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6권 출간
양정무 교수의 미술인문학 베스트셀러

서양 미술사를 누구보다 쉽게 설명하는 미술 전도사 양정무 교수의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사회평론) 6권이 출간됐다. 2016년 1,2권 출간 이후 ‘난처한 미술이야기’로 통칭되며 미술책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6권에선 북유럽 르네상스를 제대로 살펴보게 해준다.

플랑드르, 우리에겐 동화 ‘플랜더스의 개’로 익숙한 지명이다. 플랜더스는 영어식 표현이고 프랑스어로는 플랑드르라 부른다.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속하는 플랑드르는 지평선을 따라 늪지대와 초목이 한 없이 이어지는 낯선 풍경의 땅이다. 놀랍게도 이 거친 땅에서 600년 전부터 수준높은 미술이 쏟아져 나온다. 이 경이로운 미술작품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필적할 정도로 또 다른 르네상스의 기준이 된다.

사실 근대의 여명을 알린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을 가로지르는 알프스산맥 북쪽에서도 일어났다. 이를 북유럽르네상스라 부른다. 보통 북유럽하면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들을 떠올리지만 미술사에서 북유럽은 알프스산맥 이북의 모든 지역을 가리킨다.

책은 플랑드르부터 프랑스와 영국,독일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현대문명의 기틀을 잡은 곳이기도 하다. 유럽문명의 근대적 시각을 보려한다면 이곳에서 꽃핀 르네상스미술을 눈여겨 봐야 한다.

책은 플랑드르 르네상스 미술로 시작해 동시대 프랑스와 영국에서 벌어진 화려한 궁정미술로 이끈다. 유럽의 새로운 문화적 활력이 독일 지역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뒤러라는 개성넘치는 화가를 통해 보여준다.

뒤러는 급변하는 유럽의 사회풍경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낸 화가다. 여행광이었던 그는 전 생애에 걸쳐 플랑드르에서 이탈리아까지 여행을 했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이탈리아르네상스 미술이 빚어낸 새로운 세계에 감탄하게 된다.

책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과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을 한 권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지역은 그간 일반미술사에서는 거의 함께 다뤄지지 않았다. 번영하는 상업문화라는 관점에서 플랑드르와 베네치아를 매치시키고 있다.

책은 서양근대문명의 키워드를 자본과 개인으로 압축하고 있다. 자본의 흐름과 그 속에서 개성을 갖춘 개인의 등장을 살펴본다. 막대한 부의 이동에 따라 도시의 운명이 바뀌고 새로운 시민계층의 등장은 창작과 향유의 기존 틀을 바꿔 놓았다.

안트베르펜 중심가 광장의 모습. 화가 루벤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배경에 보이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넬로가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대작이 놓여 있다.
안트베르펜 중심가 광장의 모습. 화가 루벤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배경에 보이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넬로가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대작이 놓여 있다.

<시장의 활력속에 등장한 시민계급 미술발전 견인>
플랑드르는 얀 반 에이크, 브뤼헐부터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렘브란트, 베르메르, 빈센트 반 고흐, 몬드리안, 르네 마그리트까지 미술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화가들의 출신지이자 활동지였다. 15세기부터 플랑드르 미술에서 일어난 변화가 현대미술에까지 이어졌다는 얘기다. 북유럽에서 현대적 유화기법과 재료의 탄생은 풍부한 표현을 가능케 만들었다. ‘새롭고’도 ‘정확한’ 미술, ‘아르스 노바’가 등장해 사실적이고 정교한 미술 작품들을 낳게 했다. 나무판 위에 그렸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때, 알프스산맥 너머 이북에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상업의 발전 속에서 새로이 부상한 시민 계급은 점차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극하며 미술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미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1500년까지 알프스산맥을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북유럽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미술을 펼쳐가고 있었다. 이 시기 베네치아로 두 번의 여행을 떠난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이탈리아와 북유럽 미술의 차이, 서로 다른 예술가의 위상을 절감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런 고민과 자기 탐구 끝에 마침내 이탈리아의 원근법을 적용한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균형 잡힌 신체 표현, 북유럽 특유의 사실적이고도 세밀한 묘사를 조화롭게 융합해냈다.

뒤러가 이런 위업을 달성하며 북유럽 미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베네치아 미술이었다. 북유럽보다 한발 앞서 상업이 발전했던 베네치아는 또 다른 르네상스의 중심지로서 색채를 발판 삼아 회화에서 놀라운 도약을 해낸다.

