것이다.

직권해제란 주민 간 갈등과 사업성 저하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사업 구역을 해제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조례에 따르면 자연경관지구, 최고고도지구, 문화재 보호구역,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등이 포함된 구역은 직권해제가 가능하다.

재개발 구역 지정부터 직권해제까지 13년 동안 성북3구역엔 무엇이 남았을까. 공동체는 쪼개졌고 심신은 망가졌다. 그사이 큰 병을 앓는 주민들도 생겨났다. 이웃 간 불화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탓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박희찬(72)씨는 얼마 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재개발로 이득을 취하려는 외지 투자자와 손쉽게 기반시설을 확보하려는 자치단체 때문에 동네가 망가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며 성북3구역 지정구역 철회를 주장해오다 건강이 상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3년 동안 동네 전체가 불화에 시달렸다”며 “사실상 그 세월을 도둑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신정숙씨도 최근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그는 “고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가족 같던 이웃과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지자 몸이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풍은 지나갔지만 폭풍의 흔적은 짙다. 정비구역 해제 공고 뒤에도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정비구역 해제 절차(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 의견 청취→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해제 고시)를 마무리해야 하고, 함께 살아갈 주민들 사이의 상처도 치유해야 한다.
서울시 정비구역 중 절반 가까운 곳이 해제(올해 3월말까지 683곳 중 328곳)되면서 이후 대책이 마련됐는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 구역에는 재개발 추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까지 막대한 사업비가 사용됐다. 성북3구역 직권해제에 따라 매몰비용 70억원이 발생했다고 조합은 주장한다. 서울시는 직권해제 유형에 따라 70%에서 100%까지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비구역이 해제된 지역에서는 그간 지출한 사업비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며 “보조금과 더불어 이들을 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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