얀 반 에이크, 붉은 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 1433년, 런던내셔널갤러리.  우리를 바라보는 강한 시선과 프레임에 쓰인 글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 화가 자신임을 암시한다.
얀 반 에이크, 붉은 터번을 쓴 남자의 초상, 1433년, 런던내셔널갤러리. 우리를 바라보는 강한 시선과 프레임에 쓰인 글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 화가 자신임을 암시한다.

<시장이 미술을 바꾸다- 왕족도 귀족도 아닌 평민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다>

우리는 사진을 찍거나 자기 이름을 내건 작품을 만드는 식으로 자신이 존재했다는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자 한다. 이런 마음은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초상화로 자기 모습을 남기곤 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초상화는 왕족이나 귀족에게나 허락되는 사치였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도 초상화를 주문할 여유가 생겼다.

흔히 저지대 지역이라고 불리는 플랑드르는 바다보다 낮아 농사짓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고 상업에 몰두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과 장인이 나타나게 된다. 여전히 낮은 신분이었지만 강한 자부심과 자의식을 지녔던 이들은 자기 모습을 세상에 남기려는 의지를 보였고 마침내 그림 속에 비중 있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사짓기 힘든 지역에서 상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플랑드르 대표도시 브뤼헤에서는 최초의 증권시장과 미술시장이 등장했다. 안트베르펜에서는 미술시장이 더욱 활발하게 열릴 정도로 상업이 부흥했다. 이런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강한 자신감과 자의식을 지닌 시민계급이 탄생한다.

상인이나 장인을 담은 초상화들은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한 눈빛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강렬한 눈빛에 담은 채 그림속에 당당하게 등장하게 된다. 왕족이나 귀족이 다소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이들은 눈빛으로 우리를 붙잡으면서도 편안한 자세를 취한 모습으로 그려져서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서민적 취향을 반영한 디테일한 소품들을 군데군데에 배치하고 사실과 상징을 섞어놓아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이들은 그저 돈 많은 상인, 성공한 장인이 아니라 스스로 존중하는 법을 잊지 않은 개인으로 보인다. 왕족이나 귀족도, 성직자도 아닌 새로운 계층, ‘시민’이 등장한 것이다. 자기 모습을 세상에 남기고자 한 시민 계층의 열망은 초상화뿐만 아니라 종교화에도 담겨 있다. 부를 축적하느라 저지른 과오를 씻고 자신이 제작을 후원했음을 확실히 하려는 의도도 담은 종교화에서 이들은 성인들에게 경배하는 모습으로, 성인들과 거의 대등한 사이즈로 그려지곤 했다.

르네상스는 바로 이러한 개인이 탄생한 시대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그림의 주인공, 더 나아가 시대의 주인공이 바뀌고 있었다. 브뤼헤에서 활약한 상인이자 외교 사절, 아트 딜러이며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온 기념으로 예배당을 지은 안젤름 아도네스, 독일 출신의 거상으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를 후원했던 야코프 푸거 같은 상인들의 행보는 르네상스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내부, 안트베르펜 . 종교개혁기 안트베르펜은 일시적으로 신교 편에 선다. 이때 대성당 내부에 자리했던 미술 작품들은 우상으로 간주되어 파괴당했다. 하지만 이후 복구돼 현재는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내부, 안트베르펜 . 종교개혁기 안트베르펜은 일시적으로 신교 편에 선다. 이때 대성당 내부에 자리했던 미술 작품들은 우상으로 간주되어 파괴당했다. 하지만 이후 복구돼 현재는 전통적인 고딕 성당의 내부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의 성당은 하나의 미술관-르네상스 교회 미술의 꽃, 제대화의 세계>
유럽을 가면 어디에서나 성당을 만나게 된다. 유럽 여행에서 성당은 필수 코스지만 정작 우리는 성당에 가면 무엇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난처해지고 만다. 성당 입구를 장식한 성인 조각부터 샹들리에,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상, 목제 가구… 두 눈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의 홍수에 이미 아찔할 지경인데 여기에 귀를 울리는 성가까지 더해지면 난처함은 배가된다.

책은 성당의 미술품을 효율적으로 감상하려면 제대화를 집중해서 볼 것을 추천한다. 제대 위를 장식하는 그림이나 조각을 의미하는 제대화는 르네상스 교회 미술의 핵심 중 핵심이다. 13세기부터 성체성사가 중요시되면서 미사 의식의 중심이 된 제대에 올리는 제대화에 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종교적 내용이 낯선 우리에게 제대화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제대화에 지시선과 캡션을 추가하고 담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열리고 닫히며 각기 다른 그림이 나타나는 제대화의 여러 단계별 모습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중세 때의 장식적이고 호화로운 미술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사실성을 갖춘 미술이 등장했지만 르네상스 미술의 한가운데는 여전히 교회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제대를 장식했던 그림과 조각을 의미하는 제대화는 교회 미술의 핵심이자 꽃이었다. 중요시된 만큼 정성을 다해 꾸미기 마련이었기에 제대화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미술을 살펴볼 때 당시 미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두폭화, 세폭화, 다폭화 등 제대화의 여러 형식을 살펴보는 한편,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북유럽 제대화 다섯 점을 특별히 소개한다. 제대화는 여러 구성으로 이루어진 데다, 일견 복잡해 보여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난감한 경우도 많다. 이 책은 다종다양한 제대화를 쉽게 감상하는 팁도 함께 제시한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교회 미술은 예수가 느꼈을 고통을 생생하고 인간적으로 표현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교회 미술은 예수를 이상적인 신체로 표현하면서 조화와 균형의 미를 꾀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두 르네상스의 서로 다른 흐름은 ‘최초의 유럽 화가’라고 불리는 뒤러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조반니 벨리니, 산 자카리아 제대화, 1505년, 산 자카리아.  성당 성모와 아기 예수가 중앙에 자리하고 그 양옆으로 성인들이 서 있다. 각자 생각에 잠겨 있으나 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해 이런 형식의 그림을 ‘성스러운 대화’, 이탈리아어로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Sacra Conversazione’라고 부른다. 이런 구성의 그림은 베네치아에서 특히 유행한다.
조반니 벨리니, 산 자카리아 제대화, 1505년, 산 자카리아. 성당 성모와 아기 예수가 중앙에 자리하고 그 양옆으로 성인들이 서 있다. 각자 생각에 잠겨 있으나 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해 이런 형식의 그림을 ‘성스러운 대화’, 이탈리아어로 ‘사크라 콘베르사치오네Sacra Conversazione’라고 부른다. 이런 구성의 그림은 베네치아에서 특히 유행한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플랑드르 미술부터 화려한 색채의 베네치아 미술까지>

북유럽 르네상스와 베네치아 르네상스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해 나갔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변화를 이뤄낸 한 축이 시민계급의 탄생이었다면 , 또 다른 한 축은 미술재료와 기법의 혁신이었다. 에그 템페라를 유화물감이 대체하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사실적이면서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감탄할만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좋아졌고 화가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도 점점 커졌다. 미술 재료와 기법의 발전에 힘입어 1420~1430년대 북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미술을 ‘아르스 노바’라고 일컫는다.

석호를 개간하고 지반을 다져서 만들어낸 도시인 베네치아는 플랑드르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상업의 중심에 섰다. 저자 양정무 교수는 주전공인 르네상스와 초기 자본주의를 연결고리 삼아 북유럽과 베네치아 미술을 능수능란하게 연결한다. 보통 자본주의 하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영국의 산업자본주의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 전에 ‘상업’자본주의가 있었음을 짚으며 이 상업자본주의가 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발전했음을 강조한다.

베네치아는 석호를 개간하고 인공지반을 다져야 했다.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것은 지리적 약점이었지만 베네치아는 오히려 이 특수한 환경을 바탕으로 해상 무역을 활발히 펼치며 번영을 누린다. 동지중해 무역의 강자로서의 자신감과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황금으로 빛나는 베네치아 미술에 그대로 담겨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진귀한 전리품들을 여럿 갖다 놓은 산 마르코 성당, 황금을 입힌 천장과 벽을 캔버스 그림으로 꽉 채운 베네치아 총독궁은 당당하고 호화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여전히 사로잡는다.

피렌체 미술의 성과를 흡수했을 뿐만 아니라, 무역으로 얻은 귀한 안료들을 기름에 개어 캔버스 위에 그리기 시작한 베네치아 회화는 16세기에 이르러 ‘황금시대’를 연다. 아시아로부터 들여온 안료들은 유럽의 안료들보다 깊고 풍부한 색감을 구현해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채굴되던 돌 라피스 라줄리를 정제해 만든 파란색, ‘락’이라는 곤충에서 얻어낸 붉은색, 독성이 있는 안료 오피먼트로 만든 주황색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역의 중심지 베네치아에서는 이 다채롭고 값진 안료들을 다른 어디보다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 안료들을 바탕으로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펼칠 수 있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동방과 서방의 가교 역할을 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호화로운 미술을 선보인 베네치아 미술은 15세기 안료 무역을 통해 색채라는 ‘회화의 맛’을 발견해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것이다. 습기가 많은 자연환경 탓에 훼손되기 쉬운 프레스코화 대신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게 된 것도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강렬한 색채 표현과 생생한 붓 터치가 어우러지면서 생동감 가득한 그림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무채색’이라고 할 정도로 베네치아 회화는 선명하고도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펼쳐냈다. (사진 사회평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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